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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원전축소· 신규건설 국민뜻 묻자

  • 김세형
  • 입력 : 2017.10.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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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 현장 /사진=한국수력원자력
▲ 신고리 원전 5·6호기 현장 /사진=한국수력원자력
[김세형 칼럼]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재개하고 향후 원전 축소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공론화위원회의 결말이 난 후 세상은 비교적 평온하다. 위원들은 공사 재개엔 약 60%, 원전 축소엔 53%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런 결말로 김지형 위원장의 공론위는 청와대에도, 신고리 5·6호기를 둘러싼 이해당사자에게도 각각 떡을 나눠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는 조속히 공사를 재개하고, 그 대신 탈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정책을 차질 없이 수행하겠다며, 원전 신규 건설은 전면 중단하고, LNG·신재생발전 쪽에 주력할 것임을 내비쳤다. 원전 해체 시설을 동남권에 설립하겠다는 구상도 새로 냈다. 그리고 "이번 원전 공론화는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인 만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다양한 대타협이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문재인정부의 원전 정책은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재개하지만, 신규 원전 건설도 일절 않고, 2022년 수명을 다하는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해체 기술에 투자하는 등 탈원전 쪽으로 가겠다는 분위기다. 공론화 이후 대책을 내면서도 해외 원전 진출을 돕겠다거나 원전 새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는 등의 의지는 정부에서 일절 나오지 않았다.

다음달 말까지 에너지 수급계획을 짤 터인데 원전 비중, 신재생이나 LNG 비중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 주목된다.

자, 여기서 하나의 상상을 해보자. 만약 공론화위 결론이 공사중단 55%, 공사재개 45%로 중단 쪽에 10%포인트 높은 식의 결론이 났다면? 그래도 세상은 조용했을까? 정부가 이미 30%를 짓고 매몰비용 2조8000억원이 들어간 신고리 5·6호기를 중단 강행으로 밀고 나간다면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이번 재개와 중단의 대결은 엄청난 투자를 해놓은 측과 패배해도 손해 볼 게 없는 '공짜세력'과의 싸움이었다. 다행히 과학이 공포를, 진실이 괴담을, 이성이 분노를 이긴 결말을 내서 그렇지 뒤집어졌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공론위의 법적 근거, 국민의 대표성 등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재개 세력은 절대로 승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당 지역인 울주 군민들, 그리고 원자력학계 등이 법적, 물리적으로 거세게 저항했을 것이다. 이러한 큰 후폭풍을 막은 것은 20·30대 공론위가 미래를 보는 혜안으로 생각을 바꾼 덕이 크다. 2017년 대한민국에 큰 다행이다.

새 정부가 신고리 5·6호기를 들고나온 것은 문 대통령의 공약 때문이었다. 공론위가 토론·숙의를 거듭할수록 젊은 층도 신고리 공사 재개 쪽으로 20%대에서 56%나 뒤바뀌었다. 이런 정도의 사안이라면 아무리 공약이라도 국정기획위 등이 걸러서 그냥 넘겼어야 옳았을 것이다. 선거 후 공약을 다 지키는 대통령은 별로 없다. 대선 당시 우리 국민은 박근혜 국정농단에 대한 실망과 보수에의 환멸이 표심을 결정했지 탈원전 공약을 눈여겨본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득주도성장론 적폐청산과 더불어 최대 역점사업으로 탈원전을 밀어붙인 것은 핵심 브레인들의 순전한 이념적 집착에서 나온 것이다. 원래 진보세력은 1960년대 반전(反戰) 운동에서 팽창했고 곧 반핵(反核)을 정신적 토대로 구축했다. 신고리 공사 재개의 결론이 났음에도 탈원전, 해체기술에 집착하는 모습은 그것이 진보의 아이콘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론위 출범 당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80%를 상회하고 진보이념이 훨훨 날아 '공사 중단=영구 폐쇄'로 등식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3개월 후 재개하면 1000억원이 손해 나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상정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틀렸다. 무엇이 찬반을 갈랐는가.

중단론자들은 원전의 위험성, 균도네 가족 갑상선암 발병 이야기, 후쿠시마 사태 1368명 사망 등등 공포와 감성을 공론위원들에게 팔았다. 공론화 최종발표 후 댓글을 보면 "만약에 사고가 나면…"으로 시작되는 글들이 상당히 많다.

이에 원전 옹호론자들은 사고가 나더라도 한국의 원전은 격납고 두께가 122㎝로 일본의 10㎝보다 열 배 이상 두껍고 일본도 방사능 유출은 없어서 방사능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다는 과학으로 설복했다. 소련 체르노빌은 격납시설이 없었다. 세계적으로 600개가량의 원전이 돌고 있고 지금껏 3건의 사고가 났는데 그중 가장 나중에 난 사고인 후쿠시마에서도 인명사고는 없었다.

그럼에도 사고가 난다면, 방사능이 유출된다면, 그렇게 가정에 가정을 소설로 써서 억지를 부려 "하늘이 무너진다면, 그리하여 그 무거운 하늘의 무게에 깔리면 안 되므로…"라는 식으로 막가면 답이 없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탄 세일러 교수와 넛지(nudge)를 공동 저술한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루머(Rumor)라는 저술에서 뜬소문은 분노와 불확실성을 무대로 번져나간다고 해부한다. 원전 반대론자들은 그러한 감정의 폭포수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진실이 공론화위원들을 확 깨웠다. 그들은 그 꼼꼼하다는 일본이 왜 원전 가동으로 컴백하는가, 독일이 원전을 신재생으로 돌린 후 전기료가 300%나 뛰어올라 고통받는 이야기, 바람 태양광에 의존하는 신재생은 날씨의 변덕으로 안정된 에너지원으로 실패한 사례들에서 이성(理性)을 찾았다.

그리고 한국 원전기술이 유럽원자력기준(EUR)을 세계에서 5번째로 통과해 수출산업으로 갈수록 유망하고 현재도 원자력에 매달려 있는 일자리가 9만명을 상회하는 데 현실에 눈을 떴다.

공론화를 통한 숙의가 진행되는 동안 김지형 위원장은 무척 공평했다고 재개론자들도 그의 인격을 칭찬한다. 중단론자들이 찬반토론에서 한수원 같은 전문가집단을 배척하려 했을 때 대법관 출신인 김 위원장은 "전문가일수록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렸다.

이제 공론화 이후 제기되는 두 가지 문제를 언급할 때다. 이 글의 서두에 문 대통령은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축소 의견을 낸 만큼 신재생 비중을 늘리는 등 탈원전을 추진하겠다, 그리고 숙의민주주의의 좋은 모델이 된 만큼 앞으로도 활용하자는 생각을 적시했다. 이 두 가지가 공론화 이후 한국 사회와 원전이 갈 길인가. 간단하지 않은 난제라고 생각한다. 잘못 다루면 향후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우선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축소 53%의 견해를 냈다는 부분. 공론화위의 다른 설문에서는 '탈원전 유지'를 따로 물은 설문에 찬성률이 22%밖에 안 됐음에도 이를 발표하지 않고 숨겼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면서 공론화위가 설문을 만들 때 원전비중 유지, 축소, 확대 등에 대해 개념 설명조차 하지 않아 위원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게 낸 낚시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에는 기당 4조원씩 8조원이 든다. 그런데 현재 원전(原電)이 공급하는 전력요금은 10조원이고 이것을 그다음으로 싼 LNG로 대체하려면 24조원이 든다. 1년에 그만큼 큰돈이 걸린 문제이니 30년, 50년이 가면 500조, 1000조원이 드는 국운이 걸린 사안이다. 신재생은 말이 그럴듯할 뿐이지 풍력, 태양광은 할 땅도 없고 주민들도 소음, 환경 저해로 반발이 커 신재생발전소 건립은 헛낭만일 수 있다. 현재 한국 원전은 29%이고 프랑스는 76%다.

그런데 원전 유지는 향후 발전량을 1억1000만㎾까지 늘릴 경우 원전이 29%를 유지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현재 원전 23기가 돌아가고 있는데 신규 건설은 하지 않고 23기를 계속 유지하라는 건지 불분명하다. 가령 확대라도 비율을 29%로 유지만 하면 그것은 확대가 아닌 것인지 신규 건설 일체 중단이 확대 금지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로 말장난하고 싶지는 않다.

신규 원전 건설 문제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게 들여다보자. 미국, 영국이 다시 짓고 중국이 60기나 신규 건설하고 심지어 스웨덴 같은 나라도 원전을 확대한다면 무슨 곡절이 있는지는 좀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나라들이 바보인가.

한편으로 원전기술은 진화한다. 미국은 2년 후쯤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완료를 발표하리라 한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냉각기를 돌리는 전기시설이 고장 나 원자로를 식히지 못해 융해됨으로써 터졌는데 어떤 원전도 냉각기가 안 돌면 즉시 2000도 이상으로 열이 치솟아 큰 사고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SMR는 2주 동안은 사고 나고 조치를 안 해도 냉각시설이 유지되는 신기술 원전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바닷속에 원전을 건설하는 기술도 발표되고 있다. 그러면 전혀 냉각시설 사고 같은 것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냉각수 돌리는 게 문제가 되니 공냉식 원전기술도 개발되고 한국도 사우디 진출 원전의 스마트형은 신기술을 장착한다고 한다.

이렇듯 원전은 발전한다. 원전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600조원의 산업인데 향후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다. 한국은 이 분야 선두주자다. 문재인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방침은 현재의 원전이 갖는 위험, 문제점이 지속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산업으로 치면 인공지능(AI)이 개발되지 않거나 4차산업혁명이 없다는 가정하에 현재의 굴뚝산업을 끌고 가자는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에 불과하다. 한국이 선택할 올바른 길은 신규 건설을 하면서 원전기술을 계속 쫓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이번 원전 공론화위에는 동영상, 강연, 양 진영 최고 브레인의 최후 진술을 듣고 결정을 내릴 때까지 채 한 달도 안 주어졌다. 스위스 33년, 독일 14년이 걸린 과정을 한국은 한 달에 마스터했으니 이것은 속도로 치면 마하 10쯤 돼서 '익는다'는 뜻의 '숙의'라는 용어를 쓸 수 없다. 이를 두고 민주주의가 꽃피웠느니 하는 인간들의 말은 한국의 수준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이다. 공론화이론을 개발론자(피시킨 스탠퍼드대 교수)에게 배운 한규섭 서울대 교수도 함부로 한국에서 실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번 공론화에서 뒤집혀진 결론이 났으면 나라가 흔들거렸을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위반한 재앙으로 기록될 뻔했다. 정부로서는 '후유~' 한숨을 돌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옳다. 다시는 무모한 시도를 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설사 하더라도 독일처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직접 TV에도 출연하고 5년, 10년 걸쳐 그야말로 숙의(熟議)란 낱말에 어울리게 생각이 익는 그런 경우에만 어쩌다 써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 한국이 갈 길은 명확하게 다시 정해져야 한다. 즉 원전 축소, 숙의민주주의는 최종 결론이 아니며 한국민의 좌표를 새로 정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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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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