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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비밀에 싸인 바다, 인류에겐 또 하나의 우주

  • 박상준
  • 입력 : 2018.06.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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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사이언스&퓨처-12] '인터스텔라'는 황사 때문에 농경지가 메말라버린 미래를 그렸다. 사람들이 새로운 지구를 찾아 먼 우주로 떠나는 이유다. '설국열차'에서는 온 세상이 얼어붙었다. 제한된 식량 자원은 귀족층이 독점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바퀴벌레로 만든 대용식량을 주식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현실의 시나리오는 어떨까?

20세기에 학교를 다닌 세대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기억할 것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반해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는 결국 언젠가 굶어서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질소 비료가 발명돼 농업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폐기됐다. 물론 세상에는 지금도 굶주리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식량 분배가 고르지 못한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매일매일 엄청난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되고 있으니까.

사실 인류는 애초부터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인터스텔라'처럼 농업이 불가능한 환경이 되더라도 말이다.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어마어마한 자원을 품고 있는데, 그중에는 어류나 플랑크톤 같은 식량 자원도 포함된다. 지구상 모든 인간을 다 합쳐도 그 무게는 어류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플랑크톤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래 식량자원으로 꼽히던 것이다. 문제는 인간의 미각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달렸다고 할까.

아직 인간은 바다를 너무 모른다. 달이나 화성 표면은 100% 상세한 지도가 나와 있지만 지구의 바닷속 심해는 대부분 완전한 미지의 세계다. 깊이 2000m 이상의 바다를 말하는 심해가 지구 표면적의 65% 가까이 차지하고 있으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 경우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많은 SF에서 심해는 수수께끼의 존재들이 숨어 있는 배경으로 등장해왔다.

쥘 베른의
▲ 쥘 베른의 '해저2만리'에 등장하는 괴물오징어. 서양의 전설 속 바다괴물 '크라켄'이 모티브다. /사진=Wiki

존 윈덤의 '크라켄의 각성'(1953)은 외계에서 온 존재들이 바다로 떨어지는 광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중에 바닷속에서 괴상한 모양의 물체들이 줄줄이 나와서는 끈끈한 물질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간다. '크라켄(Kraken)'은 원래 서양의 전설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로 작은 섬 정도나 되는 크기의 거대한 동물이 배를 침몰시킨다는 괴담의 주인공이었다. 오늘날 크라켄의 실체는 대왕오징어로 여겨지는데, 20m에 달하는 몸길이는 충분히 전설에 모티브를 제공할 만하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어비스'에는 어류 모양의 외계인이 나온다. /사진=20세기 폭스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 '어비스'(1989)에도 바닷속에 숨어 있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습조차도 수생동물(정확히는 가오리의 유체)을 닮은 것으로 묘사됐다. 과학자 중에는 물속에서 사는 생물은 지능이 발달하기 어렵다는 이론을 펴는 사람이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외계인들은 매우 발달된 과학문명을 지니고 있어서 인류가 지구에 해로운 존재라고 판단하고는 도시들을 거대한 파도로 휩쓸어버리려 한다.

한국 창작 SF 만화사에 한 획을 그은 이현세의 '아마게돈'(1988)에는 남극 바닷속에 숨어 있던 신비의 인류 집단이 나온다. '엘카'라는 이 종족은 초고대 문명의 후손이며 우리도 모르게 외계로부터 지구를 수호하고 있던 것으로 설정돼 있다. 이들은 시간여행까지 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스피어'(1987)는 더스틴 호프먼, 샤론 스톤, 새뮤얼 잭슨 등이 나온 같은 제목의 영화(1998)로 잘 알려져 있다. 바닷속에서 정체불명의 외계 우주선 같은 것이 발견되는데 그 안에 들어간 탐사대원들은 초현실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하나씩 희생된다. '레비아탄'(1989)이나 '딥 블루 씨'(1999), 또 한국 영화 '7광구'(2011)처럼 바다 괴물과 대결하는 SF 액션물이 여럿 있는데, '스피어'는 그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핵에너지를 먹고 사는 고등생물
▲ 핵에너지를 먹고 사는 고등생물 '핵충'이 주인공인 통렬한 풍자 SF 만화 '핵충이 나타났다!'. /사진=길찾기

이처럼 SF 속에서 바다는 여러 신비스러운 존재들의 보고나 다름없지만, 현실의 상황은 좀 걱정이 앞선다. 인류는 바다를 거대한 쓰레기통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들이 웬만한 섬보다도 큰 면적을 차지하며 바다를 둥둥 떠다닐 뿐만 아니라 그걸 먹이로 오인한 고래나 거북 등 많은 동물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게다가 특히 심각한 것은 핵폐기물이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들을 먼 바다로 나가서 심해에 내다 버리는 일이 여러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돼 왔다. 이런 핵물질들의 방사능이 사라지는 반감기는 보통 수만 년이 걸리기 때문에,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짐을 지우는 행위인 것이다. 신기활의 만화 '핵충이 나타났다!'(1989·2013)는 핵에너지를 먹고 사는 핵충이라는 고등생물을 등장시켜 불길한 미래 전망을 블랙코미디로 표현한 수작이다.

인류가 멸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소행성 충돌처럼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도 있고, 인간들끼리 싸우다가 자멸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인공지능이나 외계인에게 정복당하기도 한다. SF에서는 이런 다양한 파국과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재앙 이후 서사가 인기 있는 소주제 중 하나다. 다음 글에서는 '묵시록적 미래상'을 다룬 상상력을 짚어 보기로 한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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