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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농민의 모자 베레모 패션 아이템으로 거듭나다

  • 남보람
  • 입력 : 2018.01.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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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25] (베레모(Beret)_상)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펠트 모자 유행

어떤 이는 베레모(Beret)의 역사가 청동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어떤 연구는 고대 벽화, 중세 도록에서 베레모 형태의 모자를 쓴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창 들고 들소를 쫓는 선사인의 머리에 있는 둥글납작한 모자가 베레모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선사시대 인류 중 누군가는 외부 충격 혹은 추위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동물의 가죽이나 뭉친 털을 덮어 썼을 것이고, 그 당시 기술이나 디자인 수준을 고려해볼 때, 무엇을 머리에 썼던 비슷한 모양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쓰던 페타소스(Petasos). 햇빛을 가리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베레모의 기원을 페타소스에서 찾기도 한다.
▲ 고대 그리스인들이 쓰던 페타소스(Petasos). 햇빛을 가리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베레모의 기원을 페타소스에서 찾기도 한다.

동물의 털을 이용한 둥그런 모자가 일정한 디자인을 유지하기 시작한 건 14세기 경부터였다. 주 사용자층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의 농민이었다. 별다른 명칭은 없었다. 그저 '펠트(felt) 모자', 즉 털모자라고 불렀다. 펠트 모자는 돈 없고 여유 없는 사람들이 쓰는 장식 없는 납작한 모자였다.

한편 17세기부터는 네덜란드 화가들이 자신들의 직업적 상징으로 이 납작한 펠트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당대 화가들이 흠모해 마지않던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과 "진주목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등이 펠트 모자 유행에 앞장섰다.

펠트 모자를 쓴 렘브란트(좌), 페르메이르(우)의 자화상 /출처=https://mic.com/articles/146546/
▲ 펠트 모자를 쓴 렘브란트(좌), 페르메이르(우)의 자화상 /출처=https://mic.com/articles/146546/

◆스페인을 지나 프랑스로

납작한 펠트 모자가 패션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것은 1800년대 중반 스페인에서였다. 1846~1849년에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여왕파와 반대파 간 내전이 벌어졌는데, 반대파인 카를로스파가 자신들의 상징으로 붉고 챙이 넓은 펠트 모자를 착용했다. 특히 카를로스파의 장군 토마스 수말라카레기(Tomas Zumalacarregui)는 스페인의 전쟁 영웅이었는데 그가 붉은 펠트 모자를 쓰고 부대를 이끄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너도나도 이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거의 유사한 시기(1880년대)에 알프스 일대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산악부대원들은 파랗고 챙이 넓은 펠트 모자를 썼다. 이 유래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있다. 어떤 연구자는 스페인의 탄압을 받던 프랑스 국경지대 민병들이 저항의 표시로 푸른 펠트 모자를 쓴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 육군은 부대원이 눈 속에서 고립되었을 때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한 일종의 표시판 역할을 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무렵부터 사람들은 털로 만든 둥글납작한 모자 혹은 챙이 넓은 펠트 모자를 'beret(베레)'로 불렀다. 이는 라틴어에서 온 프랑스어였으며 '농민들이 쓰는 울로 만든 납작한 모자'라는 뜻이었다.

카를로스파의 리더 토마스 수말라카레기(Tomas Zumalacarregui)가 붉은 색 모자를 쓴 모습 /출처=https://mic.com/articles/146546/
▲ 카를로스파의 리더 토마스 수말라카레기(Tomas Zumalacarregui)가 붉은 색 모자를 쓴 모습 /출처=https://mic.com/articles/146546/
베레모를 쓴 프랑스 산악부대원. 이들이 쓴 것을 알프스 사냥꾼 베레모(alpine hunter
▲ 베레모를 쓴 프랑스 산악부대원. 이들이 쓴 것을 알프스 사냥꾼 베레모(alpine hunter's beret)라고 한다. /출처=핀터레스트


◆바스크 베레모와 로레일 베레모

그런데 스페인 토마스 수말라카레기 장군의 붉은 베레모, 프랑스 산악부대원의 푸른 베레모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바스크 지방(스페인 북동부∼프랑스 남서부) 농축산인들은 오래 전부터 서유럽 북부 농민들이 쓰던 펠트 모자를 개량하여 쓰고 다녔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부터는 지역 특산물인 바스크 울을 소재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바스크 베레모(Basque beret)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1810년부터 로레일(Laulhere)사에서 바스크 베레모를 대량생산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820년대를 전후해서 베레모는 프랑스 일반 대중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멋을 낼 수 있는,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는 아이템이 됐다.

로레일 베레의 외관과 안쪽의 상표. 지금도 로레일 베레는 질 좋은 고급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출처 : 유투브(https://www.youtube.com/watch?v=ZNjajrRlHRw)
▲ 로레일 베레의 외관과 안쪽의 상표. 지금도 로레일 베레는 질 좋은 고급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출처 : 유투브(https://www.youtube.com/watch?v=ZNjajrRlHRw)

(하편에 계속)

[남보람 전쟁사 연구자, 육군군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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