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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국가 주도'로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할까

  • 최용성
  • 입력 : 2018.02.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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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Tech Talk-103]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주도로 5세대(5G)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뉴스 사이트 액시오스(액시오스 바로가기)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3년 내 초고속 5G 네트워크를 개발해 국유화하는 로드맵을 구상 중이다. 이런 내용은 액시오스가 '안전한 5G:정보시대 아이젠하워 국가 하이웨이 시스템'이란 제목의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문건을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문건은 미국이 인공지능(AI) 무기 경쟁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전국적 규모의 차세대 5G 모바일 네트워크를 국가 주도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G 네트워크 구축을 '정보시대를 향한 위대한 첫걸음'으로 규정하며 새롭고 거대한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까지는 좋았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다음이다. 문건은 이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국가 주도'를 언급했다. 가장 신속하게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미국 정부가 네트워크를 직접 건설하고 이를 AT&T, 버라이즌, T모바일 등 통신사업자에 임대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는 게 골자다. 민간 주도로 건설할 수도 있지만 "건설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작다"며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문건은 "국가 주도 5G 네트워크는 트럼프 정권이 끝나기 전에 완료해야 한다"며 미 정부가 본격적으로 건설 계획과 자금 조달 방안을 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문건 공개 후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단 '국영 네트워크'라는 아이디어에는 대체로 비판적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아지트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조차 "혁신과 투자는 정부가 아닌 시장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며 "국가 차원의 5G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그 어떤 방안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신사업자들도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AT&T 등 개별 통신사업자는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통신업계 공동성명을 통해 "경쟁적인 시장이야말로 미국을 5G 기술에서 앞서가게 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검토 중인 국영 네트워크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반면 미디어산업에 영향력 있는 인물로 거론되는 컬럼비아대 로스쿨 팀 우 교수는 구체적으로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공공부문 네트워크 건설에 다소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 역시 "잘못하면 경제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제대로만 건설하면 국민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교수는 케이블과 통신사업자들로 인해 현재 과점 상태에 있는 광대역 서비스 문제점을 지적하며 "앞으로 5G 시대로 가면 모든 것이 네트워크와 연결될 텐데 그때는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염려했다. 민간부문 독과점으로 소비자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케이블업계는 최악의 범죄자"라고까지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장 시장친화적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민간과 시장이 아니라 '국가' 주도로 정보기술(IT)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 나온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지금 미국을 이처럼 강력하게 키웠던 것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에서 끊임없이 이뤄지는 혁신과 투자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파괴적 혁신은 '한국형 모바일 운영체제 개발' 운운하며 정부 주도 사업으로 예산을 투입해 달성되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이런 시장의 혁신을 잘 알고 있을 미 정부가 어째서 '국영 네트워크'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NSC 문건은 국가 주도 네트워크 건설 이유로 중국의 위협을 들었다. 문건은 "중국은 네트워크 인프라 부문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정보 분야에서 악의적인 국가(malicious actor)"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애틀랜틱(애틀랜틱 바로가기) 등 유수 언론에 따르면 중국은 1998년부터 이른바 '금순공정(金盾工程)'이라는 디지털 공안체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동원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국민에게 '시민 신뢰 점수'를 부여해 관리하고 전국적으로 촘촘하게 박아놓은 CCTV로 물리적 감시도 진행한다. 중국은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처럼 자국 내 거대 IT기업을 지원해 2030년까지 세계적 AI 주도 국가로 부상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중국은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으로 무장하고 이 같은 국가 주도형 AI 발전계획을 착착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과거 냉전시대 소련과의 경쟁에서 인공위성 발사의 선수를 빼앗겼던 '스푸트니크 악몽'이 떠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미 정부는 NSC 문건 공개와 관련해 "안전한 차세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 외에 결정된 것은 없다"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우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민간부문 디지털 독과점에 대한 폐해가 갈수록 커지고, 만에 하나 중국의 가공할 만한 사이버 공격 조짐이 현실화할 경우 '국영 5G 네트워크'는 언제든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와 시장의 경쟁에서 누가 우위를 차지할 것인가.

[최용성 매경닷컴 DM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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