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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자동차까지... '베트남의 삼성' 빈그룹

  • 하노이 드리머
  • 입력 : 2018.09.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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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5] 베트남에 오면 유독 '빈(Vin)'이라는 글자가 자주 보입니다. 베트남에서 살려면 '빈'을 빼고서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볼 수 있는 빈그룹의 자회사에 '빈'자가 들어가는데 업종이 정말 다양합니다. 대형과 소형 마트 모두를 운영하는 빈마트가 있고요, 대표적인 리조트인 빈펄리조트도 가지고 있습니다. 빈그룹 자회사 빈홈이 지은 아파트가 한두 단지가 아닙니다. 요새는 신도시 개발까지 직접 할 정도입니다. 베트남에서 가장 좋은 병원 중 하나로 꼽히는 빈멕국제병원(Vinmec International Hospital) 역시 '빈'으로 시작하는 걸 알 수 있지요. 빈스쿨(Vinschool)은 베트남에서 커리큘럼이 우수한 학교 중 하나로 꼽힙니다.

빈그룹이 분양 중인 빈홈 스타 시티 조감도
▲ 빈그룹이 분양 중인 빈홈 스타 시티 조감도

이렇게 얘기를 들으면 한국의 어떤 회사가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맞습니다. 한국의 삼성그룹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죠. 삼성 역시 래미안 브랜드로 아파트를 짓고 있고 에버랜드 이름으로 리조트 사업을 하고 있지요. 호텔신라 브랜드도 있고요. 삼성서울병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병원 중 하나로 꼽힙니다. 빈그룹을 '베트남의 삼성'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유지요.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단 빈그룹 자체가 아직 삼성과 견주기에는 덩치가 턱없이 작은 데다 아직 사업을 다각화하는 과정이라 글로벌 1등 기업으로 올라선 삼성과 직접 비교하기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삼성도 처음부터 이렇게 큰 기업이 되지는 않았기에 빈그룹의 미래를 밝게 보는 사람들이 이런 별명을 붙여주는 것이겠지요.

삼성의 시작은 1938년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이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창립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상회란 이름답게 일상에서 필요한 여러 생필품을 파는 곳이었지요. 이후 한국에서 나는 과일과 해산물을 중국에 수출하면서 세를 불린 삼성상회는 제분기와 제면기를 설치해 '별표 국수'를 팔아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빈그룹의 역사를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빈그룹은 하노이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초 시작은 베트남이 아니었어요. 이 그룹의 회장은 팜녓브엉(Pham Nhat Vuong)이란 분입니다. 팜녓브엉 회장은 1968년 베트남에서 태어났습니다. 1968년은 역사적인 해지요. 프랑스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 밀어닥친 68혁명이 일어났던 해였습니다. 파리에서 시작된 시위는 영국 미국은 물론 남미, 일본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중심에 베트남전이 있었지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전 세계 대학생들의 열기가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1968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팜녓브엉 회장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당연히 엄청난 혼란이었겠지요. 전쟁이 한창 벌어지는 나라에서 태어났으니까요. 실제 그의 아버지는 북베트남 공군으로 복무했다고 해요. 어머니는 노점상을 했다고 하고요. 그는 어린 시절 가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500위 안에 들어갈 정도의 거부가 되었습니다. 추정 자산만 3조원이 훌쩍 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는 어린 시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수학에 흥미가 있었다고 해요. 소련은 냉전시대에 미국과 과학기술로 전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죠. 누가 먼저 달에 가는지를 놓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경쟁했을 정도니까요. 체제의 우월성을 과학 발전을 통해 선전하려는 의도가 강했습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의 공산지역 수학 수재들은 소련으로 유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팜녓브엉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장학금을 받고 소련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모스크바에서 원자재 관련 과목과 경제학 등을 공부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1993년 대학을 졸업했어요. 하지만 2년 전인 1991년 소련은 이미 무너진 뒤였죠.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사임과 동시에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됩니다. 반세기를 유지해왔던 체제가 흔들리는 사회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난세에 영웅은 탄생합니다. 그는 난세를 기회로 바꿉니다. 소비에트 연방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을 하기로 결심해요.

처음에는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베트남 식당이었습니다. 베트남 가족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그는 사업적 역량을 발휘합니다. 식당은 우크라이나 사람들로 성황을 이뤄 인기 레스토랑 반열에 오릅니다. 그는 여기서 자신감을 가집니다. 식당에서 모은 자금을 기반으로 현지에 '테크노컴'이라는 회사를 차립니다. 이름은 테크노가 들어갔지만 실상은 라면 회사였어요. 이게 대박이 납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잘사는 나라는 아닙니다. 구소련이 무너진 직후 우크라이나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어요. 계획 경제 체제가 완전히 틀어져 제대로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배고픈 우크라이나에 들어선 라면 공장은 물량이 달릴 정도로 제품을 찍어냈습니다. 팜녓브엉 회장은 우크라이나 '라면 왕'에 등극합니다. 베트남 격동기 1968년에 태어난 그가 어엿한 사업자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팜녓브엉 회장이 라면 사업에 만족했다면 지금과 같은 글로벌 억만장자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라면 이후 사업은 리조트였습니다. 한국인이 많이 가는 베트남 휴양지 중에 냐짱과 다낭이 있지요. 그는 2003년 냐짱에 '빈펄 리조트 냐짱'을 엽니다. 초호화 리조트였습니다. 그림 같은 베트남 해변에 멋진 리조트를 지으면 반드시 돈이 될 거란 계산을 한 것이지요. 빈컴빌리지를 비롯한 고급 빌라를 세우고 토지를 개발해 주거·상업 복합단지를 만듭니다. 사업의 모체가 됐던 테크노컴은 2009년 네슬레에 1억5000만달러에 매각합니다. 그의 손에는 2000억원 가까운 자금이 들어오게 되지요. 삼성그룹도 지금은 식품 사업에서 손을 뗀 셈이니, 어떤가요 국수사업으로 시작한 빈그룹과 삼성 두 회사 간 공통점이 꽤 있어보이지 않나요.

빈그룹이 베트남 경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빈그룹은 베트남 시가총액 10위 안에 드는 또 다른 베트남 대기업인 마산그룹(Masan Group)과 함께 민간자본에서 시작해 글로벌 그룹이 된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입니다. 사실 베트남의 큰 회사 상당수는 공산주의 시절 공기업 독점 회사에서 출발해 사기업이 된 회사가 많지요. 하지만 빈그룹은 지금까지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사업가가 바닥부터 시작해 그룹을 일군 자수성가형 회사입니다. 빈그룹은 최근 외자유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화그룹이 빈그룹 전환우선주에 4억달러를 투자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빈패스트가 공개한 SUV 차량 디자인.
▲ 빈패스트가 공개한 SUV 차량 디자인.

이렇게 급성장한 빈그룹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요. 이제 빈그룹의 눈길은 스마트폰과 자동차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빈그룹도 고가의 제조업 시장에 뛰어들 만큼 역량이 축적되었다는 것이겠지요.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최근 빈그룹은 스마트폰 제조업체 '빈스마트(Vinsmart)'를 설립하고 1년 안에 '브이스마트(Vsmart)'로 이름 붙은 스마트폰을 생산할 예정입니다. 벌써 1500억원가량 자본금을 확보해놓고 스마트폰을 예쁘게 만들 수 있는 디자이너도 고용했다는 후문입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올 때는 혁신의 상징이었지만 산업이 성숙한 지금은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은 웬만큼 범용화가 됐기 때문에 자본력만 있으면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상황입니다. 베트남은 인구구조가 독특한 나라입니다. 베트남 인구는 9500만명을 넘어 1억명 고지 직전에 와 있어요. 그리고 인구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입니다. 평균 연령이 아주 낮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베트남과 같은 개발도상국은 선진국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룩한 산업 고도화 단계를 압축해 이루는 성질이 있습니다. 베트남 1인당 국민소득은 2400달러로 한국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상황이지만 하노이나 호찌민 같은 대도시에 와보면 그런 격차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여러 이슈로 우버가 정착하지 못했지만 여기는 그랩이란 이름의 차량 공유서비스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가사도우미를 부를 수 있는 '비타스키(bTaskee)'란 애플리케이션은 완벽한 한글 버전을 지원합니다. 서비스 기반이 급속도로 스마트폰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젊은 층 중에 스마트폰 2대를 동시에 들고 다니는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영업용, 하나는 사생활용입니다.

삼성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이 주도하는 '프리미엄 전략폰'에 관심이 없다면 적당한 가격에 스마트폰을 구매해 몇 년 쓰다 버리고 새로 사는 게 요새 문화입니다. 베트남 내수를 휘어잡고 있는 빈그룹이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 뛰어들면 삼성전자 중저가폰 라인에 타격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하노이 부근 박닌이란 곳에 거대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지요. 베트남 수출의 약 25%를 삼성전자가 차지할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베트남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베트남 국민의 선택은 내수기업인 빈그룹 스마트폰으로 쏠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잠재력이 무시무시하다는 얘기입니다.

빈그룹 산하 '빈패스트'가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베트남 거리에서는 현대자동차와 도요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차 모닝이나 i10, 도요타의 비오스(VIOS) 등이 인기 차량입니다. 도요타 중저가 7인승 이노바(INNOVA)는 가성비 높은 법인 차량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빈그룹이 자동차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면 시장 판도는 어떻게 바뀔까요. 관세 없는 '메이드 인 베트남' 차량이 출시돼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 적어도 '엔트리 카' 레벨에서는 시장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빈패스트는 태국 자동차 부품 제조사 '아피코(AAPICO)'와 합자 법인을 설립하고 항구도시 하이퐁에 생산 공장을 세울 계획입니다. 세계 1위의 자동차 부품 기업인 보쉬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세단과 SUV 모델의 예비 디자인을 각각 10개씩 사전 공개해 인기투표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빈그룹이 넘어야 할 산이 없는 건 아닙니다. 빈그룹은 자회사 상장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신사업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전략을 짜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자동차 같은 첨단 산업은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만약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이 삐걱거린다면, 게다가 베트남 증시에 찬바람이 불어 한 차례 경제가 휘청거린다면 빈그룹은 도미노처럼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물론 빈그룹 측에서는 계열사 간 독립 경영체제가 잘 유지되고 있어 그럴 리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지켜볼 입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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