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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한국, 점술 시장규모 무려 37억달러

  • 오신혜
  • 입력 : 2018.02.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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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04] 강남·홍대·명동·종로…. 젊은 유동인구로 붐비는 서울 도심이라면 어디서도 금방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타로·사주 카페'다. 서울 사람들이야 워낙 흔한 광경이라 무심코 지나치곤 한다지만, 외부인들에게는 신기할 수 있는 모습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인터넷 문화와 압도적 고학력자 비율을 갖춘 나라에서 전통적인 점술의 유행이 무슨 조화란 말일까?

최근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한국의 꾸준한 '점술 열풍'을 대대적으로 파헤친 특집 기사가 등장해 화제다. 제목은 "37억 달러에 달하는 한국의 점술 시장". 외신은 천문학적 규모에 육박하는 한국 사주·타로 시장의 특징을 소개하는 한편, 도대체 이같은 현상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에 의문을 던진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리도 채 몰랐던 우리나라 점술 시장의 이모저모는 흥미롭다. 현재 한국의 점술 시장(사주·타로·운세 등) 규모는 37억 달러에 근접한다.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장에 따르면 국내에는 현재 30만 명 이상의 역술인, 15만 명 이상의 무당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 무당 중 상당수는 '예지력'을 토대로 사람들의 운을 봐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점을 보는' 행위가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정도는 새삼 놀랍다. 결혼정보업체 듀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혼 여성의 82%, 미혼 남성의 57%가 적어도 한 번 이상 사주·타로 전문가를 찾아 자신의 연애·결혼 운을 물었다. 그런가 하면 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는 자체 조사를 통해 한국인들의 3분의 2 이상이 매년 한 번 이상 사주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중 상당수는 다가오는 새해 운세를 보기 위해 매년 12월에서 이듬해 2월에 몰렸다. 외모를 바꿈으로써 사주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성형수술 업계와 사주가 연계되는 사례도 많았다.

이코노미스트는 국민의 다수가 개신교 혹은 불교인 나라에서 이같은 전통적 점술이 흥하는 현상을 흥미로운 점으로 짚었다. 사주·타로 행위가 한국에서 대학 전공과 강좌로 존재하는 등 나름의 학문적 기반을 갖는 점도 비중 있게 소개됐다. 사주 전문가이자 신문 칼럼니스트인 자넷 신 씨는 "사주·타로 결과를 보기 위해 찾아 오는 고객들 중에는 의사, 종교인 등 각종 전문직 인사들도 많이 포함돼있다"며 "사주를 보는 행위에는 다년 간의 공부와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같은 한국의 모습은 '점쟁이(fortune-teller)'라는 말 자체가 일상에서 거의 쓰일 일이 없는 영·미권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미국이나 영국 도심 속 젊은이들이 많은 구역에서 점을 보는 가게들을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2000년 뉴욕에서는 뉴욕주정부가 일자리가 없는 사회복지 수혜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화 심령술 상담가'가 될 수 있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고안했다가 어마어마한 비웃음과 반대 여론을 야기하며 단기간에 종료해야 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당시 뉴욕 시민들 사이에서는 "공적인 기관이 이처럼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사실이 끔찍할 정도"라는 말이 나돌았다. 점술에 대한 시각이 그만큼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에서 사주·타로가 보편적인 이유 중 하나로 정신건강 치료가 사회 전반적으로 터부시된다는 점을 짚었다.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이 보편적인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정신과 내원 자체가 독특하고, 종종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사주·타로 결과를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같은 장소에 가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를 받는다는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과거와 달리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된 요즘 한국인들이 이제는 '정신적인 행복'을 좀더 추구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문은 한국에서 만난 한 사주 전문가의 말을 빌어 "과거 한국인들에게 생존이 급선무였다면, 이제 그들은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며 오늘날 경제적 풍요 속에서 정서적 만족을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사주·타로 시장의 소비자가 됐다는 풀이를 내놨다.

그런가 하면 '모바일 강국' 답게 스마트 기기와 점술의 결합이 나타나는 점도 신문은 흥미롭게 다뤘다. 소프트웨어개발업체 한다소프트는 지난 5년간 13개의 사주·타로 관련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했으며, 그중 가장 인기를 얻은 앱 '점신'은 300만번 이상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과 점술의 결합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스타트업 '로봇랩(LOVOT LAB)'은 눈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과 감정을 읽고 예언을 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장착된 로봇을 개발 중이다.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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