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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에 어두운 그림자…국제유가발 비용 상승에 미국 감세효과 반감까지

  • 김하경
  • 입력 : 2018.06.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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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AP
▲ 지난 3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AP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36] 국제유가 상승의 어두운 그림자가 미국과 신흥국을 덮고 있다. 유가 상승으로 촉발된 물가 상승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감세정책 효과의 약 3분의 1을 날려버릴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더해 미국 금리 인상을 부추김으로써 신흥국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4.6% 급등한 68.58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올해 상승폭은 14%에 달하며, 1년 전과 대비했을 때는 약 60%가 올랐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8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3.4% 오른 75.55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올해 초 대비로는 13%,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68%가량 상승한 것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5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8%를 기록했는데, 이 중에서도 에너지 분야의 상승률은 무려 11.7%였다. 실제로 유가 상승으로 인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21%나 올랐다. 유가와 물가는 항상 비례적으로 움직인다. 유가가 오르면 물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의 가격이 오르고, 이는 결국 최종제품의 가격 상승을 이끌어 소비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안긴다.

CNN머니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고유가로 인한 기름값 상승 및 물가 상승으로 올해 미국 가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380억달러(약 4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정책으로 미국 가계에 돌아갈 추가 이윤(CNN머니는 1280억달러로 추정)의 30%에 달하는 금액이다. 고유가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자랑하는 감세정책의 효과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엘런 젠트너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감세로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혜택을 본 것은 맞지만 급격한 휘발유값 상승이 감세 효과를 갉아먹고 있다"고 분석했다. CNN머니는 또 유가가 10센트 오를 때마다 미국에서는 106억달러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0일 OPEC에 대해 비난하는 트윗을 올렸다. "석유수출기구(OPEC)이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유가는 인위적으로 매우 높고 이것은 좋지 않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 /사진=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0일 OPEC에 대해 비난하는 트윗을 올렸다. "석유수출기구(OPEC)이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유가는 인위적으로 매우 높고 이것은 좋지 않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 /사진=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트럼프 대통령도 고유가를 두 번이나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지난 4월 20일 트위터에서 "석유수출기구(OPEC)이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유가는 인위적으로 매우 높고 이것은 좋지 않으며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올린 데 이어 이달 13일에도 "유가가 너무 높다, OPEC이 또 애쓰고 있다.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IHS마켓의 대니얼 예르긴은 "미 중간선거가 OPEC 결정에 변수로 등장하는 때가 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고유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과거에도 유가 상승으로 미국의 물가가 폭발적으로 오른 때가 있었다. 1978년과 1980년대 초반 발생한 석유위기로 1970년 불과 3달러였던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는 1973년 40달러까지 올랐고, 미국의 CPI도 1972년 41.20에서 1980년 말 86.30으로 2배나 뛰었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 상승은 이미 통화위기를 겪고 있는 신흥국에는 더욱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브라질에서는 이미 트럭 운전기사들이 지난달 말부터 열흘간 파업을 벌여 물류대란이 벌어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유가가 대선 이슈로 떠오르자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표심을 잡으려 정부 보조를 받는 기름·전기 요금을 내년엔 올리지 않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소비 감소로 각국 경제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치고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을 촉진하는 등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신흥국 위기의 진원지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페소화 가치가 지난주 사상 최저치를 기록해 연초 대비 34.45%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유가의 향후 방향은 지난 22~23일 열린 OPEC 회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빅2' 산유국은 증산을 요구했고, 이란, 베네수엘라, 이라크 등은 증산에 반발했으나, 막판에 이란이 결국 한발 물러나면서 하루 평균 100만배럴 증산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시장 예상치인 150만배럴보다 적고, 그나마도 이란·베네수엘라 제재 등으로 실질적인 증산 규모는 60만배럴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유가는 오히려 급등했다. 글로벌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원유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공급량이 예상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올해 유가 평균치(브렌트유 기준)를 최고 배럴당 77달러 선까지 내다봤다.

[김하경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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