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스페셜리포트

[김세형칼럼] 청와대 참모들의 정신승리법

  • 김세형
  • 입력 : 2017.12.27 11:5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김세형칼럼] 2017년의 끝이 어렵다.

제천스포츠센터 화재에서 많은 인명이 희생당했고 홀대론 속에 치러졌던 한중 정상회담 이후 속시원한 이야기도 잘 안들려 온다. 역경에 처했을 때 헤쳐나가는 마음가짐을 보고 우리는 개인이나 국가의 역량을 알아본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제천사고 현장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위로한 것은 국민의 불행을 함께하고 상처를 보듬겠다는 최고지도자의 아량을 나타낸다. 전직 대통령들이 총리나 행정안전부 장관을 보냈던 관행에 비하면 그렇다.

제천사고로 할머니·딸·손녀 3대에 걸쳐 사망한 참화에 국민들은 세월호 사고로 그 난리를 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냐고 한탄했다. 사고현장은 여전히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렵게 불법주차로 점령당한 상황인데도 국회는 관련법을 통과시킨다는 말이 없다. 추미애, 김성태 대표가 달려와 무릎꿇고 흰 국화꽃을 바친들 무슨 소용이 있나.

한국은 불행에 윗입술을 꽉 깨물고 바꾸는 영국인을 배워야 한다.

그러자면 대통령과 장관, 지자체, 감독기관들이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들은 가장 냉정하게 사태를 직시하고 전화위복을 일궈내야 할 책임이 있다. 임시방편으로 모면하려 거짓말을 하면 뒤탈은 더 커진다.

그런 취지에서 생각해볼 사안들이 있다.

23일 문 대통령이 제천사고 현장에 다녀올 때 박수현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유가족의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 이라며 "돌아오는 차안에서 또 울먹이신다"라고 썼다. 당시 일부 유족은 장례식장에서 "세월호 이후 달라진 게 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박 대변인은 "대통령의 숨소리에 울음이 묻어 있었다. 아니, 대통령은 분명 울고 계셨다"며 "국민을 위해 울어주는 대통령! 국민의 욕이라도 들어야 한다는 대통령! 국민 한 분 한 분에게 엎드리는 대통령!"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여중·고 동창인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이 기사를 보고 "내 나라 대통령이 어디를 가든 무슨 말을 하든 그의 진정성이 전달되고 온전히 그를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이 국민에게 주는 안정감이란"이라고 썼다.

국민의 눈물은 안보이고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것으로 국민들은 느낄 것이다.

차라리 침묵이 금이었을 것이다. 제3자적 냉철함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 유족들의 바람을 직시해보라. 그들은 누구를 벌하자는 게 아니라 소방체계, 그리고 건물주 등의 관리 소홀, 안전검사업체의 관행 등 시스템 문제를 바로잡자고 제안했다. 박 대변인은 바로 그 점을 말했어야 한다.

제천사고로 20명이 죽고 그 이상이 다친 것은 분명 국가관리의 실패다. 청와대와 정부는 실패를 치유할 대책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심리적 위안으로 해결할 수 없다.

대통령이 국민 한 분 한 분을 업어드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나. 국민 수준은 이제 선진국 반열에 다다랐다.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100년 전 망해가는 청나라 백성들의 우매함을 고발한 阿Q정전의 주인공이 써먹는 '정신승리법'을 털어 낼 시간이다.

고장난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고 몇 마디 위안으로 패배를 승리로 바꿀 수는 없다.

사드 보복을 진짜 해제하면 홀대론도 참아내겠지만, 어쨌든 한중 정상회담에서 홀대를 받은 건 분명했다. 홀대의 귀책 사유가 우리한테 있으면 인내해야겠지만 섣부른 변명은 세계에 한국을 얕보게하는 빌미를 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침묵이 차라리 금이었다. 홀대론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이 회담 다음날에 줄줄이 내놓은 변명은 귀를 의심케 했다.

우리 대통령만 혼밥을 먹은 게 아니고 트럼프도 방한 시 혼밥을 먹었다고 둘러댔다. 트럼프가 한국에 도착 후 3끼 중 두 끼를 문 대통령과 함께했으므로 비교대상이 안된다. 한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금색대청에서 만찬을 했다, 만찬 후 별도의 문화공연을 봤다고 설명했지만 2013년 한중 정상회담 때도 그랬다. 대통령의 충칭 방문에 맞춰 야경을 휘황하게 밝혀줬다는데 관광지인 그곳은 일년상시 그랬다는 팩트에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방중 성과는 100점 만점에 120점이었다는 청와대의 평가, 대통령께서 일반식당에서 혼밥은 13억 중국 국민과 함께 조찬을 하신 것이란 설명은 국민들이 알아서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현상을 전 정권에서도 무수히 봐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동방문 시 귀한 낙타고기를 처음 대접받았다고 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도 똑같은 코스로 식사한 게 금방 들통났다. 순방외교에서 뭔가 틀어지면 국내 여론이 나빠질까봐 당황한 참모들이 성공인 양 꾸미는 것은 대통령도 모를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참모들이 빚어낸 재난이다. 소득 3만달러,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대국반열에 드는 한국은 이제 그런 낙후성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阿Q정전의 노신(魯迅)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원인을 캐서 수술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못을 직시하지 않고 심리조작을 통해 승리로 전환시켜버리는 정신조작법은 패배의 은둔이다. 거짓말은 또다른 기하급수적 거짓을 생산해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 그래서 청나라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망한 후 1949년 신중국 수립까지 38년을 허비했던 것이다.

트럼프와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은 늘 티격태격하지만 큰 구도를 망가뜨리진 않는다.

[김세형 고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