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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자가 꼭 명심할 점은 상대방 현실적 입장 고려

  • 남보람
  • 입력 : 2017.05.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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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남보람의 군사경영-96] #1. 서편제의 "뭘 먹고 살아요"

1993년에 개봉한 영화 '서편제'는 지금의 천만 관객과 맞먹는 백만 관객 동원을 단일 상영관에서 해냈다. 기적 같은 흥행 기록이다. 영화를 한 번 본 이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물으면 대개는 주요 인물들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굽이고개를 내려오는 6분짜리 롱테이크를 꼽는다.

그런데 두 번 이상 본 이들의 대답은 조금 다르다. 서편제 중반부에 판소리를 하며 떠돌던 주인공 부녀가 허름한 오두막에 들어가는 장면. 사람들은 거기에 나오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송화의 아버지는 '부귀보다도 좋고 공명보다도 좋은 것이 판소리 득음'이라며 '제 소리에 제가 미치면 세상이 다 네 것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송화는 그런 아버지에게 묻는다. "뭘 먹고 살아요?"

#2.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은 2003년 에세이집 '밥벌이의 지겨움'을 냈다. 그는 '하느님이 새는 맨입에 먹여주실지 몰라도 인간을 맨입에 먹여주시지는 않는다'며 글을 쓰는 일차적 이유는 밥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관념과 이상으로 가득 찬 직업 예찬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아무 도리가 없으니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고 한다.

#3. '장자'의 "고어지사(枯魚之肆)"

'고어지사(枯魚之肆)'는 '장자'에 등장하는 고사다. '고어지사'를 찾아보면 하나같이 "목마른 고기의 어물전'이라고 적혀 있다. 충분한 설명이 아니다. "물 떠난 고기가 어물전에 간다"고 해석해야 맞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장자가 먹을 쌀이 떨어져서 어느 부자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 그 부자는 "제가 얼마 후에 금이 생깁니다. 그때 귀한 금전을 많이 드리겠소"라고 말했다. 이에 장자가 우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제가 어제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땅바닥에 물고기 한 마리가 퍼드덕거리며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원래 바닷고기인데 어찌하다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물 한 바가지만 가져다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곧 임금께 부탁해서 아예 강 물줄기를 이곳으로 돌려줄 테니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물고기가 화를 내며 이러더군요. "물 한 바가지가 급한데 무슨 임금에 강물 타령입니까. 임금께 부탁하고 와 보시오. 그때면 나는 어물전에 가 있을 테니."

위 세 가지 일화의 공통점을 한 줄로 정리한 설명이 "회남자(淮南子·기원전 2세기 전한 시대의 백과사전)"에 있다. "予拯溺者金玉, 不若尋常之纏索." 해석하자면 "물에 빠진 자를 구하려고 금과 옥을 주는 것은 평범한 새끼줄을 주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미국 장기 파견 후 귀국하자 어쩐지 인생의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항상 말을 늘어놓고 나면 마음이 무겁다. 미친 게 분명한 업무협력 파트너 때문에 직장 관두기 직전이라는데 비전이니 보람이니 하는 속 편한 소리를 늘어놓은 것 같아 후회되는 요즘, 한 번 입을 열면 버라이어티쇼를 펼치기 시작하는 상급자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는 후배에게 '네가 참아야지.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인내하기 위해서는 말이지…'로 시작하는 일장 연설을 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 오늘이다.

[남보람 국방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파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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