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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에서 최강 무기는? 무조건 먼저 제안하라

  • 윤원섭
  • 입력 : 2017.03.1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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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시간MBA 레터-5]
비즈니스 협상의 제1원칙
-상대방 보다 무조건 먼저 제안하라…원하는 결과에 더 까가이 간다
-언어의 심리학을 활용하라…상대방의 인식을 지배한다


 상황 #1. 당신은 지금 집을 구매하기 위해 집주인과 집값을 놓고 흥정을 시작한다. 당신이나 집주인 모두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집값은 있으나 아직 어느 누구도 가격을 밝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때 당신이 원하는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집주인이 먼저 가격을 제시하도록 기다리는 것이 유리할까?

 미시간대학 MBA스쿨에서 비즈니스 협상을 가르치는 로리 모건 교수는 "당신이 원하는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모건 교수는 "최근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어떤 협상에서든 먼저 제안을 하는 쪽이 반드시 더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비즈니스 협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왜 그럴까? 모건 교수는 두 협상자 중 일방이 먼저 안을 제시하면 그 안이 두 협상자 모두에게 일종의 기준(anchor)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앞서 집값 흥정에서 구매자가 먼저 집값으로 10억원을 제시하면 집주인은 원래는 15억원을 생각했더라도 10억원이라는 금액을 듣는 순간 15억원보다는 낮은 가격에 합의를 보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때 맨 처음 제시된 10억원이 바로 기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모건 교수는 협상에서 먼저 제안을 제시함으로써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효과를 '기준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르고 이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가 집단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효과라고 강조했다. 1987년 그레그 노스크래프트와 마거릿 닐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아무래도 집값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전문가지만 이들도 막상 집값 협상을 하게 되면 기준 효과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모든 협상에서 자신의 안을 먼저 말하는 게 유리할까?

 모건 교수는 딱 한 가지 경우 예외를 인정했다. 만일 상대방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가 있을 경우 기준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면접관이 구직자보다 더 많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섣부르게 구직자가 먼저 연봉 등을 제시하기 보다는 면접관으로부터 듣고 대응하는 게 더 낫다. 모건 교수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는 경우 정보가 없는 협상자는 가능한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아 미리 협상에 준비하는 게 최고의 비책"이라고 충고했다.

 만일 협상에서 자신의 안을 먼저 말하려고 했으나 상대방이 먼저 선수를 친 경우는 어떻게 해야할까?

 모건 교수는 "상대의 첫 제안에 흔들리지 말고 과감하게 파격적인 제안으로 역공을 취할 것"을 추천했다. 이 경우 상대방의 기준 효과를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모건 교수는 협상자가 상대방에게 첫 제안을 말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면, 상대방이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서되 그렇다고 너무 터무니없는 수준은 아닌 적당히 과감한 역제안을 할 것을 조언했다.

 가격 흥정을 하는 두 협상자는 각각 목표가격(target price)과 유보가격(reservation price)이 있게 마련이다. 유보가격이란 마지노선 가격을 뜻한다. 예컨대 집을 파는 집주인이 목표가격으로 15억원, 유보가격으로 10억원을 염두에 둔다면 구매자는 목표가격을 8억원, 유보가격을 13억원에 둘 것이다. 이때 두 사람의 목표가격과 유보가격의 교집합은 10억~13억원이다. 흥정 결과 집값이 이 사이에서 이뤄진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익이 되는 결과다. 하지만 일방이 최대한 이익을 보려면 모건 교수의 조언대로 과감한 제안이 필요하다. 예컨대 구매자가 집주인의 유보가격 10억원보다 낮은 8억~9억원을 제안하는 게 좋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다시 흥정을 통해 집주인의 유보가격 10억원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모건 교수는 "협상은 언어로 제안이 오가는 만큼 언어를 인지하는 심리학을 잘 알면 많은 도움이 된다"며 "언어 표현의 방식도 가능한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원칙만 일별하기 위해 아래 문제들을 풀어보자.

 문제 1. 한국 1000대 기업 중 임원이 불법을 저지르는 기업은 10곳(1%)보다 많을까 적을까?

 문제 2. 한국 1000대 기업 중 임원이 불법을 저지르는 기업은 몇 곳이나 될까?

 예컨대, 당신은 '문제 2'의 답이 많기를 바란다고 하자. 그러면 '문제 1'에서 10곳을 200곳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모건 교수는 "10곳이라고 했을 경우 '문제 2'의 평균 답은 45곳이었지만, 200곳이라고 했을 경우 '문제 2'의 평균 답은 242곳이었다"며 "우리는 숫자가 앞서 큰 게 나오면 다음에도 자연스럽게 큰 게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다음 문제를 '얻다'와 '잃어버린다'는 표현이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심리적 차이를 알아보자.

 문제 3. 한국에 전염병이 창궐해서 600명이 이 전염병으로 인해 죽게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대안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
 (1) A 프로그램을 도입할 경우 600명 중 200명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2) B 프로그램을 도입할 경우, 3분의 1의 확률로 6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고 3분의 2의 확률로 어떤 생명도 구할 수 없다.

 문제 4. 한국에 전염병이 창궐해서 600명이 이 전염병으로 인해 죽게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대안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
 (1) A 프로그램을 도입할 경우 600명 중 400명이 죽는다.
 (2) B 프로그램을 도입할 경우, 3분의 1의 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고 3분의 2의 확률로 600명이 모두 죽는다.

 사실 '문제 3'과 '문제 4'는 '생명을 구한다'와 '죽는다' 의 표현만 다르지 내용은 동일하다. A프로그램과 B프로그램의 기대 생존 인원 역시 200명으로 같다. 그러나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문제 3'의 경우 응답자의 73%가 A를 선택했고, 문제 4의 경우 응답자의 82%가 B를 선택했다. 이유는 '문제 3'은 '생명을 구한다'는 표현이 뭔가를 얻어낸다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는데 이 경우 우리의 인지 심리학 작동에 따라 우리는 '위험 기피(risk averse)'를 선호하게 되어 A프로그램을 선택한다. 반면 '문제 4'는 '죽는다'는 표현은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경우 우리는 잃어버린다는 인지 심리학상 '위험 추구(risk seeking)'를 선호하게 되어 프로그램 B를 선택한다.

[윤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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