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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위해 개발된 '라이방', 맥아더로 유명해지다

  • 남보람
  • 입력 : 2018.05.0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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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38] 1. 라이방이 아니라 레이-밴(Ray-Ban)

전후(戰後) 세대 혹은 7080세대에게 다음의 사진은 매우 익숙할 것이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 맥아더 장군과 1987년 개봉한 영화 '탑 건'의 주인공 톰 크루즈의 모습이다.

역사 속 실제 인물, 영화 속 가상 인물인 두 사람의 공통점은, 군인이며 레이-밴 조종사용 선글라스(Ray-Ban Aviator)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속 선글라스는 예전에 우리가 '라이방'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모델이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의 맥아더 장군 /출처=미 육군군사연구소
▲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의 맥아더 장군 /출처=미 육군군사연구소
1987년작 영화
▲ 1987년작 영화 '탑 건'에서의 톰 크루즈 /출처=https://www.imdb.com/search/title?sort=num_votes,desc&title_type=feature


2. 레이-밴 개발의 시작 : 미 공군 조종사를 위한 특수장비

1925년 존 매크레디(John Macready) 대령(후일 중장까지 진급)은 공군 조종사의 시야를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선글라스 개발을 바슈롬(Bausch & Lomb)사에 요청했다. 항공 기술이 발전하여 비행고도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빛의 직사로부터 조종사의 눈을 보호할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이때만 해도 공군은 육군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았었다. 갓 출발한 공군에는 조종사를 위한 특수장비가 많지 않았다).

존 매크레디 대령은 태양 직사광선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군의 합격 조건은 까다로웠다. 두 번의 불합격 이후, 미 육군의 실험을 통과한 것은 1939년에 나온 프로토 타입이었다. 바슈롬은 이 모델에 '광(光) 차단용 안경', 즉 'Ray Banned Glasses'라는 임시명칭을 붙였고 이것이 상표명인 'Ray-Ban'이 됐다.

레이-밴은 제2차 세계대전기에 소재, 기술 면에서 큰 발전을 했다. 충격에 강하면서도 가벼운 합금, 빛을 선택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편광, 위쪽은 짙고 아래쪽은 옅은 코팅 기술 등이 추가됐다. 아래의 세 가지 모델이 제2차 세계대전기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클래식 타입이다.

레이-밴의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 제품 /출처=레이-밴 홈페이지
▲ 레이-밴의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 제품 /출처=레이-밴 홈페이지

3. 맥아더 장군과 레이-밴의 유행

바슈롬사는 1937년부터 레이-밴을 시중에 판매했는데 나름의 반향을 일으키긴 했지만 큰 유행이 되진 못했다. 레이-밴을 대중에게 깊이 각인시킨 최초의 인물은 아마도 맥아더 장군이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국민적 영웅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을 이끌고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그는 일본군의 기습침략으로 필리핀을 떠나야 했는데 이때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명언을 남겼다.

1944년에는 그 말대로 일본군을 몰아내고 필리핀에 복귀했다. 사진은 필리핀 레이테만에 맥아더 장군이 상륙하는 모습이다. 그가 레이-밴을 쓰고 바다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모습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됐고 곧 전국적인 유행이 됐다.

필리핀 레이테만에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레이-밴을 쓰고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 필리핀 레이테만에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레이-밴을 쓰고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남보람 전쟁사 연구자·육군군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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