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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 코트와 함께 '외투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래글런 코트

  • 남보람
  • 입력 : 2018.05.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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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40] 래글런 코트(Raglan Coat)_상

1. 래글런 코트와 래글런 소매 방식

20세기 초의 래글런 코트 광고 /출처 =스미소니안박물관 홈페이지
▲ 20세기 초의 래글런 코트 광고 /출처 =스미소니안박물관 홈페이지

'래글런 코트(Raglan Coat)'는 방수, 방풍, 보온이 뛰어난 외투의 하나다. 트렌치 코트(Trench Coat)와 함께 오늘날 우리가 '외투', '코트'라고 부르는 것들의 아버지 격이다.

래글런 코트가 다른 외투와 다른 점은 어깨 재봉선의 위치 혹은 재봉 기술이다. 종류를 불문하고 통상 상의는 팔 부위를 어깨 부근에서 몸통에 재봉한다. 그런데 래글런 코트는 위의 사진에서처럼 목 칼라 부근에 재봉한다. 이런 래글런 코트의 재봉 방식을 래글런 소매(Raglan Sleeve)라고 부른다. ['라그랑(ラグラン) 소매'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일반적 스타일의 티셔츠(좌)와 래글런 소매 스타일의 티셔츠(우) /출처=https://patterns.bootstrapfashion.com/>
▲ 일반적 스타일의 티셔츠(좌)와 래글런 소매 스타일의 티셔츠(우) /출처=https://patterns.bootstrapfashion.com/>

래글런 소매의 장점은 팔의 움직임이 보다 자유롭고 어깨와 팔 부위의 무게 지탱점이 분산되어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전문선수용 스포츠 웨어 상의는 거의 대부분 이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미군의 기능성 전투복도 레글런 소매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유니폼(좌)과 미 육군의 기능성 전투복(우). 모두 래글런 소매 방식으로 재단됐다. /출처=위키피디아
▲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유니폼(좌)과 미 육군의 기능성 전투복(우). 모두 래글런 소매 방식으로 재단됐다. /출처=위키피디아

2. 래글런 소매의 유래는?

'래글런 코트'에서 '래글런'은 크림 전쟁의 영웅 피츠 로이 서머셋(Fitz Roy Somerset) 장군의 작위명에서 온 것이다. 피츠 로이 서머셋은 17세에 장교로 임관하여 20세가 되던 1808년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장군의 전속부관이 됐다. (후일 영국 총리를 역임하는 워털루 전투의 영웅 웰링턴 공작이 아서 웰즐리 장군이다.) 그리고 1855년 크림 전쟁 말기에 과로로 사망할 때까지, 일생을 전장에서 보냈다.

피츠 로이 서머셋은 용맹하고 솔선수범하는 장교였는데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선두에 나섰다가 큰 부상을 입어 오른팔을 잃게 된다. 그러나 피츠 로이 서머셋은 군문을 떠나지 않고 아서 웰즐리 장군을 수행하며 각종 전투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웠다. 30대의 나이에 장군으로 진급했으며 1827년엔 아서 웰즐리 장군의 뒤를 이어 영국 국방장관이 됐다.

그가 작위를 받아 래글런 남작이 된 것은 1852년이었다. 다음해인 1853년 크림 전쟁이 발발하자 래글런 남작(피츠 로이 서머셋)은 다시 군복을 입었다. 1854년 대장으로 직위 진급하면서 영국 측 총사령관으로 참전했다.

'래글런 코트'가 여기에서 등장한다. 세간의 기록에 의하면 한쪽 팔이 없는 래글런 남작의 출정을 위해 특별 제작된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가 편히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고, 한 팔이 없는 그가 편히 입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과연 그럴까.

래글런 남작의 젊은 시절 초상화(좌), 노년의 사진(우) /출처=위키피디아
▲ 래글런 남작의 젊은 시절 초상화(좌), 노년의 사진(우) /출처=위키피디아

3. 아쿠아스큐텀(Aquascutum)의 신제품 스트레칸(Streccan)

래글런 코트의 원래 이름은 아쿠아스큐텀 코트(Aquascutum Coat)였다. ('아쿠아스큐텀'은 라틴어로 '방수'라는 뜻이다.) 이 코트는 영국 왕실과 군복 독점 판매 계약을 맺은 의류점 아쿠아스큐텀의 신제품이었다. 아쿠아스큐텀은 방수, 방풍, 보온이 뛰어난 울 직조 기술을 기반으로 1891년 런던에 설립된 일종의 벤처 회사였다. 제품과 기술력을 앞세워 1853년 크림 전쟁을 앞두고 왕실 독점 판매권을 따낸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보면, 아쿠아스큐텀이 처음부터 래글런 남작을 위해 이 옷을 디자인했다고 보긴 어렵다. 우선 상식적으로, 국방장관 출신의 대장이 '전장에서 칼을 쉽게 휘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래글런 코트를 개발했다는 설명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총사령관이 전선에서 칼을 몇 번이나 휘두르겠는가. 또한 시기적으로 잘 맞물리지 않는다. 아쿠아스큐텀의 코트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853년이고 래글런 남작이 총사령관이 된 것은 1854년이었다. 무엇보다 팔과 몸통을 재봉하는 기술에 팔이 없는 사람의 작위명을 매칭시켰을 리가 없다. 그것은 도리어 큰 실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아쿠아스큐텀의 재봉 기술이 팔 없는 사람에게 특별한 편리함을 주지도 않는다. 일반적으로 더 움직이기 편하고 가볍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장 전형적인 래글런 코트의 모습(위). 아래 두 사진은 래글런 소매 방식 재봉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출처=이베이
▲ 가장 전형적인 래글런 코트의 모습(위). 아래 두 사진은 래글런 소매 방식 재봉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출처=이베이

따라서 '래글런 코트(소매)' 명칭의 유래에 관한 보다 자연스러운 설명은 '크림 전쟁에 새로 보급된 신제품 코트에 총사령관인 래글런 남작의 작위명을 별칭으로 붙였다'는 것이다. 워털루 전투에 등장한 목이 긴 신형 헤시안 부츠(Hessian Boots)를 아서 웰즐리 장군의 작위명을 따 '웰링턴 부츠'라고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아쿠아스큐텀의
▲ 아쿠아스큐텀의 '스트레칸(Streccan)' 광고. /출처=핀터레스트

- 하편에서 계속

[남보람 전쟁사 연구자·육군군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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