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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노예 4030만명 해결나선 동남아국가들

  • 임영신
  • 입력 : 2017.12.0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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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80] 미국 CNN방송이 리비아에 체류 중인 난민들이 노예나 다름없이 거래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현대판 노예'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판 노예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아동착취, 성매매 등에 시달리거나 고용주로부터 협박과 폭력, 강압, 권력남용 등을 겪고 있지만 이를 거부하거나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을 말한다.

현대판 노예는 숨은 범죄라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도 많다.

최근 아세안 10개 회원국 가운데 싱가포르와 더불어 산업화 수준이 높은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현대판 노예'를 없애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전 세계 노예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 호주 비영리기관인 '워크프리재단(Walk Free Foundation·WEF)'에 따르면 현대판 노예는 지난해 기준 전 세계 403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아세안에 있는 현대판 노예는 최소 26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세안 국가별로 보면 전체 인구 대비 현대판 노예의 비중은 캄보디아가 1.648%로 가장 높고 이어 미얀마(0.956%), 브루나이(0.805%), 태국(0.625%), 말레이시아(0.425%), 필리핀(0.398%), 인도네시아(0.286%), 싱가포르(0.165%), 베트남(0.152%) 등 순이다. 아세안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산업 발전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상위권에 올랐다. 태국은 현대판 노예가 무려 42만5000여 명이며, 말레이시아는 12만8000여 명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지난 7월 현대판 노예의 온상이 되고 있는 외국인 불법 노동자 단속에 나서고 있다./사진=EPA 연합
▲ 말레이시아 당국이 지난 7월 현대판 노예의 온상이 되고 있는 외국인 불법 노동자 단속에 나서고 있다./사진=EPA 연합

태국과 말레이시아 정부는 올 들어 현대판 노예 근절을 위한 단속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태국 정부는 지난 6월 외국인 등을 불법으로 고용할 경우 고용주에 최대 80만바트(약 2600만원) 벌금을 물리기로 결정했다. 다만 고용주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등 혼란이 커질 것을 우려해 내년까지 시행을 미룬 상태다. 태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불법 노동자가 200만명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불법 고용 문제의 온상인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지난 10월부터 건강진단을 엄격히 시행해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하며, 내년부터 이들의 복리후생을 기업이 책임지도록 '고용세'를 부과하고 2019년에는 고용세를 인상할 예정이다.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현대판 노예' 대책을 부랴부랴 만든 이유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와의 무역 관계 때문이다. 이 두 나라는 미국·유럽 시장에 더 많은 상품을 수출하고 싶지만 노동자 인권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미국은 두 나라의 노동자 인권 실태가 미국 기준으로 최하위에 해당된다며 통상협정 체결을 보류했다.

미국보다 인권에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유럽연합(EU)은 올해 말레이시아의 주력 수출상품인 팜오일에 대해 2020년부터 생산과정에서 인권보호 기준을 충족한 것에 한해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팜오일의 40%를 수출하고 있으며, EU는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소비국이다. 따라서 EU의 이 같은 결정은 말레이시아로서는 커다란 악재다.

그런데 태국과 말레이시아 정부가 '현대판 노예' 줄이기에 나서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노동력 부족과 이에 따른 인건비 인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농업, 수산업, 건설업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태국 정부는 최근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분야를 확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태국에서는 육체노동자와 가정부만 외국인 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외국인 고용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해왔지만 최근 수출품 생산 기업에 한해 이 비율을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임영신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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