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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된 사랑'으로 귀를 중독시킨 천상의 록발라더 조장혁

  • 홍장원
  • 입력 : 2018.11.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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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오브락-81] 1997년 개봉한 영화 중에 '체인지'라는 작품이 있다. 우연한 사고로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 남학생과 여학생을 둘러싼 스토리를 담았다. 이 영화를 보면 1990년대 고등학교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영화는 약 17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당시 한국 영화 중 흥행 순위 6~7위를 차지했다. 그 당시와 비교해 영화 시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소연은 엄청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고등학생 나이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성숙한 외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당시 선견지명이 있던 사람들은 이같이 예측했다. 김소연은 어느 순간 노화를 멈추고 나이를 거꾸로 먹을 거라고. 영화 제목은 '체인지'이지만 그의 외모는 '체인지'되지 않을 거라고. 지금 보면 탁월한 예지력을 보여준 셈이다. 20년도 더 지난 시점의 김소연과 지금 김소연을 보면 세월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고등학생 김소연은 늙어 보였지만, 40세에 가까운 김소연은 젊어 보인다. 지난 20년의 어느 시점에 그의 실제 나이와 사람들 눈에 보이는 나이 그래프가 서로 만나 역전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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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불세출의 록발라더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OST '체인지'를 부른 가수 조장혁이다. 그는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하다가 체인지가 실린 첫 번째 앨범을 1996년에 내놓으면서 화려하게 데뷔한다. 체인지는 당초 조장혁이 작곡해 다른 사람에게 주려던 곡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본인이 직접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 곡과 조장혁은 긴밀한 인연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영화 '체인지'는 조장혁의 모교인 서울 한영고에서 촬영했다.(엄밀하게 말하면 운동장과 강당 등 공간을 공유하는 한영중, 한영고, 한영외고에서 촬영된 셈이다) 조장혁은 본인이 졸업한 학교에서 찍은 영화의 OST를 불러 화려하게 가요계 스타트를 끊은 셈이었다.

1990년대 말,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조장혁은 박상민, 김정민 등과 만개한 록발라드 시장을 나눠가지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조장혁의 노래는 단언컨대 그 시대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리던 곡 중 하나였다. 아울러 수많은 남성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노래기도 했다. 폼 잡고 제대로 불러보겠다며 야심 차게 선곡했지만 끝이 좋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십중팔구는 '삑사리'를 내며 잔뜩 쉰 목을 부여잡고 취소 버튼을 누르는 게 일상이었다. 허스키한 톤으로 시작하는 조장혁의 노래가 이렇게 높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데뷔곡이라 할 수 있는 '체인지'만 하더라도 심상찮은 난도를 자랑한다.



알아 너의 그 표정을 마지막 말을 찾는 거야

정말 내일부터 갑자기 볼 수 없게 되면

얼마나 아파할까 잘가 참 너를 아꼈어 음

너의 안에서 행복했어

그 어떤 누구도 널 좋아했었던 그만큼

다신 힘들 것 같아

멀리 떨어진 시간 속에 잊혀질지 모르지만

믿기로 해 삶은 우릴 위해 뭔가 남긴다고

웃으며 떠나는 거야

만나는 그날까지 여기 있을게

내겐 니가 살고 있는 이곳보다 더

더 좋은 세상은 없으니까



멀리 떨어진 시간 속에 잊혀질지 모르지만

믿기로 해 삶은 우릴 위해 뭔가 남긴다고

웃으며 떠나는 거야

만나는 그날까지 여기 있을게

내겐 니가 살고 있는 이곳보다 더

더 좋은 세상은 없으니까 예

웃으며 떠나는 거야

만나는 그날까지 여기 있을게

내겐 니가 살고 있는 이곳보다 더

더 좋은 세상은 없으니까



노래방에서 이 곡을 고르고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마이크를 쥔 손은 움찔하기 마련이다. 조장혁의 허스키함을 유지하면서 무난히 완창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단숨에 불안으로 바뀐다. 첫 소절 '알아 너의 그 표정은'에서 '정'의 음이 벌써 '2옥타브 파샵'을 찍는다. 바로 다음 소절 '마지막 말을 찾는 거야'의 '말'은 '2옥타브 솔'에 달한다. 2옥타브 솔이면 훈련되지 않은 일반적인 한국 가창자의 한계음이라 볼 수 있다. 노래를 부르자마자 '삑사리'가 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면서 다음 소절을 불러야 하는 셈이다. 처음부터 이러면 클라이맥스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다행히도 이 곡은 흐름이 아주 드라마틱하지 않아 잔잔하게 유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노래를 불러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고 마이크를 놓지 않지만 후렴부에 넘어가면 장렬한 '삑사리'를 내는 구간이 나온다. '웃으며 떠나는 거야'부터가 고비다. 여기서 '으며 떠'가 모두 '2옥타브 라'를 찍는다. 이전에 아낀 호흡으로 고함을 쳐대며 어찌어찌 이 구간을 넘겼다 치자. 이후 '만나는 그날까지 여기 있을게'의 연속되는 '2옥타브 솔'에서 차츰 풀려가는 성대는 '내겐 니가 살고 있는'에서 연속으로 찍혀 나오는 '2옥타브 라' 구간과 '살'에서 찍히는 이 노래 최고음 '2옥타브 라샵'에서 결국 무너지고 만다. 완전히 호흡이 망가진 상황에서 잔뜩 조여진 성대는 '살'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괴성으로 이를 대신하며 곧바로 노래방 취소 버튼을 누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어떤 노래든지 특유의 맑은 허스키로 노래할 수 있는 조장혁은 축복받은 성대를 가지고 태어난 셈이었다. 조장혁은 첫 번째 앨범에서 '체인지'와 함께 '그대 떠나가도'로 쌍끌이 히트를 기록하며 주목받는 록발라더로 자리매김하게 된다.('그대 떠나가도'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OST였다. 공교롭게 1집 히트곡은 모두 OST 삽입곡이었던 셈이다)

이후 조장혁의 인기는 상당 기간 탄탄대로를 달린다. 조장혁은 본인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작곡 능력을 겸비한 아티스트 였다.('체인지'는 작사가 박주연이 곡을 썼지만 '그대 떠나가도'는 조장혁이 직접 작사와 작곡 모두를 맡았다) 그의 인기 비결에는 그의 음악적 재능도 크게 한몫한 셈이었다.

1997년 말 나온 그의 두 번째 앨범은 다소 부진했지만 '소포모어 징크스'로 치부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 앨범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히트곡이 뻥뻥 쏟아져나온다. 2000년 나온 그의 세 번째 앨범은 그의 '커리어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앨범 커버에 파스텔톤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주인공을 내세운 그의 3집은 조장혁에게 만화 같은 성공을 안겨다 준다. 10곡의 잘 벼려진 노래로 엄선된 그의 3집에는 그의 대표작 '중독된 사랑'과 'LOVE'가 담겨 있다. 중독된 사랑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단골곡으로 오를 만큼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곡이다. '복면가왕'에서도 더원과 이홍기가 불러 화제가 된 바 있다.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너의 집까지 오고만 거야

너 나를 떠나도 매일 널 바래다 준 습관

눈물로 남아서



소리없이 끊는 전화에

몸서리치게 네 모습 더욱 그리워

너의 그 따뜻한 목소리

이젠 더 이상은 내 것이 아닌데



잊었니 너와 나 사랑했던 날 모두

이젠 너의 기억 저 멀리 잠든 추억인 거니

아직도 널 잊지 못해 견딜 수 없어

눈물로 하루를 삼키는 내게

제발 다시 돌아올 수 없겠니

너 없는 세상 어디에서도 숨 쉴 수 없는 날 위해



들어줄 넌 곁에 없지만 가만히

너의 이름을 혼자 불러봐

어쩌면 예전에 그랬듯

네가 대답해 줄까 하는 미련에



잊었니 너와 나 사랑했던 날 모두

이젠 너의 기억 저 멀리 잠든 추억인 거니

아직도 널 잊지 못해 견딜 수 없어

눈물로 하루를 삼키는 내게

제발 다시 돌아올 수 없겠니

너 없는 세상 어디에서도 숨 쉴 수 없는 날 위해

날 위해 날 위해 날 위해 돌아와

중독된 사랑 역시 노랫말은 조은희가 붙였지만 멜로디는 조장혁이 만든 노래다. 이 곡 역시 후반부 하이라이트에서 연속해 쏟아져 나오는 '2옥타브 라'가 극악난도를 선사한다. 악을 쓰며 부를 수 있어도 조장혁처럼 노래를 '장악하며' 부르기는 여간해서 쉽지 않다. 특히 조장혁은 하이라이트 분야에서 같은 음을 연속해 찍는 방식으로 청자를 몰입시키는 스타일의 작곡 스타일을 종종 보여준다. 이 노래에서도 '잊었니 너와 나 사랑했던 날 모두'에서 '사랑했던 날'의 음을 한결같이 '2옥타브 라'로 통일시켜 놓았다. 다음 나오는 '널 잊지 못해 견딜 수 없어'에서도 '못해 견딜 수'의 음높이가 모두 '2옥타브 라'다. ('체인지'에서도 이 같은 음의 배열 방식이 클라이맥스에서 종종 활용된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를 조장혁의 절창으로 소화하면서 청자에게 짜릿함을 선사하는 '단순함의 마법'을 부리는 셈이다. 이 앨범에 실린 'LOVE'는 결혼식 축가로 널리 불리는 곡 중 하나다. 이 곡 역시 '중독된 사랑'의 가사를 쓴 조은희가 작사를 맡았다.

다음 앨범에서도 조은희와 콤비를 이뤄 여러 좋은 곡을 많이 내놨지만 아쉽게도 조장혁은 정점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2001년 나온 4집 앨범은 빛을 보지 못했고, 2003년 나온 다섯 번째 앨범 역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오랫동안 앨범을 내지 못했던 그는 2008년에 가서야 리메이크 앨범 형태의 여섯 번째 앨범을 내놓는다. 하지만 아이돌 위주로 넘어가 버린 가요계 판에서 조장혁이 설 자리는 좁았고 이렇게 그는 잊힌 가수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원체 노래를 좋아하는 한민족이 '전설의 절창' 조장혁을 가만 놔줄 리 없었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 노래 잘하는 가수가 나올 수 있는 공중파 무대가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에서 조장혁은 하나씩 기회를 잡게 된다. 가창력 하나만 있으면 꼭 새 앨범을 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가수 생활을 화려하게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조장혁에게는 상당히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불후의 명곡'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등 현재 한국의 노래판을 상징하는 대표 프로그램에 조장혁이 두루 출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무대마다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내며 조장혁은 자칫 잊힐 뻔한 가수에서 현재진행형의 가수로 옷을 갈아입게 됐다.

사실 조장혁은 아직도 그를 대표하는 명곡을 몇 곡이나 가지고 있는 가수이자 작곡가지만 아쉽게도 전성기 때 그의 명성에 걸맞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활동 당시 그는 고독해 보이며, 말수가 없고, 터프할 것 같으며, 표정이 굳어 있는 일종의 신비주의 콘셉트였다. 그가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놀 공간이 많지 않았다. 요약해 말하자면 그의 내면에 있는 끼를 내보이기에 당시 방송 환경은, 그리고 그가 선보이는 음악 스타일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잠적 후 되돌아 온 조장혁은 '그때 그 조장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수다스럽고 푸근하다. 그의 전성기 시절 방송 무대를 보면 세상의 시름을 다 가진 것 같은 분위기지만, '복면가왕' 등에 나와 '호흡 전문가'로 활동하는 패널로의 그를 보면 너무나도 밝고 유쾌한 분위기다. 그리고 그의 장기인 가창력은 전성기에 비해 조금도 퇴화하지 않았다. 앞으로 조장혁의 '제2의 전성기'는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의 추천곡은 앞서 거론한 모든 곡들과 함께 다섯 번째 앨범에 실린 '아직은 사랑할 때' '이별보다 아픈 하루' 등을 들고 싶다. 복면가왕에 나와 그가 부른 조용필의 '비련'은 조장혁의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명곡이다.

그가 2015년 내놓은 디지털 싱글 '숨 쉴 때마다'는 중년 나이인 그의 심경을 오롯이 대변한다. 조규만과 함께 노랫말을 붙인 그는 그를 기다린 팬들의 오랜 기다림을 대변한 듯 작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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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 만큼 심장이 뜨겁던 찬란한 봄날은 가고

하루를 채우듯 살아만 가는 게 덧없이 느껴질 때



가끔 너와 함께 걷던 이 거리에 그냥 주저앉아 널 그린다



숨 쉴 때마다 니가 너무 보고 싶다 눈만 감으면 넌 내 앞에 서 있는 걸

넌 내 곁에 있다 아직 내 몸은 너를 부르고 있다 니가 너무 그립다



영원을 믿었던 운명을 걸었던 사랑도 날 떠나가고

위로받지 못해 아물지 못한 시간들은 소리 없이 흘러만 가고



마치 어제 같은 우리 추억들을 모두 꿈이라고 생각해봐도



숨 쉴 때마다 니가 너무 보고 싶다 눈만 감으면 넌 내 앞에 서 있는 걸

넌 내 곁에 있다 아직 내 몸은 너를 부르고 있다



후략



그는 '중독된 사랑'으로 심장이 뜨겁던 찬란한 봄날도 보내봤고, 가수 생활을 사실상 관두고 '하루를 채우듯 살아만 가는 게 덧없는' 세월도 보내봤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인기는 '영원을 믿었던 운명을 걸었던 사랑도 날 떠나가는 것'처럼 사라졌다. '위로받지 못해 아물지 못한 시간'이 흘러갔지만 조장혁을 기다린 팬들은 아마도 '숨 쉴 때마다 니가 너무 보고 싶다'며 눈만 감으면 조장혁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조장혁은 '아직 내 몸은 너를 부르고 있다'는 팬들의 소리침을 온몸으로 받고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갈 용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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