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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저조로 '굴욕' 채권왕 빌 그로스, 옛 명성 찾을까

  • 장박원
  • 입력 : 2018.08.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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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그로스
▲ 빌 그로스
[글로벌 CEO열전-73] '채권왕' 빌 그로스가 굴욕을 당하고 있다. 그가 운용하는 야누스 헨더슨 글로벌 언컨스트레인드 채권펀드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가면서 운용 자금이 1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그가 주물렀던 돈이 한때 330조원이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몰락'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유는 하나다. 2014년 핌코를 나온 이후 저조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그가 운용하는 펀드는 6%가 넘는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비슷한 유형의 채권펀드와 비교해도 꼴찌 수준을 맴돌고 있다. 그가 속한 야누스 헨더슨의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웨일 회장마저 언론과 인터뷰하며 "그로스가 올해 나쁜 베팅을 했다"고 말했으니 채권왕의 체면은 구겨질대로 구겨졌다.

그의 추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해 주요국들이 마구 돈을 풀는 양적완화 정책을 쓸 때부터 예상됐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채권 투자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 그로스가 투자자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을 보면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중앙은행이 쏟아내는 마이너스 수익률 채권이 자본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초저금리 정책이 위험에 따른 상대적 수익에 따른 자산배분 효율성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저축을 하는 사람이나 투자자들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수익 한 조각을 놓고 다투는 처지가 됐다.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은 돈을 풀어 도박판을 키우고 있는데 이는 블랙스완(돌발 위험) 또는 그레이스완(어느 정도 예상되는 돌발 위험)을 초래할 것이기에 좋게 끝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부채가 증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통화와 재정 정책은 실물 경제를 다치게 할 것이다. 투자자들은 살얼음판 위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채권 투자가 한 물 갈 것이라는 징후는 그가 공동 창업해 43년 동안 몸담았던 핌코를 갑자기 그만 둔 시기부터 예고돼 있었다. 일각에서는 핌코 대주주였던 알리안츠가 그로스를 이용하다가 내팽개친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그의 입지가 좁아진 것도 한몫 했다. 채권 투자 환경이 나빠지면서 그 역시 새로운 모색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핌코를 그만두고 '야누스 캐피털'이라는 중소형 펀드 운용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는 펀드업계에서 존재감이 없었지만 그로스가 합류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자금이 몰렸다. '빌 그로스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한동안 수익률도 괜찮아 그로스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듯했다.

그러나 좀처럼 바뀌지 않는 저금리가 발목을 잡았다. 그가 운용하는 채권펀드 수익률은 다시 하락했고 투자금도 이탈했다. 설상가상으로 야누스 캐피털 전체가 경영난에 빠지면서 인수·합병 매물로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영국 자산운용사인 헨더슨이 26억달러에 인수하며 3200억달러 규모 '야누스 헨더슨 글로벌 인베스터스'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 그로스는 초저금리의 거센 도전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좌절의 문턱에 서게 됐다.

지금은 궁지에 몰렸지만 그로스의 성공 스토리는 이미 전설이 됐다. 인간의 삶은 우연한 사건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기도 하는데 그로스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그는 대학시절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랫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로스는 앉아서 할 수 있는 블랙잭 게임에 빠져들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승률이 올라가면서 자신이 도박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전문 도박사가 되기 위해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는 적지 않은 돈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는 이 돈을 캘리포니아대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데 사용했다. 최초의 꿈이었던 도박사가 되는 것은 포기하는 대신 전문 투자자 길을 걷게 된 배경이다.

도박과 투자는 전체 판세를 읽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핌코는 원래 퍼시픽 뮤추얼라이프 보험의 자회사인 퍼시픽 투자운용회사였다. 핌코는 1985년 모회사와 분리됐고 2000년 독일 보험사인 알리안츠그룹으로 넘어갔다. 그동안 지배구조 변화와 상관없이 그로스는 핌코를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사로 키웠다.

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판돈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성공 투자의 핵심이다." 최악의 수익률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의 신념을 변하지 않았다. 그는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초저금리 시대를 버티고 있다. 냉정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호황 국면에 접어들었으니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투자 환경이 바뀌면 그로스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굴욕을 영광으로 돌리는 힘은 오직 그의 실력에 달렸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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