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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그런지의 대부… 에디 베더의 목소리가 일품인 '펄잼'

  • 홍장원
  • 입력 : 2017.06.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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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에 음악 상업주의와 싸우며 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 선봉에서 활동
-시간이 지나도 꺾이지 않는 그들의 록 스피릿은 영원하리




[스쿨 오브 락-8] 지난주 보컬 크리스 코넬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운드가든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애틀 그런지 4인방 중 2곳을 이미 다뤘다. 남은 것은 너바나(Nirvana)와 펄잼(Pearl Jam) 두 개 밴드뿐이다. 내친김에 이번에는 펄잼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번 잠시 언급한 대로 펄잼과 사운드가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펄잼의 멤버인 제프 아멘트(베이스)와 스톤 고사드(기타)는 마더 러브 본(이 역시 지난번 언급)의 멤버였다. 그런데 급작스러운 보컬(앤드루 우드)의 사망으로 밴드는 제 갈 길을 갔고, 스톤 고사드와 제프 아멘트는 함께 합주를 하며 자작곡을 만들고 있었다.

빈자리인 보컬과 드럼 주자를 찾기 위해 자작곡을 돌렸는데 당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이 밴드도 이미 다뤘음. 미국 록 음악계도 알고 보면 참 좁은 동네)의 드러머였던 잭 아이언스가 데모곡을 받았고, 그는 같이 농구를 하던 친구인 에디 베더(Eddie Vedder)에게 이걸 넘겨줬다. 에디 베더는 시애틀 근처 샌디에이고에 살면서 밴드 생활을 하다가 데모 곡에 가사를 붙이고 자신의 노래를 덧입혀 이걸 원작자에게 보낸다. 에디의 목소리를 듣고 감탄한 스톤과 제프는 에디를 호출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밴드가 펄잼이다. 그리고 지난번 얘기한 대로 펄잼 멤버와 사운드가든 멤버는 마더 러브 본의 보컬 앤드루를 추모하기 위해 프로젝트 앨범도 낸 바 있다.

1990년 10월 드러머로 데이브 크루센을 영입하며 라인업을 갖춘 이들은 '무키 블레이락'이란 이름으로 공연에 나선다. 무키 블레이락은 미국 프로농구 정상급 선수로 군림했던 포인트 가드였다. 1989년에 데뷔해 2002년 코트를 떠났는데 6차례나 'NBA 디펜시브팀(defensive team)'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철벽 수비를 자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선수의 팬이라도 사람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승엽의 팬이라고 하더라도 밴드 이름을 이승엽으로 지으면 분쟁의 소지가 있다)이라 이들은 이내 밴드 이름을 지금의 펄잼으로 바꾼다. 미국 록 음악계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데뷔 앨범 '텐(Ten)'은 1992년 나왔다. 엄청난 히트를 했다. 펄잼이 있었기에 시애틀 그런지 4인방도 있었다. 대중을 상대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커트 코베인이 전성기 때 자살한 너바나였지만, 당대에서 그보다 더 인기를 끈 밴드는 펄잼이었다.

텐에 실린 곡 중 얼라이브(Alive), 이븐 플로우(Even Flow), 블랙(Black), 제레미(Jeremy) 등 히트곡이 쏟아졌다. 음반의 이름을 '텐'으로 지은 배경도 흥미롭다. 무키 블레이락의 등번호가 10번이었기 때문이었다.

텐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펄잼이 보인 행보는 흥미롭다. 당시는 MTV라는 음악방송이 한창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넘어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당연히 뮤직비디오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곡 흥행을 좌우하는 변수가 되기도 했고, 창의적인 영상이 속속 나오면서 팬들의 관심도 높아지던 때였다. 하지만 펄잼은 주류 음악계의 흥행코드를 전면에서 거부했다.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자신들 공연티켓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티켓마스터(Ticketmaster)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티켓마스터가 중간에 폭리를 취하는 탓에 팬들이 비싸게 공연을 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오랜 소송 끝에 결국 펄잼이 패소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음악 상업주의에 맞서 의미 있는 반전을 보여준 행보였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이유 중 하나가 "너무 유명해져서"였는데,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시애틀 그런지 4인방은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전 세계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유명인이 됐음에도, 그 유명세를 스스로 허물려고 하는 '자기파괴적' 심리가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리였다.

당시 펄잼이 음악계에서 가지는 위상은 지금 상상 이상이었다. 1980년대 음악계 최고 스타가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이었다면, 1990년대 초반은 펄잼과 너바나의 시기였다. 한마디로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뮤지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주류와 타협을 거부하며 독자 노선을 펼쳤으니, 이들을 지지하는 팬들의 충성심 역시 남달랐던 시기였다.

텐의 성공 이후 펄잼은 승승장구한다. 두 번째 앨범 브이에스(Vs.) 역시 명반 중에 명반으로 꼽힌다. 여기 실린 도터(Daughter) 블러드(Blood)라는 곡들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세 번째 앨범 바이탈로지(Vitalogy)를 기점으로 새로운 실험을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시원하게 달려주는 '스핀 더 블랙서클(Spin The Black Circle)'은 이 음반의 백미다. 잔잔하게 읊조리는 에디의 감성적인 보컬이 빛나는 '베터맨(Better Man)'도 수작이다.

네 번째 앨범 노코드(No Code)는 골수팬들을 상대로는 크게 호평받지 못했지만 빛나는 보석 같은 곡들이 많이 숨어 있다. 펄잼은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장수밴드로도 유명한데 2002년 일곱 번째 앨범 '라이엇 액트(Riot Act)'를 내놓으며 다시 전성기를 맞았고 이후 펄잼(Pearl Jam), 백스페이서(Backspacer) 앨범에서 밴드 초창기의 강렬한 느낌을 선보이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노래 가사는 보컬인 에디가 주로 쓰는데, 처량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첫 앨범에 실린 제러미(Jeremy)는 에디가 12살 학생이 친구들 앞에서 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가사를 쓴 곡이다. 내용은 이렇다.

(집에서, 산 꼭대기를 그리며, 그가 맨 위에 서 있는/레몬처럼 노란 태양, 두팔을 브이로 벌리고/적갈색의 수영장 안에 시체가 담겨있네/아빠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지/엄마가 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나쁜 제러미왕, 오, 그의 세상을 지배했네/중략/어떻게 내가 잊을까/그는 갑자기 날 왼손으로 때렸지/내 턱은 한동안 아팠어, 턱이 확 내려 앉았지/후략)

한마디로 집에서 애정을 받고 자라지 못했던 아이가 친구에게 왕따를 당했다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펄잼의 곡 중에는 사회비판적이고, 소외된 감성을 표현한 곡들이 많다.

추천곡으로는 네 번째 앨범 노코드 실린 헤일, 헤일(Hail, Hail), 세 번째 앨범의 '스핀 더 블랙서클(Spin The Black Circle)' 그리고 코소보 난민을 위해 제작된 음반인 'No Boundaries'에서 리메이크한 라스트 키스(Last kiss)를 추천한다. 사실 추천 곡을 꼽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곡들이 많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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