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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과 중립 외교 허브 꿈꾸는 '아시아의 스위스' 싱가포르

  • 방정환
  • 입력 : 2018.06.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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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본섬과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센토사 섬을 이어주는 케이블카
▲ 싱가포르 본섬과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센토사 섬을 이어주는 케이블카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5]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북·미정상회담이 끝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내 카펠라호텔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회담을 마친 두 정상이 공동 서명한 합의문 내용 등을 둘러싸고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 된 북한과 미국 정상 간 첫 회담이 비교적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리고 '세기의 담판' 배경 역할을 담당한 동남아시아의 도시 국가 싱가포르 역시 남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국제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소화함으로써 국가 브랜드 가치를 한껏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이어진 덕분이다.

이번 회담을 전후로 국내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것처럼, 싱가포르는 서울보다 약간 큰 면적의 섬나라다. 560여만명 인구(2017년 기준)의 30%가량이 취업, 유학, 연수 등 목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일 정도로 글로벌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동남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MRT(도시고속철도)와 버스 등 대중교통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정비돼 있고, 밤거리를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치안 상태 또한 양호하다. 세계 최고 공항 중 하나로 꼽히는 창이국제공항을 통해 지난해에만 거주 인구의 3배가 넘는 174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아시아 대표 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고급 쇼핑몰과 고층 빌딩 등이 들어선 싱가포르 중심부의 번화가
▲ 고급 쇼핑몰과 고층 빌딩 등이 들어선 싱가포르 중심부의 번화가

말레이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동남아에서 가장 앞선 경제 수준을 뽐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얼마 전 싱가포르가 지난해 6만1800달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역내 2위인 산유국 브루나이의 1인당 국내총생산 3만3200달러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최근 성장가도를 달려온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신흥시장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여전히 5000달러에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싱가포르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경제력을 앞세워 싱가포르는 이웃 국가들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여 왔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일본과 중국, 미국 등을 제치고 2017년 상반기 투자 건수와 투자 금액 모두에서 인도네시아에 가장 활발하게 투자한 국가로 집계됐다.

필자 또한 싱가포르의 경쟁력을 직접 체험한 기억이 있다. 2011년 싱가포르의 다국적 교육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취업 비자를 발급받을 때였다. 한국에서 사전 준비에 공을 들이기도 했지만, 며칠 만에 일사천리로 행정 절차가 진행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이게 싱가포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공무원들과 의사소통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반면 몇 년 뒤 인도네시아에서 겪은 상황은 사뭇 달랐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정부기관 담당자들의 느긋한(?) 업무 태도에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기 힘들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국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서 현지인 에이전트를 고용했고,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취업비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사실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 대부분 국가에서 비슷한 경험담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독재 국가, 권위주의 정부 등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스위스' 별칭이 말해주듯 꾸준히 강소국의 입지를 다져왔다. 이에 더해 인도네시아어 혹은 말레이시아어로 '평온함'을 뜻하는 센토사(Sentosa)섬을 무대로 펼쳐진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제 무대에서 정치적, 외교적 존재감을 강화하는 데도 정성을 쏟고 있다. 싱가포르 내부에서 "160억원 예산을 들여 62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누렸다"는 긍정적 분석이 나올 만큼, 중립 외교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에 탄력이 붙고 있는 것. 싱가포르 도심의 야경을 둘러본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의 지식과 경험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언급한 점도 자신감을 높여주고 있다. 2018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8월 초 북한과 미국, 한국을 포함한 27개국 외교장관 등이 참석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을 개최한다. 북·미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 놓인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발판 삼아 싱가포르가 어떻게 청사진을 구체화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방정환 아세안비즈니스센터 이사·'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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