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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명 참석 뇌과학 세미나, 과학자도 10%만 이해하죠

  • 송민령
  • 입력 : 2018.01.2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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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범위

[송민령의 뇌과학 에세이-3] 매년 10월 말과 11월 중순 사이에는 뇌과학 협회(Society for Neuroscience)에서 주관하는 학회가 4박 5일 동안 열린다. 샌디에이고, 시카고, 워싱턴에서 한번씩 돌아가면서 열리는 이 학회에는 해마다 무려 3만명 이상이 참석하고, 1만5000개 이상 학술 포스터가 게시되며, 심포지엄과 부속 행사의 개수만 200개가 넘는다.[링크 참고]

멍하게 다니다가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학회장이 워낙 넓고 북적거리는 데다가, '뇌과학'이라는 분야도 크기 때문이다. 학회에서 분류한 큰 주제(아래 표에서 연보라색)만 10개이고, 중간 주제는 84개(아래 표에서 나머지)이며, 소주제는 수백 개에 달한다. [링크 참고]

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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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에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뇌과학의 모든 분야를 아는 뇌과학자는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한 사람이 84개나 되는 분야를 다 알 수가 있겠나. 대학의 학과도 이 분야들을 모두 다루기는 어렵다. 뇌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탓에, 바뀌거나 새로 생겨나는 연구 주제도 많다.[링크 참고]

이 중에서 내가 다른 연구자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아는 체를 할 수 있는 중간 주제는 7~8개 정도로 84개 중에서 9%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2개는 뇌과학이 아닌 뇌과학의 '역사와 교육'에 속하니, 내가 세미나를 들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있는 '뇌과학'의 비율은 더 줄어든다. 아는 분야보다 모르는 분야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그래도 뇌과학자니까 다른 분야도 잠깐만 훑어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주제가 다르면 연구의 맥락, 용어, 연구 방법도 대체로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과학은 고정불변의 팩트'가 아니어서 이전의 연구 결과가 나중에 뒤집어지기도 하는데 잠깐 훑어봐서는 이런 변화를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이처럼 뇌과학 전공자라고 해도 뇌과학 전체를 알지는 못하며,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 말하기란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둘째, 흔히들 뇌과학이 답해주리라고 기대하는 질문들이 있다. 대개는 감정과 이성처럼 마음에 관련된 질문이거나,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 '천재의 뇌' '효과적인 공부 방법'처럼 사회적인 맥락에서 생겨난 질문들이다. 그런데 위 표를 보면 알겠지만 뇌과학은 이런 질문들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 뇌과학은 뇌의 원리를 탐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로서, 뇌와 직접 관련된 측정가능한 대상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질문은 뇌과학보다는 심리학, 인지과학, 행동경제학이 더 잘 대답해 줄 수 있을 때가 많다. 뇌를 살펴보지 않아도 되는 심리학, 인지과학, 행동경제학은 마음과 행동의 여러 측면을 뇌과학보다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보다는 물질적인 토대를 가진 뇌를 연구하는 '과학'이 더 미덥게 여겨질 수는 있다. 뇌과학이 인기를 끌면서 심리학, 인지과학, 행동경제학의 성과까지 모두 뇌과학으로 포장되고 있어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에 관한 학문을 모두 뇌과학이라고 받아들이면, 심리학, 인지과학처럼 꼭 필요한 학문들이 평가절하될 수 있다. 또, 뇌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현상까지 뇌의 생물학적인 특징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만연하게 되면, 우생학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을 차별하고 뜯어고치는 데 뇌과학이 악용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뇌과학이 인기인데, 정작 뇌과학이 어떤 학문인지는 모르는 이가 많아서 신기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뇌과학이라는 인기 키워드가 소비되고 있을 뿐, 뇌를 진짜로 이해해가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학문이 그저 소비되기 보다는 정확하게 이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뇌과학을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뇌과학 학회를 소개하고픈 마음에서 글을 썼다.

[송민령 작가(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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