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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로보 판사가 이재용 재판한다면

  • 김세형
  • 입력 : 2018.01.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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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김세형 칼럼]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인공지능(AI)으로 어떤 기발한 무기가 만들어져 인간을 위협하게 될까? 자신을 걷어찬 애인을 해코지하려는 스토커가 킬러 드론에 사진과 주소를 입력한다. 드론은 지정된 시간에 날아가 그 인물을 제거한 다음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자폭시켜버린다. 더 기발한 무기도 있다. 작은 벌 크기의 드론이 인간의 눈에 초소형 탄환을 발사해 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눈에서 뇌에 이르는 조직은 단단하지 않아 눈을 뚫고 들어간 탄환은 뇌를 타격해 죽이는 데 비용도 아주 적게 든다. 미국 MIT의 맥스 테그마크 교수(물리학)가 상상해본 미래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두 번째 대국에서 37수를 기억하는가. 인간이 바둑게임을 창안한 후 1000년간 축적한 지혜를 간단히 무시해버린 '5선에서 어깨 짚는 수'는 AI의 지식이 인간보다 뛰어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구글의 번역 서비스는 인간 못지않은 능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우주탐사선 발사 시 사소한 인간의 실수로 대폭발한 사고도 이젠 AI의 도움으로 막을 수 있다. 뇌 수술, 증권투자에서 AI의 조력은 놀라운 능력을 과시하고, 자율주행에선 교통사고를 90% 줄일 수 있다.

AI가 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일까. 법이 효율과 공정을 끄집어내는 것이라면, 이때 AI는 인간보다 놀라운 판결문을 작성해줄 수 있을까. 로보(robo) 판사는 두 눈을 가리고 형량을 저울에 다는 디케 여신처럼, 인간의 편견과 감정이입을 배제함으로써 오직 법리와 증거에 의해서만 판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역사적 사건에 연루된 재판이나 정치적으로 파당 분위기가 작용하는 재판을 맡는 판사는 무겁게 짓누르는 압력 때문에 심장이 터져버릴 지경일 것이다. 그는 타협책으로 '모범답안'을 작성해 안전지대로 도피하고 싶은 유혹이 간절할 터다. 큰 승부에 명국(名局) 없다는 바둑의 격언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고법 판결은 사실관계를 다투는 마지막 재판이다. 전 대통령 탄핵 사건과 아시아 최대 기업의 대주주가 연루된, 광복 후 최대 재판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문재인정부 탄생의 기원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 세력의 압력 등의 상황을 종합해 한 로펌 대표는 "과연 사법부의 정의가 달성되겠느냐"고 회의한다.

만약 삼성 변호인단의 주장대로 무죄 판결이 나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량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탄핵의 정당성과 연관지으려는 추론도 나올 거라는 우려다. 그럴 경우 일어날 풍파를 어떤 재판관이 감당하려 들겠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1심'이 늦어지는 바람에 '이재용 2심'을 먼저 하게 된 것도 삼성에 불리하다는 전망도 있다.

박영수 특검은 2심 재판에서 12년 구형을 한 여러 사유를 열거했지만 재판의 핵심 쟁점은 포괄적 승계구도에서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기 위해 뇌물을 줬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이란 청와대가 보건복지부에서 국민연금공단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통해 국민연금기금이 삼성 측 손을 들어주게 해 결국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됐고, 이에 따라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4%가 이재용의 지배력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말한다.

특검 측이 말하는 뇌물은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부탁해 정유라의 승마 지원, 스포츠영재센터 지원에 사용한 총 89억원을 지칭한다. 그 돈이 박근혜에게 한 푼도 전달된 게 아니라는 반론에는 제3자 뇌물 또는 동일회계 논리를 내세웠다.

1심 판결은 이재용은 청탁한 적이 없고, 박근혜는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증거도 못 찾았다. 개별 사안으로는 모두 범죄 구성 부인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도 삼성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도움을 목말라 했을 것이고 그것을 알고 청와대는 도와줌으로써 삼성 측은 돈으로 보상했다는 논리의 집을 지어 거기에 '묵시척 청탁'이란 간판을 내걸어 5년형을 언도한 것이다. 산등성이 산골짝에 '나무'가 없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드론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보니 저 아래 '숲'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는 격이다. 포괄적 승계라는 안개가 어렴풋이 서려 있는 가운데 말이다.

준 돈이 하필 정유라가 승마 연습을 하는 독일로 건너가야 해서 횡령과 재산 국외 도피까지 덤터기로 얹어졌다. 2심 구형 시 박근혜와 이재용이 한 번 더 만났다는 제3의 독대설에 대해서는 이재용이 내가 치매가 아니라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건희 회장의 독자로 후계자 경쟁구도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승계구도 도움을 대통령에게 요청했겠느냐, 승마 지원과 재단(미르·K스포츠) 지원은 삼성뿐 아니라 다른 그룹도 했다며 자신은 피해자라고 강변했다. 창업자 이병철의 손자로서 아무리 못난 놈이라고 대통령의 도움으로 기업 승계 혜택이나 받는 사람은 아니라고 억울함을 최후변론에서 호소했다.

법리상으로는 뇌물을 받는 사람은 무기징역까지 죄가 커지지만 뇌물 제공자는 최고형이 5년인데 유독 삼성 사람들에게만 최저 7년 이상을 구형한 특검팀을 원망했다.

박영수 특검은 삼성이 최순실 측에 거액을 지원하면서 한 시민단체의 후원금을 모질게 중단했다며 인정머리 없는 가혹함을 부각시키려 했다.삼성 측은 5000억원 이상을 한국 사회를 위해 매년 내놓는다며 정유라를 지원한 63억원 정도는 거액의 후원축에도 못 든다고 일축했다. 박영수와 삼성 가운데 누구의 심성이 더 모진지 모르겠다.

이 재판은 전 세계가 주목한다. 삼성전자는 애플, 인텔 등과 다투는 세계 1위 정보기술(IT) 업체다. 이재용은 그동안 시진핑 등 국가 정상들과 짐 쿡(애플), 래리 페이지(구글), 마윈(알리바바) 등 세계 초일류 기업 회장들을 만나 정보를 듣고 회사를 이끌어왔다.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서 경쟁 업체들은 이재용의 부침이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각국 사법부는 한국 사법부의 판결 태도와 법리 적용의 정당성을 체크하고 전 세계 언론은 이를 타전할 것이다.

고법 판결에 불복할 경우 대법원의 판결이 한 차례 더 남아 있지만 그것은 법리적용의 옳고 그름만 따질 뿐 사실확인 판결은 이번으로 끝이다. 이번 판결문은 역사가 될 것이고 법리적용은 두고두고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사법부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마지막 성소다. 그러므로 여기에 감정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역할을 해선 안된다. 법관은 오로지 진실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재판관도 인간이기에 이 재판에서 사법부의 정의를 바랄 수 있느냐는 로펌 대표의 말은 울림이 큰 것이다. 촛불이라는 요소가 법의 객관성을 외면하고 편향성을 강조할 것이라는 우려도 큰 편이다.

그렇게 상황이 어렵다면 로보 판사가 이재판을 판결한다면 어떨까? 정말 미래엔 그런 시대가 올 수도 있을까? 어떤 여론조사에서는 4차 산업혁명 발달로 AI가 대체해야 할 3대 직업으로 공무원, 판사, 변호사가 1·2·3위로 꼽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백인이 흑인에게 죄를 짓고 백인 배심원만으로 이뤄진 재판에선 편견이 작용한 사례가 무수하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편견도 있으니까. 이스라엘 판사들의 판결과 배고픔의 관계를 분석한 2012년의 논문에서 판사들은 배가 고플 때 가혹한 판결을 내렸다. 아침식사를 막 하고 배가 부를 때는 가석방 신청 사건의 35%를 기각한 반면 점심시간 직전에는 무려 85%를 기각했다. 배가 고프니 자비심이 부족해진 것이다.

기술적 지식이 부족하거나 시간에 쫓길 경우에도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운데 로보 판사는 수만 페이지의 자료도 하루저녁 이내로 해치운다. 테그마크는 로보 판사는 정의를 구현하는 비용을 극적으로 낮춘다고 말한다. 상대가 거물 인사거나 대기업이어서 호화군단 변호사를 동원해도 로보 판사는 싼 비용으로 그들을 무찌르고 당당하게 정의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보 판사가 지닌 최대의 강점은 '악플러나 시민단체의 공격으로 내가 버틸 수 있나' '신상이 털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살 수 없는 것 아닐까' '새 대법원장이 내 승진을 가로막지 않을까' 하는 점을 의식조차 하지 않고 쾌도난마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없는 숲을 창조해버리는 큰 압력이 작용하는 이재 용판결을 로보 판사에 맡기면 인간의 판결과 달라질까. 훗날 로보 판사가 탄생하면 증거와 법리를 입력시켜 2심 판결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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