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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신뢰가 아예 불필요한 사회로 만드는 기술

  • 최용성
  • 입력 : 2018.03.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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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alk-105] 지난 10일 주요 일간지에 의미심장한 사진이 하나 실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규제조치 명령서를 들어보이는 사진이다. 트럼프 대통령 뒤에는 미국 철강업계 노동자와 노조 관계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전 세계가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 행보를 강하게 비난했고 심지어 미국 내부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많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 관세를 밀어붙였다. 그 총구는 한 나라를 겨냥하고 있었다. 바로 중국이다.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대미 무역흑자 1000억달러(약 106조4500억원) 감축을 요구했다. 또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놓고 '슈퍼 301조'로 불리는 무역법 301조를 발동해 중국산 제품에 대해 최대 600억달러 규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명령서에 서명한 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명령서에 서명한 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자못 심각해지고 있다. 미·중 두 나라의 무역 전쟁이 크게는 글로벌 경제에, 한편으론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유치한 기싸움에 벌벌 떨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미·중 무역 갈등도 어느 순간 급반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도 살짝 갖고 있다. 하지만 "나의 핵무기 버튼이 더 강하다"는 말싸움과 달리 경제 사안은 돈이 걸려 있는 문제라 그렇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두 나라 지도자의 성격이나 체제는 현 상황을 악화시키면 악화시켰지 결코 화해와 상생 쪽은 아니다.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헌법을 고쳐 장기 집권의 길을 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존재가 수십억 지구인들의 운명을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이런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일단 두 나라 국내 정치·경제 상황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국제 사회에서 주도권을 갖겠다는 패권 다툼의 양상이기도 하다. 그 싸움의 배후에는 중국과 미국의 기득권 세력이 포진하고 있다. 그게 관료일 수도 있고 자본일 수도 있다. 중앙집중적 세력들이다. 그 정점에 트럼프와 시진핑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양측은 내로라하는 전문가들과 복잡한 논리를 동원해 국민에게 상대방과 왜 싸워야 하는지를 설명하거나 선전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 때문에 미국 내 일자리가 줄고 있다거나 미국 안보가 위태롭다는 지적, 미국이 자유무역주의를 붕괴시켜 세계 경제를 위협한다는 주장이 그런 것들이다. 상대방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더 거세지고 이를 바탕으로 '슈퍼 301조' 발동이나 '미국 국채 전량 매각' 등과 같은 비정상적 상황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 전개는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하다. 문제는 대중과 여론을 앞세운 두 나라 정부의 어떤 정책 결정에 수십억 인구가 치명적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중차대한 결정을 한 나라 정부 고위 관료, 위원회, 전문가들 판단에 일임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전문가들 의견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들의 결정은 인류공영의 지혜보다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역학관계 속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지혜'가 더 나은 결정을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 로빈 핸슨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얼마전 트위터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가장 유명한 지식인들 중 몇 %가 중요하고 독창적이며 진정으로 지적인 기여를 했을까?' 그리고 0~10%, 10~20%, 20~40%, 40~100% 4개 보기를 주었다. 결과는 0~10%가 65%로 가장 많았다. 10~20%는 20%, 20~40%는 8%, 그리고 40~100%는 7%에 불과했다.

전문가는 과연 명성만큼 지적인 기여를 하는가?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사진=로빈 핸슨 교수 트위터 캡처
▲ 전문가는 과연 명성만큼 지적인 기여를 하는가?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사진=로빈 핸슨 교수 트위터 캡처

물론 이런 결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로빈 핸슨 교수를 폴로하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했고, 답한 사람 수도 516명에 불과해 그 유의미성과 신뢰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전문가들의 '지적인 기여'를 불신하는 일반인이 의외로 많다는 단면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권력을 갖고 있는 중앙집권적 기구 상위 계층의 일방적 의사결정으로 인해 치른 사회적 비용과 희생은 엄청나지 않은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는 1945년 자신의 논문 '사회에서 지식의 활용(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에서 정보를 독점한 중앙 위원회의 의사결정 방식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대중의 모든 지식을 갖고 있을 수는 없으며 이 같은 '지식 문제(the knowledge problem)'는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형태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탈중앙화는 분열과 비효율을 부른다. 강력하고 단일한 리더십이 전체를 이끌어 가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결정이 더디고 그 결과마저 왜곡될 가능성도 크다. 모두가 신뢰하는 '중앙'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네 탓'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앙집중적 구조를 무조건 옹호할 수도 없다. 구성원 모두가 신뢰하는 리더십을 갖추는 것도 문제지만, 누구도 그 리더십이 영원히 투명하고 공정하다고 보장할 수 없다. 신뢰의 아이러니다. 탁월한 지도자의 등장으로 성장과 복지 혜택을 이루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갈등, 빈곤, 기아 등과 같은 다양한 모순의 한가운데에 중앙집중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이런 중앙집중적 시스템의 결함과 탈중앙화의 비효율을 극복하게 해 주는 기술이다. 핵심은 '무신뢰(trustlessness)'다. '불변의 신뢰'라는 허구에서 벗어나 차라리 신뢰할 부담도, 필요도 없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블록체인은 모든 참여자 시스템의 절반 이상을 일일이 해킹해 바꿔놓지 않는 한 어떤 특정한 사실을 위·변조하는 게 불가능한 기술이다. 이 기술이 물리적, 제도적 정보기술(IT) 시스템으로 구축되고 그 시스템 참여자 수가 지구 전역에 달할 때 분산화는 엄청난 위력과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일단의 기득권 세력을 위한 정책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블록체인 기반 정책결정 구조하에서 미 정부가 "학교 총기사고 방지를 위해 교사들에게 총기를 지급하겠다"고 하면 총기협회나 거대 자본이 아닌 평범한 일반 미국민은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최용성 매경닷컴 DM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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