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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경제 한류열풍도 꺾일 수 있어요

  • 하노이 드리머
  • 입력 : 2018.10.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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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 - 10] 베트남은 한국인이 전 세계에서 가장 대접받고(?) 사는 나라 중 하나라고 봐도 틀림이 없습니다. 해외에 나간 한국인들이 흔히 듣는 말이 있죠. 아시아인을 보면 처음엔 중국 사람이냐고 묻고, 그다음엔 일본 사람이냐고 묻고 둘 다 아니라고 하면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는 오래된 얘기(여기서 얘기가 한 단계 더 나가면 북한 사람이냐고 묻는 경우도 나옵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저도 출장차 해외에 들렀을 때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코리아라고 하면, 북쪽이냐 남쪽이냐는 질문을 의외로 자주 받았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상황이 사뭇 다릅니다. 사실 베트남 사람과 한국 사람이 외모상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황인종이라 큰 차이가 없거든요. 하지만 평생을 베트남 사람만 봐온 베트남 사람들은, 평생을 한국 사람만 봐온 한국 사람들은 서로 간의 차이를 직감으로 캐치해냅니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아시아인을 상대로 굳이 국적을 묻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한국인이겠거니 짐작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물건을 살 때 영어나 베트남어를 하면 카운터 점원이 "20만동이요"라고 말해 머쓱해지는 사례도 많습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인사말은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할 수 있습니다. 거리에는 한국어로 된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통 식당 같은 경우에 한국어로 된 간판이 많지요. 하노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경남랜드마크 72'는 한국이 지은 빌딩입니다. 현지에서 롯데호텔은 고급 호텔로 불리고 롯데백화점 역시 최고급 인테리어를 자랑합니다. 현지 가장 촘촘한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빈마트(Vinmart)'에 들어가면 한국 라면, 한국 식용유, 한국 간장, 한국 쌀, 한국 배까지 팝니다.

한 나라가 생산하는 부가가치의 합에서 중국과 일본보다는 파이가 작은 한국이 유독 베트남에서는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가 있을까요. 게다가 베트남은 중국 서부와 국경도 접한 인접한 나라인데 말이죠.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만큼 양국 간 사이가 끈끈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지요. 한국 입장에서 베트남은, 그리고 베트남 입장에서 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 베트남은 중국과 미국을 이어 교역액 기준으로 한국이 세 번째로 무역을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은 고인이 된 쩐다이꽝 전 베트남 주석과 정상회담을 통해 2020년까지 한국과 베트남 교역 규모를 1000억달러까지 늘리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 계획이 실제 달성되면 베트남은 미국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한국의 2대 교역국 자리에 올라서게 됩니다.

자료 : IMF
▲ 자료 : IMF

베트남 입장에서도 한국은 엄청나게 중요한 나라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는 거대한 삼성전자 공장이 있지요. 휴대폰을 만들어 수출하는 곳입니다. 베트남 전체 수출액 중에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는다고 합니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이 베트남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부가가치를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규모입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칠수록 더 많은 한국 기업인이 베트남에 몰려옵니다. 하노이에 있는 한국국제학교는 밀려드는 한국 교민을 감당하지 못해 올해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 추첨 결과 수십 명이 추첨에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증축을 계획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트남에 거주하는 동북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일단 한국인으로 간주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지요.

이곳 베트남에서 한국어는 곧 돈으로 간주됩니다. 한국어에 능통하면 베트남 현지 기업 대비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 쉬워지거든요. 그리고 굳이 한 직장에 매달려 살지 않아도 파트타임 통역만으로도 웬만한 고소득 전문직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습니다.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베트남 직장인 다수가 자발적으로 파트타임 업무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베트남어를 영어로 통역해주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능숙하게 변환해가며 설명해주는 동시통역 인력은 여기서도 희소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번 통역을 뛰어주고 나면 몇십만 원 정도는 가볍게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참고로 이곳 베트남 대졸 초임이 한화로 30만원 정도 합니다(금융권 등 특수 업종은 이보다 더 높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어 통역 한번 해주고 나면 대졸 직장인 초임 월급이 주머니에 꽂히는 식입니다. 다수의 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된 이유입니다.

얼마 전 베트남에 분 한국어 열풍을 직접 체감해본 자리가 있었습니다. 베트남 하노이 시내 하노이국립대 대강당에서 열린 '베트남 한국어 말하기 대회' 결선 자리를 통해서였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최로 올해 일곱 번째로 열린 대회였습니다. 베트남 전역의 대학생을 상대로 '한국어 왕' 자리를 가리는 행사지요.

여기서 대상을 받은 학생을 행사 직후 잠시 만났는데,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현지 명문대로 꼽히는 하노이외상대 소속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공이 한국어가 아니었어요. 게다가 한국어를 학원에서 정식으로 배운 게 고작 3개월이 전부였다고 했습니다. 1년 남짓 기간 동안 한국어를 죽어라 팠는데 한마디로 거의 독학으로 이룬 성과였습니다. 세바시, 톡투유를 비롯한 한국어 강연 프로그램을 유튜브에서 보면서 따라 연습했다고 해요. 듣는 거야 그렇다 하더라도 공부한 시간 대비 말하는 게 너무 유창한 거예요. 그래서 비결을 물었더니 하루 30분간 잊지 않고 홀로 말하기 연습을 했다고 하는군요. 물론 이 학생은 언어에 대해 탁월한 감각이 있었던 데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짧은 시간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만든 핵심 변수가 한국에 대한 관심, 한국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입니다. 이 학생을 만나본 이후 현지에서 부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찌보면 훈훈한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할 얘기는 조금 온도차가 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기업인 중에 일본의 부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꽤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이 베트남을 꽉 잡고 있는 모양새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거란 얘기입니다. 태국을 필두로 동남아시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일본이 베트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침 지난 10월 18일 베트남 '인터콘티넨털 하노이랜드마크 72 호텔'에서 멀티캠퍼스 주최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 같은 우려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삼성그룹에 속해 있는 멀티캠퍼스는 교육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로 퀄리티 콘텐츠로 소문나 있는 '세리 CEO'를 여기서 만들지요. 이 자리에는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고영경 말레이시아 UNITAR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습니다. 권 연구위원이 강연 말미에 보여준 표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베트남 주요 투자국을 정리한 그래프였습니다. 올해 7월까지 누적 기준으로는 한국이 7080건, 615억1000만달러를 투자해 모두 1위였습니다. 2위가 일본인데 3835건에 558억6000만달러를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2018년 상반기만 놓고 보면 일본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판이던 베트남을 일본판으로 돌리려고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는 것입니다. 일본은 일·메콩국가 정상회의를 통해 50억달러 지원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베트남에서 최대 원조공여국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2016년 기준, 자료 = OECD,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2016년 기준, 자료 = OECD,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상 정부개발원조(ODA)로 들어가는 자금을 말하죠. 2010년 일본의 대베트남 원조 규모는 10억달러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액수는 날로 늘어 2014년에는 18억달러를 넘겼고 2016년만 해도 16억달러에 육박했습니다. 다른 어떤 국가와 비교해도 압도적입니다. ODA 2위인 유럽연합(EU) 전체가 베트남에 ODA로 넣은 자금이 2016년 4억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베트남을 꽉 잡고 있다는 한국은요 고작 1억8500만달러에 불과합니다. 순위로는 3위인데 일본과 비교하면 10분의 1밖에 안되는 수준이죠. 그럼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에 쏠리는 관심은, 그래서 베트남이 한국화된 것의 상당수는 우리 기업들이 열심히 뛰어서 이룬 성과라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그동안 정부의 역할을 부족했다고 볼 수 있지요. 권 연구위원은 일본은 통상마찰이 투자마찰로 이어질 것을 경계해 베트남과의 무역에서 고의적으로 흑자를 보지 않으려는 시도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2017년 기준 일본은 베트남에 173억달러어치를 수출하고 168억달러어치를 수입해 무역수지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놨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베트남에 451억달러어치를 수출하고 143억달러어치를 수입해 무려 300억달러가 넘는 엄청난 무역흑자를 기록합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베트남과의 무역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버는 셈이지요. 일본은 무역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을 포기하고 대규모 ODA를 통해 큰 판을 그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베트남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민간기업 삼성을 통해 베트남 경제를 한국판으로 만드는 게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어떨까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대규모 원조자금을 쏟아붓는 일본 정부의 '머니파워'를 한국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 그리고 그 축을 베트남으로 삼은 것은 현시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정책이라는 게 베트남을 아는 전문가들이 내놓는 한결같은 해석입니다. 한국은 향후 가파른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이는 아세안 국가에서 반드시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세안에서 맹주 노릇을 하는 베트남은 꼭 필요한 파트너입니다. 여기를 지렛대로 주변 국가로 투자 인프라스트럭처 확대와 비즈니스 기회 창출을 손쉽게 할 수 있거든요. 이를 위해 베트남은 한국의 베스트 파트너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일본이 이렇게 돈을 쏟아부으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게다가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불편한 역사를 뒤로하고 베트남과 사이좋게 지내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베트남의 전략적 중요성을 압니다. 베트남을 축으로 베트남과 국경을 접한 중국의 서남부 지역 경제 개발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동아시아 지역 통합과 연계 추진해 큰 판을 짜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집토끼인 베트남을 중국과 일본의 협공에 밀려 자칫 내줄 수 있다는 우려를 할 때란 얘기입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소개됐습니다. '너무 뻔한 얘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만 관심 있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권 연구위원은 사회문화적 차이와 현지 문화 존중에 힘써야 한다는 처방을 내놨습니다. 베트남은 자존심이 강하고 유교문화 영향으로 체면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만큼 현지화를 통해 인사나 노무 업무는 현지인이 담당하게 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는 조언입니다. 자존심이 센 베트남 사람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폭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네요.

또 사내 의사 소통과 대화 채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근로자 고충과 애로사항을 바로 해소해 노사분규 발생 요인을 미리 해소해야 한다는 얘기이지요. 지방정부와 공안, 세무서장, 지역노동연맹 등 현지 '관'과의 네트워크가 끈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베트남 국민 특성을 고려한 CSR 강화 전략도 수립해야 한다고 하네요. 노동인권이 중시되면서 단순한 기업 내 복지 증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상생하려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합니다.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고 장학금도 늘리고 수해지원금도 기부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베트남 사람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얘기지요. 고 교수의 우려 역시 상당수 인사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현지화를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인사 및 노무 관리라는 게 고 교수의 분석입니다.

고 교수는 베트남에 부는 한류 열풍이 생각보다 쉽게 꺾일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한국 기업 어드밴티지 약발이 다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고 교수는 베트남에서 한국 이미지는 좋지만 한국산이란 이유로 무조건 사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기술, 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디지털이 떠오를 정도로 한국만 좋아하던 베트남 민심이 일본·중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한국 기업에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착하고 나에게 맞는 브랜드'를 심어야 한다는 얘기이지요. 그리고 반드시 프리미엄 제품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대중적인 상품 라인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어떤가요? 좀 와닿는 해법인가요.

요약하자면 현시점에서 베트남은 한국이 절대 잃어서는 안되는 해외 교두보 중 하나입니다. 그 시장을 먹겠다고 일본과 중국이 기를 쓰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무쪼록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이 큰 결실을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노이 드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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