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스페셜리포트

그루브 메탈 그룹 판테라 '나 X됐어'가 주는 매력

  • 홍장원
  • 입력 : 2017.06.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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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오브 락-9] 세상 살다보면 유독 짜증이 나는 날이 있다. 하는 일도 안 풀리고, 인간관계는 오해만 쌓여간다. 뭘 좀 수습해보려고 애쓰다가도 짜증의 압력이 어느 선을 넘어버리면 만사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포기한다. 습관처럼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 X됐어."

이럴 때 들으면 속이 시원한 곡이 하나 있다. 제목부터가 짜증나는 심경과 찰떡궁합이다. 미국 밴드 판테라(Pantera)의 '아임브로큰(I'm broken)'이다. 직역하면 '난 망가졌어' '난 파산했어' 정도가 될까. 쉽게 말해 '나 X됐다'는 얘기다. 이만큼 열불 나는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곡이 있을까.

제목만 그럴싸한 게 아니다. 노래를 듣는 내내 들썩이는 어깨를 주체하기 힘든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 곡의 특징은 첫째, 탁월한 리듬감이다. 나사를 조였다 '풀었다 하듯', 연애 초기에 상대방을 '땡기다 밀다'하듯, 감질나게 툭툭 내뱉다가 절정에서 '나 X됐어'를 외치면 터져버리는 곡의 완성도가 일품이다. 간지가 철철 넘치는 기타는 한번 들으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내친 김에 가사 일부를 소개해본다. (Too young for ones conclusion, the lifestyle won, such values you taught your son. Thats how/니가 니 아들에게 가르친 그런 생활방식이 옳다고 말하기는 넌 아직도 너무 어려. 바로 그런거야/Look at me now. I'm broken/나를 봐, 난 망가졌어/Inherit my life. I'm broken/내 삶을 물려받았지, 난 망가졌어/One day we all will die, a cliched fact of life/언젠가는 우리는 전부 죽어, 진부한 것들로 가득한 삶은/Force fed to make us heed. Inbred to sponge our bleed/폭력은 우리를 집중하게 만들어 피를 닦기 위해 근친 교배된/후략)

가사 일부만 들어봐도 억한 심정의 한 남성이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해놓는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판테라는 1983년 미국 텍사스를 배경으로 결성한 밴드다. 하지만 사실상 1990년대 밴드로 분류해도 무방하다. 사실 이들은 곱상한 외모를 바탕으로 여심을 홀리는 글램 록 밴드였다. 하지만 중간에 밴드 성격을 바꾸고 이에 맞지 않는 보컬이 중도 탈퇴한다. 그리고 메이저 데뷔앨범을 90년에 낸다. 판테라 역사의 시작이다.

물론 좀 애매한 측면은 있다. 결성 당시부터 밴드 이름은 판테라였다. 하지만 1990년 이전 행보는 이들은 철저하게 부정한다. 사실상 밴드 시작 시점을 1990년으로 취급한다. 이들의 다섯 번째 앨범 '카우보이즈 프롬 헬(Cowboys From Hell)'이 그 주인공이다.

앞서 사운드가든과 펄잼을 다루면서 1990년대 초반을 소위 시애틀 그런지, 즉 얼터너티브 록의 전성시대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때 메탈 계열 록 대항마로 급부상한 게 바로 판테라다. 이들이 록 음악계에 미친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로스앤젤레스 메탈 계열의 말랑말랑한 록을 하던 '스키드 로(Skid Row)'란 밴드는 판테라의 영향을 받고 그들의 세 번째 앨범 성격 자체를 바꿔버린다.

연주를 신의 영역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한 드림 시어터(Dream Theater) 역시 공공연하게 판테라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한다.

이들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탁월한 그루브(Groove)다. 듣고 있으면 몸을 가만두기 힘들 정도로 들썩거리는 충동을 느낀다. 몸을 앞뒤로 까딱거리게 만드는 음악의 배경은 상당부분 기타리스트 다임백 데럴(Dimebag Darrell)에 빚지고 있다. 그는 '면도날 기타'로 유명했다. 특유의 강철같이 단단하고 송곳처럼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를 무기로 청취자 고막에 면도날을 새긴 듯한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고는 했다. 그는 10대 시절에 기타 경연에 나가 우승을 한 수재로도 유명한데, 판테라 특유의 '밀당 그루브'와 맞물린 그의 기타는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훌륭했다.

또 한 명 판테라를 히트 반열에 끌어올리게 한 건 역시 보컬 필립 안셀모의 탁월한 역량이다. 그의 보컬은 록 음악계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의 것이다. 내구성 강한 성대를 기반으로 하이톤의 샤우팅을 구사했다. 그의 보컬은 다른 발성이 잘 된 록보컬, 두성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고음을 내는 다른 록보컬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어찌 보면 괴성을 질러대는 듯한데(글로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다. 들어봐야 안다) 아무나 감히 카피할 수 없는 명품 괴성이다. 희소성 측면에서 아주 가치가 있는 보컬이다. 무대 매너는 정말 열광적이었다. 빡빡머리의 험악한 인상을 바탕으로 온몸을 들썩이며 무대를 휘젓는 그의 퍼포먼스는 관객을 흥분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드럼을 맡은 비니 폴(Vinnie Paul)은 기타리스트와 친형제였다. 박자를 자유자재로 쪼갰다 붙였다하며 곡의 가치를 높일 줄 아는 드러머였다. 베이스를 맡은 렉스 브라운(Rex Brown)의 역량이 없었다면 판테라는 반쪽에 불과했을 것이다. 곡의 그루브함을 높이기 위해 그의 능란한 베이스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카우보이즈 프롬 헬(Cowboys From Hell)로 록계를 열광시킨 이들은 1992년 더 강한 사운드로 무장한 '버거 디스플레이 오프 파워(Vulgar Display of Power)'로 돌아온다. 이 앨범 표지는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고 있는 남자 사진이 걸려 있는데, 그래서 이 앨범은 소위 '아구창 앨범'으로 한국에서 불리기도 했다. 여기에 실린 '디스 러브(This Love)'란 곡이 한국에서 인기였다. 조용하게 시작하다 절정으로 달려가는 후반이 일품인 곡이다. 1994년작 파 비욘드 드리븐(Far Beyond Driven)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바로 여기에 '아임브로큰'이 실려 있다. 1996년에는 더 그레이트 '서던 트렌드킬(THE GREAT SOUTHERN TRENDKILL)'을 내놓고 2000년에 마지막 앨범 '리인벤팅 더 스틸(Reinventing the Steel)'을 내놓는다.

이후 펼쳐진 역사는 다소 슬프다. 밴드 해체의 주 이유는 보컬이 자주 사고를 쳤기 때문이었다. 마약중독자였던 그는 스튜디오에 들어와 토를 하거나 행패를 부리기도 했고, 호텔방에 들어 집기를 부수는 등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를 탈퇴시킬까 고민하던 다른 멤버는 그냥 신사답게 밴드를 해체하기로 한다. 하지만 안셀모는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이었고, 공식석상에서 기타리스트는 죽어야 한다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발언이 있을 후 얼마 안 있어 정말 대럴이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2004년 말 겨울의 일이다. 폴과 대럴 형제는 해체 이후 '데미지플랜(Damageplan)'이란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판테라의 광팬이었던 '나단 게일'이 공연장에 들어와 기관총을 난사한다. 결국 대럴을 포함한 3명이 죽고 폴은 중상을 입는다. 게일은 판테라가 자신의 곡을 표절했다고 믿는 정신이상자였다. 일각에서 안셀모의 발언이 그를 자극해서 총을 들게 만들었다는 여론이 일자 안셀모는 장례식장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이후 그때 발언을 정말 후회한다는 해명을 반복해서 했지만, 이미 오랜 동료는 세상을 등진 이후였다.

이들의 추천곡으로는 앞서 거론한 아임브로큰과 디스러브, 그리고 이들의 정체성을 확립한 1990년의 명곡 카우보이즈 프롬 헬을 들고 싶다. 지옥에서 돌아온 카우보이들의 격정적인 음악 앞에 스트레스는 잠시 날려버리자.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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