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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기능 승부수 日 스마트폰의 역발상

  • 박대의
  • 입력 : 2017.08.0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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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50] 기술 강국 일본이 '갈라파고스' 위기를 맞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외부 환경 변화에 상관없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추면서 진화한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일본의 기술과 서비스는 세계 표준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편의성에 맞춰 진화했다. 특히 휴대전화 시장에서 그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일본 휴대전화 업체들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일본 고객들이 원하는 기능을 파악한 뒤 상품을 개발해왔다. 세밀한 배려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세계 시장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2008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이후 휴대전화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피처폰은 제조업체가 제품에 맞춰 제작한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스마트폰은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선별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장 변화 속에서 일본 업체들의 배려는 '과도한 친절'로 인식돼 세계 소비자들을 등돌리게 했다. 일본 내에서도 "쓸데없는 기능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결국 내수 시장까지 애플에 내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일본 휴대전화 업체들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라며 수모를 겪는 상황에서 오히려 '갈라파고스'를 회생의 기회로 삼으려는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후지쓰의
▲ 후지쓰의 'Arrows M04'. 청결성을 중요시하는 일본인 소비자의 특성을 고려해 개발됐다. /자료=후지쓰 홈페이지
후지쓰는 지난달 '씻을 수 있는' 스마트폰을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후지쓰의 'Arrows M04'는 세제로 스마트폰을 씻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알뜰폰(MVNO) 전용 모델로 출시돼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3만5000엔(약 35만원)으로 책정됐다.

스마트폰은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것은 물론 쓸 때마다 화면에 지문이 묻기 때문에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 또한 식사, 흡연 등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만큼 '씻을 수 있다면 씻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용자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후지쓰 자체 조사에서 스마트폰을 씻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은 79.3%에 달했다. 후지쓰는 이 점에 착안해 상품을 개발했다. 후지쓰 관계자는 "물뿐만 아니라 세제로도 씻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위생적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요구는 줄곧 이어져 왔다. 후지쓰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청결 문제에 54.9%가 '신경 쓰인다'고 답해 절반이 넘는 사용자가 관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항균 소재를 사용해 위생적으로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을 사고 싶다"는 응답도 45.1%를 기록했다. 후지쓰는 과거 피처폰 시절 타사보다 먼저 방수 기능을 적용해 그 강점을 살려 세제로 씻을 수 있는 기능으로 진화시켰다. 후지쓰뿐만 아니라 소니,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은 일본인의 입욕 습관에 중요점을 두고 방수 기능을 중요 기능 중 하나로 강조해왔다.

원래 일본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일본 제품이 '가라게(갈라파고스 휴대전화)'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어왔다. 결제 기능, 이동식 TV 등 일본 고유의 기능을 갖춘 제품이 압도적인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폰이 일본에 상륙한 이후 일본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폰의 뛰어난 조작성이 평가받기 시작하면서 모든 업체가 피처폰을 접고 스마트폰 생산에 나섰다. 그러나 기본 운영체제가 구글의 안드로이드로 통합되면서 제품을 차별화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 대만 등의 저가 제품이 일본에 몰려오면서 일본 소비자들 사이에서 '굳이 일본 제품이 아니어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 같은 변화 속에 파나소닉, NEC 등 일본 대표 전자업체들은 휴대전화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후지쓰는 '씻을 수 있는 휴대전화'에 일본 업체 고유의 '갈라파고스' 특징을 아낌없이 넣었다. 예를 들면 튼튼한 제품을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의 선호도를 반영해 제품 외관을 스테인리스로 제작해 강도를 높여 높이 1.5m에서 떨어뜨려도 화면이 깨지지 않도록 제작했다. 후지쓰가 낙하점으로 설정한 1.5m는 평균 신장인 일본인 남성이 통화 시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있을 때의 높이를 산출한 것이다.

또한 고령 이용자를 위해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지 않은 전화가 걸려오면 상대방에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녹음되고 있다"는 음성메시지를 흘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일본 업체이기에 실현 가능한 일본인 취향의 기능을 탑재했다. 일본 스마트폰 업체의 위기를 오히려 일본 기업의 '갈라파고스적' 특징으로 살려보겠다는 반전을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대의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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