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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진흙탕 색' 놀림받던 카키색 군복 보급된 까닭

  • 남보람
  • 입력 : 2017.08.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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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3] 19세기 이전까지의 유럽에서 군복은 부의 상징이었다. 돈이 많은 귀족일수록 화려한 색을 가진 귀한 원단으로 군복을 주문하여 입었다. 그런데 20세기 진입을 전후해서 각국 군복 색상과 디자인에 큰 변화가 있었다. 화려한 색이 단일의 위장색으로, 다양한 디자인이 규격화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는 거의 모든 강대국이 단일한 색, 단순한 디자인의 군복을 선택했다. 주된 이유는 세 가지였다. 화려한 군복을 입은 장교를 쏴라

첫째는 교전규칙의 변화였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장교를 겨냥해 쏘거나 특정 군인을 멀리서 저격하여 쏘는 일은 없었다. 비신사적이고 비겁한 행위라고 생각되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는 달라졌다. 장교를 골라 살상하여 리더십을 마비시키고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상대를 쏘아 죽이는 건 당연한 전술이 됐다. 알록달록한 옷은 저격하기 딱 좋은 표적이었다.

둘째는 기술의 발전이었다. 조준경의 발달과 정확도 높은 총기 개발로 살상력이 높아졌다. 멋을 한껏 낸 모자와 특색 있는 디자인의 복장은 멀리서 식별이 잘 됐기에 쏘아 맞히기도 편했다. 고급 군복을 사 입을 돈이 없다

셋째 이유는 귀족들의 군복무 선호도가 낮아지고 사관학교 제도가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일한 색, 단순한 디자인의 군복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18~19세기 동안 유럽에는 전쟁 그칠 날이 없었다. 전사상자는 늘어만 갔다. 그냥 늘어난 정도가 아니다. 전술의 변화, 기술 발전으로 그야말로 '대량살상'이란 것이 시작됐다. 어느 한쪽 군대의 인적·물적 자원이 바닥날 때까지 싸우는 국가총력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자 귀족의 장교 지원율이 낮아졌다. 마침 서구에는 일반 평민도 입학이 가능한 사관학교 제도가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평민 출신의 장교 비율이 높아졌다.

자, 그렇다면 이제 대략 답이 나온다. 평민 출신의 장교들은 귀족들처럼 고급의 비싼 장교군복을 주문제작하여 입을 형편이 되지 않았다. 장교들의 군복은 개별 구입이 원칙이었으므로 평민 출신은 싼 옷을 입었다. 쉽게 바래지 않으면서도 염색 재료가 비싸지 않은 색상, 화려하거나 정밀한 장식이 없는 디자인의 군복을 선택했다. 썩은 진흙탕 같다고 놀림 당하던 색, 카키

제1차 세계대전 군복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통일성이었다. 서구 주요 강대국들이 같은 색을 선택했다. 그것은 한때 '먹다 둔 풀죽 같기도 하고 썩은 진흙탕 같기도 한 이상한 색'이라고 놀림을 받던 '카키(Khakis)'라는 색상이었다. 힌두어로 카키는 '땅, 먼지'라는 뜻이다. 카키와 인도 국경수비대, 가이드단

카키색을 군복에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영국 치하 인도 서북부 국경에 있던 가이드단(Corps of Guides)이었다. 가이드단은 펀잡(Punjab) 지방의 인도인을 선발하여 1846년에 창설한 국경수비대였다.

1890년대에 촬영한 인도 평민의 일상 복장. 흰 색 쿠르타 /사진=위키피디아
▲ 1890년대에 촬영한 인도 평민의 일상 복장. 흰 색 쿠르타 /사진=위키피디아
모집된 이들은 한동안 인도인들이 입는 전통의 면소재 옷을 입고 훈련을 받았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볼 때 목에 칼라가 없고 상의가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쿠르타 종류였을 것이다.) 그런데 흰색의 옷을 입고 훈련을 하거나 근무를 서면 때가 너무 잘 탔다. 특히 펀잡 지방의 기후는 여름에 고온다습하고 모래바람이 많아 가이드단 병사들의 외관은 금세 더러워지곤 했다. 그래서 몇몇 병사들은 때 타지 않게, 흙 묻어도 티가 나지 않게 흰색 쿠르타에 흙물을 들여 입고 다녔다. (기록에 의하면 강의 진흙을 이용해 흙물을 들였다고 되어 있다. 착색을 위해 카레 가루를 섞었다고 하는 얘기도 있다.) 나중에는 이것이 일종의 유니폼처럼 되었다.

펀잡 지방의 모래바람 /사진=위키피디아
▲ 펀잡 지방의 모래바람 /사진=위키피디아
1848년부터 가이드단은 군복을 맞추어 입었다. 가이드단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이미 유니폼처럼 되어버린 쿠르타를 기본 디자인으로 하기로 했다. 목에 깃이 없고 하의 위를 덮는 쿠르타의 디자인은 조금만 손을 보면 군복으로도 적당했다.

문제는 군복의 색상이었다. 당시의 유행은 뭐니 뭐니 해도 붉은색(영국군)과 푸른색(프랑스군) 같은 원색이었다. 그러나 선발된 인도인들에겐 고가의 군복을 사 입을 돈이 없었다. 가이드단도 그 같은 총천연색 원단으로 군복을 만들어 지급할 만한 예산이 없었다. 따라서 이제는 가이드단의 상징처럼 된 카키색의 군복을 만들어 보급하기로 했다. 문제는 염색 재료였다. 쉽게 빠지는 흙물은 물론 안 될 말이었다.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값싼 염료를 찾던 끝에 마자리 야자(Mazari palm) 열매가 선택됐다. 열매 추출물로 염색하면 약간 붉은 기가 감도는 흙색, 즉 카키색이 나왔다.
1891년 가이드단의 복장 /사진=캐나다국립문서기록관리청
▲ 1891년 가이드단의 복장 /사진=캐나다국립문서기록관리청


[남보람 육군 군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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