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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트럼프의 기자회견 방식

  • 김세형
  • 입력 : 2018.06.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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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스트레이츠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스트레이츠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김세형 칼럼] 김정은과 협상을 마친 후 도널드 트럼프가 한 기자회견은 참으로 독특했다. 그리고 향후 한국의 대통령 기자회견에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이번 세기의 회담에는 전 세계 2500여 명의 기자가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트럼프의 마지막 회견장에 운집한 기자 숫자만 1000명은 족히 돼 보였다.

우선 형식면에서 트럼프가 어디서 온지 모르는 기자들이 손들면 아주 쏜살같이 지명권을 줬다. 한 질문자가 꺼낸 물음에 제대로 답이 되지 않았을 땐 2차, 3차 보충 질의할 권한을 우선적으로 줬다. 그리고 질의응답 시간을 원 없이 줬다. 총 기자회견 시간은 70분쯤 됐던 것 같으며 질문을 퍼부은 기자 수는 33명으로 필자는 헤아렸다. 이 중 일부가 보충질의를 몇 개씩 했으므로 트럼프가 받은 총 질문 수는 40개쯤은 됐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10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한 후에는 기자회견이 없었고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김정은을 깜짝 만난 후 다음날 발표한 현장에서는 약식 기자회견을 했는데 대변인이 국내 기자 3명, 외신기자 1명에게 질문권을 준 게 전부였다. 소요시간은 5분남짓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인 정상회담은 국민에게 알 권리를 충족시켜 준다는 차원에서 충분한 회견시간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회견을 하면 더 이상 물어볼 게 없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배려하는 게 좋겠다.

다시 트럼프의 회견으로 돌아가면 70분 만에 40개의 질문을 했다면 질문 하나를 묻고 답하는 데 1분45여 초밖에 안 걸리는 간결성이다. 우리 청와대 기자회견에는 쓸데없이 장황하게 질문 도입부를 수사하는데 서방 언론인들은 그러지 않았다. 한마디로 장황한 형식은 필요 없고 핵심을 콕 찍어 묻고 대통령도 꼭 답할 것만 한다.

회견이 시작되기 전 당신이 기자라면 뭘 물어봤겠는가. 역시 가장 궁금한 것은 왜 CVID가 빠졌느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 두 번째에 나왔다. 첫 번째로 질문한 NBC 여기자는 김정은이 이복형을 죽이고 수많은 사람을 굶어죽게 만든 장본인인데 왜 대통령은 그를 유능하고 영리한(smart) 지도자로 치켜세우느냐는 거였다. 비수를 들이대는 것 같은 질문이다. 트럼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청산유수로 답했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권력을 맡아 지금껏 해오고 있으며 웜비어 사망사고를 일으켰는데 오늘의 회견도 웜비어 사망이 없었으면 이뤄지지 않았을 터이니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삼천포로 유창하게 빠져 버렸다.

새로운 뉴스를 이끌어 낼 만한 좋은 질문도 많았다. 질문도 좋지만 새로운 내용을 용기 있게 발표하는 대통령의 뱃심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가령 워게임(wargame)을 지속할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이는 한미군사훈련을 계속할 것이냐는 트럼프의 속내를 물은 것이었다. 트럼프는 앞으로는 안 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북한 신문은 대화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안 한다로 게재했다). 미·북회담을 전후해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했으면서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국내 보수층에서 한미동맹이 해체 수순으로 들어간 것 같다는 통렬한 비판이 있을 정도로 가장 히트한 질문이었다. 트럼프도 평양에 갈 거냐, 김정은을 백악관에 초청할 거냐는 등 상상해볼 수 있는 것들은 가차 없이 물었다.

나는 국내 언론은 이렇게 단답식으로 대통령에게 묻지 않거나 못하거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서 물은 것이며 대통령은 기자의 물음이 아니라 국민이 물으니 국민에게 설명해준다는 마음가짐으로 답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내 대통령 기자회견 때는 유력지 기자들을 쏙 빼놓는다. 무슨 기술을 발휘하는 것 같다. 트럼프 회견에서 전혀 그런 기술이 보이지 않았다. 질문을 시키다 보니 타임(Time)지에서 왔다는 기자의 질문을 받을 때는 "나를 올해의 인물로 타임 표지에 써줄 거냐"는 농담을 하면서 답변에 들어가는 모습은 트럼프를 다시 보게 만든 장면이었다.

트럼프는 성질 사납고 충동적이며 순식간에 표변하는 인물로 국내 언론에 그동안 비쳐왔다. 70분간 질의응답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대단히 인내하며 성실하고 이성적이고 지성적으로 질의응답을 소화해 나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을 술술 풀어나가는 실력이었다. 실력이 있으니 기자회견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50분쯤 진행한 후 백악관 대변인에게 더 질문을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으며 놀랍게도 세라 샌더스 대변인은 "더하라"고 사인을 줬다. 그러자 "회견 때문에 (귀국) 교통편에 늦었다고 불평하지 말라"면서 회견을 연장하는 장면은 한국 언론인으로서는 놀라왔다. 회견을 마칠 무렵엔 3번의 질문을 더 받고 끝내겠다며 한국처럼 대변인이 나서서 댕강 끊어버리는 무례를 범하지 않았다. 한국 기자들 질문 없냐고 순번을 부여한 배려도 좋아 보였다.

트럼프의 회견을 이 칼럼은 내용면에서는 분석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단독회담을 마친 후 놀라운 회담이었다고 트윗을 날렸고, 회담이 대성공이었다는 화려한 수사를 했음에도 공동성명 발표문은 용두사미 그 자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트럼프는 여전히 뻥이 세고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가 성실한 회담자였는지는 추후 미·북 간 후속협상에서 과연 CVID가 실현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이 글은 순전히 트럼프의 회견 방식을 음미하면서 향후 한국의 대통령 회견에 좋은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접근했음을 다시 강조해둔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치고 한 시간을 넘게 질의응답한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 질문 개수를 15개 이상 소화한 회견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질의응답 내용 가운데 알맹이를 인쇄해 놓으면 이번 트럼프 회견의 내용은 역대 한국 대통령 회견의 최대치와 비교해도 3배는 넘으리라.

한국 대통령의 회견에서 기자들도 실력을 더 기르고 단답형 질의응답을 하는 습관으로 선회해야 한다. 대통령 역시 트럼프나 유럽 리더들처럼 좀 더 자주 회견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주길 당부 드린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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