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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신사가 입는 피코트 대중에 소개가 늦었던 이유

  • 남보람
  • 입력 : 2018.01.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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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에 이어서)

[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24] 피-코트(Pea Coats) (하)

◆ 제1, 2차 세계대전

전쟁이 나면 군은 효율 높고 돈 적게 드는 최적의 소재와 디자인을 찾는다. 전장에서 실전 테스트를 통과한 군대의 군복, 제복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기능성 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피-코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그 기능을 검증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기 피-코트의 두드러진 특징은 허벅지 부근까지 내려오는 길이와 두 쌍의 주머니였다. 손을 넣는 세로 주머니(머프 포켓)와 물건을 넣는 가로 주머니가 각각 있었다. 색상은 전통적인 해군 제복의 진한 청색(midnight blue)을 썼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형적인 피-코트 디자인. 손을 위쪽에 있는 세로 주머니에 넣고 있다. 세로 주머니는 머프(보온) 포켓이라고도 하고 슬래시(slash, 절개형) 포켓이라고도 한다. /출처=핀터레스트
▲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형적인 피-코트 디자인. 손을 위쪽에 있는 세로 주머니에 넣고 있다. 세로 주머니는 머프(보온) 포켓이라고도 하고 슬래시(slash, 절개형) 포켓이라고도 한다. /출처=핀터레스트

제2차 세계대전기 피-코트의 가장 큰 변화는 길이가 짧아진 것이다. 길이를 줄인 것은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길이를 줄이면 비싼 울 원단이 덜 들어가니 예산이 절감되는 효과도 있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주머니의 변화다. 길이를 줄이기로 했으니 아래쪽에 있던 가로 주머니의 위치를 바꾸거나 없애야 했다. 하지만 아예 없앨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해군은 피-코트를 보급하면서 하급 간부와 병사의 동계 제복 바지에 있던 주머니를 없앴다. 피-코트에 주머니가 네 개나 있으니 바지 주머니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오늘날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다수 국가의 해군 병사용 동계 제복 바지에는 주머니가 없다. 하계 제복 바지에는 주머니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코트의 가로 주머니를 없앤다면 지갑, 장갑 등의 소지품 등을 어디에 넣겠는가. 그래서 해군은 피-코트의 가로 주머니를 없애는 대신 안주머니를 만들어 넣었다. 가슴 아래께에 있던 세로 주머니는 하단에 맞춰 재배치했다.

1940년대 초의 미 해군 피-코트 /출처=https://www.etsy.com/
▲ 1940년대 초의 미 해군 피-코트 /출처=https://www.etsy.com/

1940년대 중반 미 해군의 피-코트 /출처=https://www.etsy.com/
▲ 1940년대 중반 미 해군의 피-코트 /출처=https://www.etsy.com/

◆대기만성의 패션, 피-코트

피-코트가 군대 밖으로 나와 민간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여타 '밀리터리 룩'이 세상에 선보인 사연과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웰링턴 부츠나 트렌치 코트 같은 군 복장, 제복은 거의 동시대에 패션으로 유행했다. 그렇다면 피-코트는 왜 군문(軍門)을 빠져나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첫째, 비싼 소재인 울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각 군은 전역 간부의 피-코트를 회수했고 외부 유출을 엄금했다. 반면 사회에서 유행한 여타 밀리터리 룩은 그렇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개인이 구매해 입었던 트렌치코트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저가에 생산해 대량으로 보급된 M1942 야전 상의는 개인이 사회로 가지고 나가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피-코트는 100% 회수를 원칙으로 했다.

둘째, 포지셔닝이 어중간했다. 군대에서 하급 간부가 입는 피-코트를 민간 상류층이 즐겨 입었을 리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피-코트보다 좋은 리퍼, 더플코트 등의 '오리지널'이 이미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서민이 즐겨 입을 만했던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서민도 기왕이면 고급 간부가 입었던 제복을 입고 싶을 것 아닌가. 울 소재라서 가격까지 비쌌기 때문에 이래저래 상업화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그다지 멋있게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피-코트의 단순함, 깔끔함은 화려함을 지향했던 상류층에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서민층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단순한 옷을 입고 살던 서민층에 단순한 피-코트의 디자인이 매력적이었을 리 없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돌아 변화하는 것이다. 오늘날 피-코트는 일명 '남친 룩'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 대중이 피-코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패션잡지의 '2017~18년 겨울 유행 예감'이란 코너는 피-코트를 소개하면서 이 옷이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어도, 라운드 넥의 스웨터 차림에도 두루 잘 어울린다'고 했다. 수차례의 전쟁으로 검증된 디자인과 기능성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 나름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미 해군의 복장, 제복 공급업체이며 피-코트를 상업화해 팔고 있는 스털링웨어 보스턴(Sterlingwear Boston)은 '미 해군의 피-코트와 가장 가까운 디자인과 품질'을 자사 상품의 장점으로 홍보하고 있다.

피-코트를 입은 연예인들의 모습. 톰 크루즈(배우, 좌상), 존 레전드(가수, 우상), 저스틴 팀버레이크(가수, 좌하), 올리비아 문(모델, 우하) /출처=인스타그램
▲ 피-코트를 입은 연예인들의 모습. 톰 크루즈(배우, 좌상), 존 레전드(가수, 우상), 저스틴 팀버레이크(가수, 좌하), 올리비아 문(모델, 우하) /출처=인스타그램

[남보람 전쟁사 연구자, 육군군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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