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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성녀 에비타의 나라... 곳곳에 포퓰리즘 망령

  • 오신혜
  • 입력 : 2017.12.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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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영화 '에비타'에서 에바 페론 역으로 열연한 마돈나.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88]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난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않아요."(뮤지컬 '에비타' 중 'Don't Cry for Me Argentina')

뮤지컬을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귀 기울여보았을 드라마틱한 멜로디. 영국의 전설적 작곡·작사가 콤비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가 의기투합해 만든 뮤지컬 '에비타'(1978)는 공개 당시 전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리바이벌되고 있다.

요즘 세대에게는 팝 디바 마돈나가 주인공 에바 페론으로 열연한 1996년 동명 영화로 더욱 익숙하다. 눈부신 미모와 타고난 언변, 시골뜨기 사생아에서 일국의 영부인이자 '빈자들의 성녀'로 도약했으나 서른셋 나이에 요절한 파란만장한 삶은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별칭 '에비타', 1919~1952)을 완벽한 뮤지컬 주인공으로 만든 요소들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레꼴레따 공동묘지에 있는 에바 페론 묘.
▲ 부에노스아이레스 레꼴레따 공동묘지에 있는 에바 페론 묘.
그러나 현실 속 에바 페론의 존재감은 극중 이미지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생생하다. 2018년을 코앞에 둔 지금, 아르헨티나에서 직접 체감한 그녀의 영향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지난 14일 대통령궁(카사 로사다) 앞을 비롯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전역을 마비시킨 대규모 반정부시위 현장에는 에바 페론의 초상화가 그려진 피켓들이 등장했다. 도심 속 압도적 위용을 뽐내는 전국노동조합(CGT) 건물 외벽에는 마이크를 부여잡고 열변을 토하는 에바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역사적 인물들이 가득한 공동묘지 레콜레타에서도 그녀의 시신이 매장된 가족묘 앞에만 꽃들이 그득했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100페소(약 6000원) 지폐의 주인공 역시 에바였다. 죽은 지 65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염원으로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속 전국노동조합(CGT) 건물 외벽의 에비타 그림.
▲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속 전국노동조합(CGT) 건물 외벽의 에비타 그림.
아르헨티나 초원 지대의 작은 시골마을 한 농장주의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는 가난하고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6세 무렵 배우의 꿈을 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와 갖은 노력 끝에 꽤나 인지도를 지닌 라디오 스타 겸 연극배우로 거듭났다. 연예인이 된 그녀는 한 자선행사에서 훗날 대통령이 되는 후안 도밍고 페론 노동부 장관을 만나 그의 연인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적 커리어를 시작했다.

노동자 권리 향상, 주요 산업 국유화, 외국 자본 축출 등 국가사회주의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노동자 계층과 사회 저소득층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가던 페론이 정적들의 견제로 구금되자 노조를 동원해 가장 먼저 석방운동에 나선 사람도 에바였다. 타고난 카리스마와 매력의 소유자였던 에바의 지원과 노조 총파업의 힘으로 복권된 페론은 1946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에바는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 됐다.

페론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의 정치적 유산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혹독하다. 페론 정권은 이른바 '페로니즘'을 기치로 국가 재정상황과 중장기 경제발전 수순을 고려하지 않은 단기적 포퓰리즘 정책들을 쏟아냈다. 페론은 노동자 보호를 이유로 외국 자본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본격화하고 기존의 수입대체 정책을 더욱 강화하며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단초를 마련했다.

에바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에바 페론 재단'을 만들어 빈민과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해 식량·주택·교육은 물론, 현금 보조금까지 포함된 대규모 무상 '퍼주기' 정책을 이어갔다. 전 세계 기준에 맞춘 산업구조 개혁, 감시와 견제가 가능한 경제·금융 제도 확립, 이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대신 특정 세력의 표를 얻기 위해 실시한 단기적 정책들의 향연은 이후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10년 단위로 이어진 아르헨티나의 극심한 경기불황과 고질적 인플레이션의 시발점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빈부격차에 시달리던 수많은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국민들에게 에바는 '성녀'가 됐다. 1952년 에바가 서른셋 나이에 자궁암으로 사망하자 국민들은 한 달간 그녀의 관에 꽃을 바치며 광적으로 애도했다. 인기 있던 부인을 잃은 뒤 정치적 세력마저 약화돼 해외로 망명한 페론 대통령은 이후 1973년 에바의 이미지를 후광 삼아 또 한번 대통령에 당선됐다.

에바 페론의 그림자는 최근까지도 아르헨티나 카사 로사다에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페로니즘 계승을 기치로 연달아 집권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반세기 전 페론과 에바의 것을 빼닮은 대규모 무상복지·재분배 정책을 실행했다. 특히 스스로 에바의 이미지를 자처한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막대한 정부 예산을 들여 단기간에 공무원 일자리를 200만개씩 늘리고 자녀양육·실업·전기·교통 등 보조금의 종류와 무상주택을 늘리는 등 수많은 선심성 정책을 실행하는 한편, 여기에 드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은행에 직접 개입해 돈을 무분별하게 찍어냈다. GDP 성장률이 2% 남짓인 와중 매년 24~46%까지 폭등한 살인적 인플레이션율을 크리스티나 정부는 통계청의 발표를 조작하면서까지 숨겼다. 현지 유력일간지 클라린에 따르면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1982년 이래 역대 최고의 재정적자(GDP의 7.2%)를 유산으로 남기고 퇴임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심 한가운데서 에바 페론의 거대한 벽화가 보이고, 시위 현장에 그녀의 포스터가 등장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심각한 빈부격차와 세대를 통해 이어져온 오랜 포퓰리즘의 전통이 그 배경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상순 아르헨티나 코트라(KOTRA) 관장은 "현재 아르헨티나는 4인 가구 기준 월평균 소득이 1000달러가 안 되는 비중이 전 국민의 절반일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며 "긴축정책을 추진 중인 현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도 지지율과 정치적 생명 때문에 뿌리 깊게 정착한 포퓰리즘 정책을 단숨에 바꾸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12일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에서 만난 법대생 세실리아 씨는 "어릴 적부터 페로니즘을 경험했던 지금의 40~50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함에 따라 과거보다 정치적 참여율이 낮은 요즘 세대가 그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고, 혹은 아예 노동자와 저소득층의 권리 향상을 위해 아직도 스스로 페로니즘의 기치를 옹호하는 젊은 세대가 꽤 있다"고 했다.

물론 변화의 조짐은 있다. 페로니즘 혁파를 내건 기업가 출신 마크리 대통령이 당선된 2015년 대선, 또 마크리 정부가 국민 상당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한 대규모 긴축정책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승리를 거둔 지난 10월 총선이 그 예다. 11일 만난 한인 교포 2세대 변겨레 아르헨티나 연방정부 문화부 차관보는 "지난 10월 선거 투표자의 50% 이상이 페론과 에바의 정치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2030세대였다"며 "마크리의 승리는 1950~1960년대 정치적 언어에 아직도 갇혀 있던 전 정권과 달리 아르헨티나가 미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인했다"고 밝혔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녀의 영향력도 결국 세월을 이기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지 65년이 지나도록 국민의 마음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에바는 분명 근현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존재다. 아름답고 매혹적이었지만 눈앞의 열정 그 이상을 내다보는 데 실패했던 '빈자의 성녀' 에비타. 50년, 100년 뒤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의 뇌리에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새겨져 있을지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얘깃거리다.

[부에노스아이레스/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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