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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수익모델 파괴하라" 터너그룹 회장의 비장함

  • 최용성
  • 입력 : 2017.03.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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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Tech Talk-83] 작은 녀석이 이번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생 때 스마트폰을 사주겠다고 했고, 그 녀석도 의외로 이를 받아들여 아직 피처폰을 쓰고 있다. 다만 음악을 많이 듣고 있으니 새 MP3플레이어가 갖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고교 입학 선물 겸 해서 MP3플레이어를 사주려고 마트 전자 매장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못 샀다. 담당 직원에게 MP3플레이어를 좀 보여달라고 했더니 이제 들어오지 않는단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지 누가 MP3플레이어를 써요?"

 하긴 최첨단 돌비 시스템을 장착한 스마트폰이 나오는 판에 MP3플레이어는 아무래도 경쟁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 등장 이후 사라진 게 한둘이 아니다. 행사 때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T맵, 카카오맵 등과 같은 애플리케이션 활용이 늘면서 별도 내비게이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추세다.

 최근 일본 대표 게임업체 닌텐도가 내놓은 '스위치'라는 게임기 운명도 스마트폰에 달려 있다. 스위치는 닌텐도가 '위유(Wii U)'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게임기다. 집에서는 TV에 연결해 쓰고 밖에서는 별도 게임기로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닌텐도는 "첫날 예약분이 완판되는 등 출발이 좋다"며 "게임기만이 주는 만족감을 바라는 고객이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게임 전문가 임상훈 디스이즈게임즈 대표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그는 게임기도 카메라, 내비게이션처럼 결국 스마트폰 쓰나미에 휩쓸릴 것이라고 했다. 임 대표는 "다만 닌텐도에는 '마리오'라는 걸출한 IP(지식재산권)가 있다"며 그게 닌텐도를 살릴 것이라고 했다. 콘텐츠가 결국 솔루션이 될 것이란 얘기다.

 스마트폰이 플랫폼을 장악한 시대에 콘텐츠라니? 다시 얘기는 '플랫폼 대 콘텐츠'로 돌아간다.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도 플랫폼과 콘텐츠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일단 겉으로만 보면 확실히 콘텐츠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반면 과거 플랫폼의 단맛을 톡톡히 봤던 통신사업자들 위상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번에 미디어 기업 대표로는 처음으로 MWC 기조연설자로 초청된 리드 헤이스팅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트렌드를 보여준다. 그는 통신 사업자들 잔치에 와서 "플랫폼에 구애받는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헤이스팅스 CEO는 "우리를 키운 것은 콘텐츠-특히 13세 소녀가 자살하며 그 이유 13가지를 말하는 것과 같은 매우 논쟁적 콘텐츠-다"라고 강조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세는 플랫폼이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더라도 플랫폼에 입성하지 못하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기 때문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주도했던 소위 '윈텔' 시대를 떠올려 보자. 획기적 프로그램을 만들었어도 윈도 기반이 아니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 거의 대부분이 윈도 운영체제(OS)를 채택하고 있고 인텔 칩을 장착한 PC를 사용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디어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기가 막힌 스토리를 담은 콘텐츠를 만들면 뭐하나. 유료 방송사(SO)에서 외면해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때 플랫폼은 선택받은 소수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강점을 무기로 수많은 콘텐츠 기업들에 갑질을 해댔다. 콘텐츠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플랫폼에 줄을 대고 콘텐츠를 공급해야 했다.

 그런데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꼭 PC 기반 프로그램으로 개발할 필요가 없어졌다. 웹에서 작동하기만 하면 어떤 거대 사업자 눈치도 보지 않고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다. 미디어는 어떤가. 극소수에 불과했던 신문, 방송 등 플랫폼 기업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통해 1인 미디어가 수만 명을 들썩들썩하게 만드는 게 요즘 시대다.

 문제는 모든 콘텐츠가 다 플랫폼에 맞서 승기를 잡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콘텐츠는 플랫폼을 찾아가 만나야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 숙명을 타고 났다. 콘텐츠 간 경쟁에서 탈락하게 되면 플랫폼과의 싸움은커녕 자신의 생존조차 보장 못한다. MWC 미디어 세션에서 CNN을 보유한 터너그룹 제이미 마틴 최고경영자(CEO)는 "네트워크 TV 시청료를 받는 CNN이 모바일 서비스를 하면 제살깎기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우리 비즈니스 모델을 잡아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이 우리를 먹을 테니까." 지금 콘텐츠 간 전쟁이 얼마나 살벌한지 그의 이 한마디가 잘 보여준다.

[최용성 모바일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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