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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시장 효율성에 블록체인이 기여하는 방법

  • 최용성
  • 입력 : 2018.03.0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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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alk-104] 시장과 중앙정부는 끊임없이 경쟁해 왔다. 이는 사회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자유방임에 맡길 것이냐, 아니면 중앙에서 통제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 경쟁에서 판세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 속에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본 것이지만) 시장의 우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거래가 단순하고 생산수준이 낮았던 과거와 달리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고도화하면서 중앙통제는 자연스럽게 헤게모니를 잃고 말았다. 시장의 경쟁과 효율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와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며 현재 지구촌의 가장 강력한 경제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사회주의 몰락의 원인을 '중앙의 실패'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료제의 무능과 부패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료제라는 것이 중앙통제가 숙명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이라고 한다면, 시장은 그간 인류에 저질렀던, 그리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치명적 실수(주기적인 대공황, 글로벌 금융위기, 빈부격차 심화 등)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확실히 시장은 더 창의적이고 효율적이며 생산적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남들보다 더 나은 제품을 더 싸게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에서 창의적이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다면 돈은 고사하고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면서 시장은 합리적 조정을 통해 균형을 맞추어간다고 시장주의자들은 말한다. 정부는 이 같은 경쟁적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을 '논에서 피 뽑듯' 없애기만 하면 된다. 시장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규제는 과감히 혁파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중앙정부는 너무 무능하지 않냐고 시장은 개탄해 마지않는다. 그 증거는 차고 넘친다. 수직적이고 톱다운식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중앙정부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상부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실행이 느리고 성과를 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무능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부패'다. 소수에 집중된 권력은 남용되고 투명성 부족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해 전체 시스템에 해악을 끼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017년 8월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017년 8월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중앙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부동산 대책이다. 역대 정권이 부동산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 카드를 꺼내들었다. 특히 투기적 수요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토지와 주택 정책은 물론이고 조세와 교육정책까지 가능한 고강도 규제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강남 집값은 꿈적하지 않고 있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도마에 오른 재건축 강화대책으로 당장은 강남 집값이 안정화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을 왜곡시키는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이 같은 단기처방식 정책 남발은 '나비효과'로 인해 전혀 엉뚱한 곳에서 후폭풍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자사고, 국제고 등의 학생 우선 선발권을 폐기했는데, 이때문에 학군 좋다는 강남 부동산 가격은 더 급등하는 현상이 그런 예다. 소득 양극화 해소와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도 고용이 줄어들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깎아버리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은 통제 가능하다는 오만함이 '시장의 역습'을 받아 무릎 꿇은 것"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이 온전히 시장의 자율적 조정 과정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만 놓고 봐도 그렇다. 저소득층 임금이 증가하면 민간 소비가 확대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시장을 활성화하는 길이다. 시장이 역습할 일이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의 일시적 경영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데, 자본이 이런 허점을 파고들어 문제점만을 극단적으로 부풀리고 있다고 중앙정부는 주장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이라면 왜 규제하겠냐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라면 독과점화한 거대 자본으로 인해 왜곡된 시장 구조를 바로잡고, 국민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시장이 되도록 정책적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중앙정부의 권력이 어디 있나? 권력은 이미 시장, 아니 자본으로 넘어간 지 오래"라고 일침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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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율 조정 기능을 잃어버린 시장에 대한 중앙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 지금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 거래 불공정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수평적 갑을 관계는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하다. 대기업의 자기 계열사 지원 관행, 담합, 카르텔, 독과점 폐해 등이 정상적 시장의 기능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런 불공정의 최종 피해는 오로지 소비자 몫이다. 하물며 대공황,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를 시장의 합리적 조정 과정이라고 한다면 과연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에 공익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국가의 주요 인프라스트럭처가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민영화하고 있는데, 민영화 이후 요금이 올라가거나 품질이 떨어진 경우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정 기업이 정부를 대신해 각종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단순 편의 서비스만이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부문이나 노후연금 등 복지 분야를 수익성과 효율성으로만 본다면 그 사회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 의한 정치
▲ 시장에 의한 정치 '퓨타키'를 제안한 로빈 핸슨 조지메이슨대학 교수 /사진=로빈 핸슨 교수 홈페이지

하지만 공정함과 효율성을 모두 갖춘 시장이라면 어떨까. 중앙정부의 비효율성을 극복하면서 자본의 논리에 왜곡되지 않은 시장 말이다. 시장주의자들이 반색할 만한 이런 아이디어는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최근 주목받고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탈중앙화 기술로 그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이런 이상주의적 시장은 2000년대 초 미국 조지메이슨대학 경제학과 교수 로빈 핸슨이 제안한 '퓨타키(Futarchy)'에서 비롯되었다. 퓨타키는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과 암호화폐에 기반한 미래 정부 형태를 말한다. '미래(Future)'와 통치, 정부 등을 뜻하는 접미어 '-archy'를 합쳐 만든 조어다. "가치에 투표하되, 신념을 걸어라(Vote Values, But Bet Beliefs)"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하다. 퓨타키는 간단히 말해 주요 정책을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정하는 대로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중요한 정책 결정을 시장에 맡기는 게 가능하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의외로 전문가나 여론조사보다 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사례가 많다. 가령 스포츠 경기나 대통령 당선 예측이 그런 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신상품 성공 가능성 전망을 사내에 개설한 이런 시장을 통해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측치는 신기하게도 상당히 정확한 편이다.

시장의 예측이 정확한 이유는, 여론 조사 혹은 공식 보고와 달리 현장의 솔직한 모습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업의 매출전망은 사원-중간 관리자-임원-최고경영진 순으로 보고되는 과정에서 부정적 내용이 걸러지고 긍정 일변도로 변하기 쉽다. 관료제의 함정이다. 하지만 돈이 걸려 있는 경우라면 다르다. 시장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예측이 맞으면 돈을 따고, 틀리면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 내기를 한다. 구글의 예를 보자. 흔히 현장 사원들의 판단에는 오류가 많을 것이란 편견이 있다. 아무래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종합적으로 정보를 보고받는 임원의 판단이 더 정확할 것이라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구글은 사내 예측 시장을 통해 낮은 직급 사원들의 예측이 더 정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대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가 전문가집단 의견보다 더 낫다는 얘기다. 금전적 인센티브를 주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면 가치 있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모을 수 있고, 이런 과정이 오히려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고루한 토론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게 기본 원리다.

퓨타키는 이 같은 예측시장의 원리에 블록체인 암호화폐(코인) 베팅이 더해져 완성된다. 퓨타키의 단순한 진행과정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무기금지 법안'이 준비돼 있다고 가정하자. 시민들은 무기금지법이 2년 후 경제성장(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같은 수치로 표시돼야 한다)에 기여할지를 놓고 '찬성 시장'과 '반대 시장'에 개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일정 기간 동안 신중한 판단을 거쳐 시민들은 내기를 한다. 내기는 현실의 돈이 아니라 스마트계약 알고리즘이 있는 코인만으로 할 수 있다. 스마트계약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실행되는 블록체인 기술을 말한다. 찬성과 반대 등 2개 시장은 일정 기간(예를 들면 2주간) 열리는데, 시장 종료 후 가격이 높은 쪽 정책이 실행된다. 만일 무기금지 법안 찬성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예측한 시장 가격이 높았다면, 법안은 그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 2년 후 성공 여부를 측정할 때 제안만큼 GDP가 성장했다면 찬성 시장에 참가한 시민들은 투자한 코인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는다. 가격 높은 시장에 참여했어도 다른 결과가 나오면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시민들은 정치적 의도나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한다. 또 과학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문가 의견을 참고하는 등 최대한 정확하고 신중하게 베팅한다. 블록체인 코인으로 베팅하기 때문에 중앙의 간섭은 배제되며, 외부의 조작 가능성도 없다. 이더리움 개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퓨타키를 활용하면 시민들이 정치나 사회문제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궁극적인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떤가?

[최용성 매경닷컴 DM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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