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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원정군의 카키색 군복 '전후 패션'의 대명사로

  • 남보람
  • 입력 : 2017.09.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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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4] 영국해외원정군 카키를 선택하다

(전편에 이어 계속) 한편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던 대영제국의 지도에는 '전쟁 중'이라는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19세기 말 영국이 전쟁을 벌인 곳은 주로 아프리카 대륙이었다. 가이드단 역시 몇몇 전장에 차출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가이드단의 카키색 군복이 유명세를 얻었다. 가이드단 군복의 색상과 재질은 여러모로 유용하고 편리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지형과 기후 조건에 잘 맞았다. 이후 기본 복색을 카키로 하는 영국 해외 원정군이 늘어갔다. 새삼 발견하게 된 유용성

가이드단이 카키색을 선택한 애초의 이유는 때가 덜 타고 비용이 적게 들었기 때문이다. 또 원단은 인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싼 천인 면 혼방으로 했는데 막상 입어 보니 이전의 뻣뻣하고 두꺼운 군복보다 활동성이 뛰어났다.

여기에 더해 영국군과 미군은 카키에서 '위장'이란 기능을 찾아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19세기 군대의 복식 특히 장교의 그것은 화려하고 장식물이 많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장거리 저격이 적극 권장되었고 총기의 살상력이 배가되었기에 화려한 치장의 군복을 입은 영국군(빨강)과 프랑스군(파랑)은 '쏘기 좋은 표적'이었다. 단순한 디자인의 카키색 군복은 주변 환경에 전투원을 동화시켰다. 이에 영국군과 미군은 카키색을 해외 원정군 복제의 표준으로 정했다.

군인을 표적으로 바꿔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영국군의 군복 /사진=cjmenswear
▲ 군인을 표적으로 바꿔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영국군의 군복 /사진=cjmenswear
제1차 세계대전과 카키의 표준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각국 군대는 카키색 군복을 기준 복제로 정했다. 물론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파병지역의 자연 환경에 맞춰 녹색, 회색, 갈색 등을 다양하게 섞어 산악에서도 평지에서도 위장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대표적인 것은 올리브황갈색(olive drab)이다. 한국군이 1990년대 초반까지 입었던 민무늬 전투복의 색이 바로 올리브황갈색이다.

다양한 카키색. 사진 속에 있는 것은 1940년대 미군의 방독면 주머니 /사진=www.atthefrontshop.com
▲ 다양한 카키색. 사진 속에 있는 것은 1940년대 미군의 방독면 주머니 /사진=www.atthefrontshop.com
카키와 현대 패션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로 와 보자. 2015~2016년 패션 유행을 다룬 많은 칼럼이 '카키가 새로운 블랙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적이 있다. 2015년을 강타한 블랙의 강세를 카키가 대신 이어받을 것이라고 했다. '먹다 둔 풀죽 같기도 하고 썩은 진흙탕 같기도 한 이상한 색'이라고 혹평을 받던 카키가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 패션계를 매혹할 수 있는 감각 있는 색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2016년 핫 아이템으로 선정된 옷 중 하나. 군필자가 보기엔 그냥 군복이다. /사진=www.glamourmagazine.co.uk
▲ 2016년 핫 아이템으로 선정된 옷 중 하나. 군필자가 보기엔 그냥 군복이다. /사진=www.glamourmagazine.co.uk
새삼스러운 변화는 아니다. 카키는 유명인의 패션 감각을 드러내는 컬러로 애용돼 왔다. 유명인 가운데 카키를 잘 소화한 이 중에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도 있다. 오드리 헵번도 생전에 카키색 옷을 즐겨 입었다.

카키가 패션계의 키워드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은 1998년이 아닐까 한다. 복고풍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유행하던 중에 한 패션의류회사의 '카키, 휩쓸다(Khaki Swing)'라는 제목의 광고가 대히트를 했고 관련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던 것이다.

Khaki Swing의 한 장면.
▲ Khaki Swing의 한 장면.
요트에서 카키색 면바지를 입고 있는 케네디 대통령. /사진=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 요트에서 카키색 면바지를 입고 있는 케네디 대통령. /사진=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스위스 휴양지에서 카키색 코트를 입은 오드리 햅번. /사진=오드리 햅번 재단
▲ 스위스 휴양지에서 카키색 코트를 입은 오드리 햅번. /사진=오드리 햅번 재단
카키는 언제 민간의 일상으로 들어 왔을까

그렇다면 군복의 카키가 일상 속으로 들어와 패션이 된 것은 언제, 어디서부터였을까. 전문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라고 본다. 카키는 1940년대 미국의 상징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 당대 대중의 요구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두 번의 전쟁과 그 사이에 낀 대공황을 버텨낸 미국 시민들은 아마도 그 반대급부인 듯, 편하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했다. 참전자들이 전역하면서 입고 나온 카키색 군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카키색 군복은 편하고 견고하고 실용적이었다. 격식을 갖추지 않고 일상 어디에서든 입을 수 있는 '캐주얼'로 적합했다.

둘째, 전후의 평등의식, 여성인권 코드와 맞아 떨어졌다. 국가동원령의 발령으로 참전했던 수많은 군인은 애국심, 전우애, 용기, 정직과 같은 가치가 신분, 계층, 빈부, 학력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 참전의 경험은 전후 평등권과 인권의 발전에 기여했다. 군복의 카키색은 이런 경험과 깨달음의 상징이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소위 '카키를 입은 여성(Women in Khaki)'은 여성 권리 신장에 중요한 방점을 찍었다. 여성 군인의 비율이 높아졌고 전장에 나가는 대신 많은 여성이 군수공장 등에서 노동으로 전쟁을 지원했다. 여성 군인과 군수공장 근로자들이 입었던 카키는 강인한 여성상, 여성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색이 됐다.

셋째, 전후 카키는 애국심, 헌신, 협동의 상징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전체주의로부터 자유주의를 지켜낸 전쟁,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전쟁이었다. 인류의 이상과 인간의 가치를 지켜낸 제2차 세계대전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교육에 활용되었다. 카키색 군복은 자유,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서구의 수많은 학교가 카키를 교복의 색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남보람 육군 군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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