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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에도 질이 있는 것 아시나요?···질이 다른 부채 '선수금'

  • 이재홍
  • 입력 : 2018.06.1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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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여 회계하라-116]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국내 유수의 회계법인에서 근무하게 된 이 모 회계사. 회계감사로 바쁜 시즌을 끝내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5월. 모르는 번호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됩니다. 혹시 저장해 놓지 않은 클라이언트의 연락인 줄 알고 전화를 받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어색한 정적이 흐릅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온 전화였던 것입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특별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면 파격적으로 할인된 가격으로, 만남 주선 횟수도 기본 10회에 5회를 더 제공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 회계사는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직 여자친구가 없고 결혼 적령기라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회계사는 결혼정보회사의 광고 모델처럼 생긴 배우자를 소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잠시나마 행복해졌습니다.

듀오는 우리나라의 대표 결혼 정보회사입니다. 듀오는 회원을 유치하면서 가입비를 일시에 받습니다. 가입비를 받게 되면 회사는 향후 일정 기간 가입조건에 정해져 있는 횟수만큼 만남을 주선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됩니다. 회계기준에서는 돈으로 갚아야 할 것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경우에도 부채로 기록해야 합니다. 듀오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유동부채 항목에 선수금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듀오의 선수금 추이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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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의 선수금 추이를 보니 어떤 것을 확인할 수 있으신가요? 165억~170억원 수준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매년 비슷한 회원 수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듀오의 선수금은 회원의 만남이 성사될 때 매출로 전환됩니다. 만약 10회 만남 조건, 300만원을 내고 가입한 회원의 만남이 성사될 경우 듀오의 매출로 전환될 금액은 얼마일까요? 30만원일까요? 여자 남자 회원 각각 매출로 인식될 테니 60만원이 매출로 전환될 것입니다.

제조업에서도 선수금을 받는 거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가지 상황인데요. 조선업이나 건설업처럼 제작에 기간이 오래 걸리고, 거액의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거래처로부터 선수금을 받습니다. 두 번째는 주문한 거래처의 신용이 좋지 않거나, 규모가 매우 작을 때 선수금을 받는 거래를 합니다. 요즘 코리아뷰티가 열풍이지요. 코리아뷰티의 뒤에는 콜마나 코스맥스 같은 화장품 위탁생산 업체들이 있습니다. 아마 브랜드는 달라도 제조원을 보면 콜마나 코스맥스로 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화장품 위탁 생산업체는 코리아뷰티 대박을 노리는 군소 업체들로부터 주문을 받을 때 주문금액의 일정 부분을 미리 받고 제조에 들어갑니다. 주문금액의 50%를 미리 받고 생산에 들어가기도 하죠.

선수금은 부채입니다. 나중에 제품을 만들어서 납품을 해야 하거나 용역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입니다. 장단기차입금, 외상매입금 같은 부채는 일정 시기에 현금을 갚아야 하고, 이자비용을 내서 손익을 감소시킵니다. 선수금은 부채의 성격이지만 향후 매출로 전환될 금액이라는 점에서 다른 부채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선수금은 다른 부채처럼 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선수금이 사라지면서 매출로 기록되니 기업의 손익을 좋게 만들어줍니다. 또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대우·삼성, 드릴십 계약 해지당하고도 웃는 까닭" 2018년 4월 2일 부산일보의 기사입니다. 대우조선은 3월 26일 글로벌 해양시추업체 '시드릴'과 맺은 드릴십 2척에 대한 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시했습니다. 또한 삼성중공업도 2013년 시드릴과 맺은 드릴십 2척 건조 계약을 최근 해지했다고 합니다. 대우조선 측은 "이미 손실을 턴 상태라 선수금은 챙기고 건조된 설비는 재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고, 삼성중공업에서도 "계약 해지가 선수금 몰취와 선박 소유권 확보로 이어져 오히려 호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기사에서처럼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선수금을 몰취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선수금 받는 거래를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수금은 다른 부채와는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셨을 것입니다. 일명 착한 부채로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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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 회계사]

※공주사대부고를 거쳐 한양대 경영학부를 졸업했습니다.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자격이 있고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와 재무 자문 업무를 수행했으며 KEB하나은행 기업컨설팅센터에서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기업 전략 수립, 내부 통제 개선 등과 회계·세무 자문(가업승계, 상속세·증여세)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현재는 기업 및 개인 고객을 위한 세무 자문, 재무실사와 기업가치평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이것이 실전회계다'(공저)와 'LOGISTAR FORECAST 2017'(공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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