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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즐겨 입는 카디건 英 고집불통 백작의 이름

  • 남보람
  • 입력 : 2017.09.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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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건(Cardigan)_상

[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5] ◆가디건? 카디건?

우리가 '가디건'이라고 부르는 옷이 있다. 남녀노소 즐겨 입는 보온복이다. 중앙냉방시스템이 있는 학교나 직장의 의자에는 으레 이런 종류의 옷이 한두 벌쯤 걸려 있다. 그런데 이 '가디건'은 잘못된 표기다. '카디건'이 맞다. 우리말에 격음(ㅋ, ㅌ)으로 시작되는 외래어 발음, 표기가 평음(ㄱ, ㄷ)으로 바뀌는 사례가 종종 있다. 카디건(cardigan)이 가디건으로, 텀블링(tumbling)이 덤블링으로 굳은 것이 대표적이다.

카디건은 분류상 스웨터(sweater)의 일종으로 정식 명칭은 카디건 스웨터(cardigan sweaters)다. 스웨터는 1882년 처음 영어사전에 등장하는데 그 뜻은 '조정(漕艇)을 할 때 보온을 위해 입는 실뜨개 상의'로 되어 있다. 처음의 형태는 풀오버(pull over) 스웨터라고 부르는 통으로 짠 것이었다. 앞을 터서 입고 벗기 쉽게 만든 카디건 스웨터는 이보다 나중에 등장해서 1925년부터 각광받는 패션아이템이 되었다.

◆군대에도 보급되는 카디건

카디건은 군대에도 정식으로 보급되고 있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정책부서 간부들의 애용품이다. 한국 육군에도 몇 년 전부터 보급되어 실내 근무를 할 때 입을 수 있다. 카디건이 처음 나왔을 때 간부들은 "군대에 카디건도 보급되고 세상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알고 있었을까? 이 카디건이 군대에서 처음 고안됐다는 것을?

미 해군에게 보급되는 남녀공용 카디건
▲ 미 해군에게 보급되는 남녀공용 카디건
호주 육군에 보급되는 개선된 카디건
▲ 호주 육군에 보급되는 개선된 카디건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실천한 귀족 출신의 영웅?

카디건의 유래를 알고자 하면 한 귀족의 일생을 참고해야 한다. 바로 카디건 백작(Earl of Cardigan) 가문의 제임스 브루드넬(James Brudenell)이다. 그는 19세기 대영제국군의 장교로 중장의 계급까지 올랐다. 카디건 백작가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제임스 브루드넬의 약사가 게재되어 있다.

제임스 브루드넬은 귀족 중에선 드물게 어릴 적부터 군인이 되길 열망했으며, 임관 가능한 연령이 되자 장교로 자원했다. 백작가의 젊은 귀족이 취한 태도는 근대국가의 군대를 지휘하는 장교라기보다는 중세시대 용병을 고용한 봉건영주에 가까웠다. 그는 가문의 부를 사용하여 화려한 복장과 최고급 장비로 부대를 꾸몄다. 교육훈련에는 간여하지 않았지만 기사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싶으면 죄를 엄하게 다뤘다. 개인적으로는 전장에서도 귀족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이는 다른 귀족 출신의 영국군 장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1853년 크림 전쟁이 발발했고, 이듬해 제임스 브루드넬의 부대도 전장에 투입됐다. 제임스 브루드넬이 지급한 최고급 장비가 전투에서 큰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그가 이끄는 기병부대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목숨을 아끼지 않은 혈전을 벌였으며 귀국한 제임스 브루드넬은 국가적 영웅이 됐다.

제7대 카디건 백작이 된 제임스 브루드넬은, 군을 떠난 뒤에 사냥, 사격, 승마, 조정 등 귀족적 취미를 즐기면서 연회를 베풀었다. 국가적 영웅이면서 사교계의 총아였던 그는 유행을 선도했다. 특히 그는 활동이 편하고 보온성 높은 니트를 고안해 입고 스포츠를 했다. 전장에서부터 입고 다녔다는 이 옷은 큰 유행이 됐다. 이것이 오늘날 모두가 즐겨입는 카디건의 유래다.

◆돈과 거짓으로 가짜 영웅이 된 갑질왕!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인 카디건 백작가의 상속자, 장교로 자원하여 젊은 날을 전장에서 보낸 애국자, 스포츠를 즐기고 패션을 선도하는 쾌남자. 이것이 당대에 알려진 제7대 카디건 백작, 제임스 브루드넬의 이미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 타임지가 폭로성 기사를 하나 썼다. 기사는 인터뷰를 인용하여 카디건 백작이 영국제국군의 골칫덩이로 평소에는 부하에게 가혹하게 채찍을 휘두르던 차별주의자였고 전쟁에서는 부하들을 죽음을 향해 돌진시킨 후 자신은 도망친 비겁자라고 했다. 한마디로 갑질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카디건 백작과 그의 팬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만 역사, 전쟁사 연구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영국군의 역사 혹은 크림 전쟁을 연구한 이들의 저작을 보면 카디건 백작에 대한 일화가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남아 있다. 실제 카디건 백작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고집불통, 사고뭉치 장교였던 카디건 백작

영국 백작가의 독자로 태어나 집에서 개인교사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난 브루드넬의 꿈은 하나, 장교가 되어 부대를 지휘하는 것이었다. 장교가 된 브루드넬은 한마디로 오만한 고집불통이었는데 이는 당대 귀족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제임스 브루드넬. 장교 생활 초기의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 제임스 브루드넬. 장교 생활 초기의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군에서 브루드넬은 유난히도 일화를 많이 남겼다. 어찌나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많이 쳤던지, 어떤 야사(野史)에는 어린 시절 그가 머리를 다쳐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고 써 있을 정도다. 브루드넬은 부하를 때려 해임됐다가 지위를 이용하여 다시 복귀했고 부대 이동에 개인용 호화 요트를 이용했으며 전선에서는 불편하다며 숙영지에 머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큰 처벌을 받지 않고 군생활을 이어나갔다. 귀족이라서, 돈이 많아서였다. 거기에 어지간한 일에는 충격을 받지 않는 '강한 멘탈'까지 갖추고 있어서 상급자의 주의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그가 잘한 것이 있다면 부대에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이즈음 정식으로 카디건 백작이 된 그는 영국 내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다. 상속받은 재산(요크셔 지방에 있는 석탄 광산 등) 자체가 엄청났고 필요 없는 땅을 정리하면서 거대한 시세 차익을 얻었다. 카디건 백작은 휘하의 장교들에게 호화 군복을 입히고 전 부대원에게 고급 장비를 보급했다. 이 조치는 영국제국군의 전투력 향상에 다소나마 그리고 의도치 않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화려한 군복과 비싼 무기로 무장한 카디건 백작의 부대를 본 다른 지휘관들도 능력 범위 내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족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제국군은 군복을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입해 입었다. 귀족 출신의 지휘관이 가문의 재산으로 군복과 장비를 구입하여 나눠주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카디건 백작처럼 초호화 군복과 장비를 지급하지는 않았다.)

◆크림 전쟁(1853-56)의 발발과 "발라클라바 계곡 전투"

1853년 크림 전쟁이 발발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 각국의 근대식 군대가 처음 격돌했다. 유럽으로의 서진(西進)을 꿈꾸던 러시아와 새로운 패권의 등장을 허락할 생각이 없던 영국은 러시아 세바스토폴에서 격전을 치렀다. 여기에 카디건 백작의 부대, 영국 제11경기병여단이 참전하게 됐다. 1715년에 창설된 전통 있는 부대인 제11경기병여단은 하급 간부들에 의해 상명하복의 규율이 유지되고 있었다.

마침내 영국 제11기병여단이 첫 전투에 투입됐을 때,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휘관의 지휘스타일이었다. 그는 무모하고 무관심했다. 카디건 백작이 상급부대로부터 받은 첫 번째 명령은 발라클라바(Balaclava) 계곡을 점령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명령받은 대로 적이 있는 곳을 향해 부대를 전진시켰다. 계곡으로 기병이 전진하는 것은 자살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전체 병력 674명 중의 3분의 2가 죽거나 다쳤다. 카디건 백작의 부대는 목표를 점령했으나 러시아군은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그 뒤쪽에 있는 더 유리한 지역을 점령했다.

(다음 편에 계속)

[남보람 육군 군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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