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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짐바브웨에선 안전자산이라고?

  • 박의명
  • 입력 : 2018.01.0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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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90]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악명 높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비트코인 광풍이 불고 있다. 나날이 하락하는 화폐가치에 비해 비트코인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짐바브웨 가상통화 거래소인 골릭스(Golix)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3일(한국시간 오전 9시 기준) 2만999달러(약 2235만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다른 국가 거래소에서 1만5000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것에 비해 월등히 높다. 가상통화 열풍으로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붙은 한국보다도 200만원 이상 높은 금액이다.

짐바브웨의 하이퍼인플레이션 당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1000억달러 지폐. /사진=EPA
▲ 짐바브웨의 하이퍼인플레이션 당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1000억달러 지폐. /사진=EPA

로이터통신은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높은 화폐지만 짐바브웨에서는 상황이 다르다"며 "자국 화폐의 변동성이 워낙 크다 보니 비트코인이 화폐가치를 보존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자리한다. 2억%에 이르는 물가상승률을 감당하지 못한 짐바브웨 정부는 2009년 자국 화폐를 폐지하고 미국 달러를 공식 화폐로 채택했다. 하지만 달러 부족 현상으로 은행 인출 금액에 '수수료'가 붙으면서 사실상 매월 두 자릿수로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월 100달러를 꺼내기 위해서는 120달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약 180달러가 필요하다.

수도 하라레에 거주하는 아놀드 만히즈와(34)는 로이터에 "최근 모든 계좌를 비트코인으로 바꿨다"며 "이 방법만이 내 화폐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전했다. 이어 "일반 계좌에 돈을 넣으면 빈털털이가 될 수도 있지만 비트코인은 투자 가치도 있다"며 "지난해 중순 20달러어치 비트코인을 샀는데 지금은 가격이 200달러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최소 거래금액이 0.0001개여서 소량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자녀들의 유학 비용을 송금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짐바브웨 중앙은행이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 해외 송금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릭스 거래소는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의약품, 식량 등에 대한 해외 거래를 우선적으로 승인하고 있다"며 "부유층은 자녀들에게 유학 비용을 보내기 위해 비트코인 거래소를 이용하고 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무가베 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짐바브웨 시민들. /사진=AP
▲ 무가베 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짐바브웨 시민들. /사진=AP

비트코인 인기는 짐바브웨의 정치 불안이 심해지면서 더욱 치솟고 있다. 지난해 11월 초 발생한 쿠데타로 37년 동안 집권한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안전 자산'인 비트코인으로 돈이 몰리는 것이다. 골릭스에 따르면 에머슨 음난가그와가 차기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난해 11월 24일 비트코인 가격은 전날 대비 20% 급등했다. 이후 가격은 한달 동안 폭등해 지난해 12월 중순에는 3만1200달러(약 3300만원)를 찍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세 차익에도 불구하고 해외 투자자들이 짐바브웨 시장에 진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짐바브웨에 비트코인을 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겨도 외화 반출 규제에 막혀 본국으로 돈을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짐바브웨의 한 애널리스트는 "짐바브웨의 비트코인 가격은 해외에서 큰 의미가 없다"며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비트코인을 파는 순간 고향으로 돈을 가져가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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