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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 - 1

  • 방정환
  • 입력 : 2018.08.1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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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 위치한 쁘땀부란(Petamburan) 공동묘지 외부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 위치한 쁘땀부란(Petamburan) 공동묘지 외부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9] 최근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포스트 차이나'로 불릴 만큼 동남아가 신흥 시장의 선두 주자로 각광받으며 기업들의 진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정부가 인도와 더불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신남방정책의 핵심 파트너로 공언하면서 외교적 위상 또한 높아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남아를 바라보는 이미지는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제조업 기지나 천연자원의 보고 혹은 가성비 높은 휴양지 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함께 인프라스트럭처가 정비되고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이제는 생산 거점만이 아닌 소비 시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한국이 누적 외국인 투자액 1위를 기록 중인 베트남은 동남아 11개국 중에서도 남다른 이목을 끌고 있다. 이들과 보조를 맞춰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바로 인도네시아다. 동남아 해양부를 대표하는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경제력(GDP 기준)의 약 40%를 차지하는 맹주이자 전 세계에서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여기에 오는 18일부터는 56년 만에 하계 아시안게임 개최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1966년에 영사 관계를, 1973년에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공식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앞선 17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1653년 제주도에 표착한 뒤 한국에 관한 최초의 서양 기행문으로 손꼽히는 '하멜 표류기'를 쓴 하멜의 배가 처음 닻을 올렸던 곳이 바타비아(Batavia), 즉 지금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였다. 이어 300여 년 후에는 독립 인도네시아를 꿈꿨던 한국인 영화 감독이 자카르타의 한 공동묘지에 묻히게 된다. 닥터 후융(DR.HUYUNG)이라는 인도네시아 이름으로 불렸던 허영(許泳)이 그 주인공이다. 광복절을 즈음해 친일 매국노와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이라는 양극단의 삶을 산 뒤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한 허영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 위치한 쁘땀부란(Petamburan) 공동묘지 내부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 위치한 쁘땀부란(Petamburan) 공동묘지 내부

허영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한 것은 예전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서였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일본군이 점령했던 인도차이나 반도 등으로 반강제로 동원됐던 조선인 학도병과 포로 감시원 등 사연을 찾던 중이었다. 당시 웹사이트에 게재됐던 인도네시아 내 조선인 흔적 관련 정보 중 허영의 묘지가 가장 눈길을 사로 잡았다.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일본, 중국 등지가 아닌 적도에 인접한 동남아 대지에 잠들어 있는 조선의 발자취는 호기심마저 자극했다. 그리고 현지인 친구의 도움으로 허영의 유해가 안장된 자카르타 시내 쁘땀부란(Petamburan) 공동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선총독부 등 후원으로 친일 영화를 만들던 허영은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 인도네시아 독립을 지원하던 한국인 군속들 목숨을 구해 줬다. 이를 계기로 전후 일본식 이름인 히나쓰 에이타로(日夏英太郞)를 버리고 닥터 후융이란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 정착했다. 이후 네덜란드에 맞선 인도네시아의 독립 투쟁을 그린 영화 프리에다(Frieda) 등을 제작하며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에 영화 산업의 초석을 쌓는 데도 힘을 보탰다. 물론 뒤늦은 개과천선(?)과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의 칭송이 군국주의 영화를 생산한 친일 전범의 오명을 씻어주기는 어렵다. 친일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 허영이 일제 식민지 통치정책인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허영, 히나쓰 에이타로, 닥터 후융 등 세 개의 이름으로 세 개의 인생을 살다 간 허영을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실제 허영의 서로 다른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이 1997년 김재범 감독에 의해 제작되기도 했다). 그 호기심은 결국 쁘땀부란 공동묘지로 필자의 발길을 이끌었다.

[방정환 아세안비즈니스센터 이사·'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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