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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오샤오촨 中인민은행장과 장쩌민의 그림자

  • 김대기
  • 입력 : 2017.10.0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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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행장. /사진=매경DB
▲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행장. /사진=매경DB
[똑똑차이나-65] 2012년 12월 18일 신화통신은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에 대한 짤막한 보도를 내놓았다. 저우샤오촨 행장이 대내외 회의석상에서 '중국 경제가 혼란스럽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저우샤오촨 행장이 실제 그런 말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 국영 통신사가 이같은 반박성 보도를 내놓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에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다.

2012년은 중국에게 있어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변곡점'과 같은 해였다. 그 해 경제성장률은 8%를 밑돌면서 '고성장 시대'의 종언을 알렸다. 수출 부진에다가 내수 침체 조짐까지 보이자 2013년을 기점으로 경제위기가 찾아올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이 잇따르던 때였다. 2011년 4월 3000선에서 움직였던 상하이종합지수도 2012년 말 2200선까지 내려앉았다. 경기선행지수인 주가가 불안한 경제 상황을 앞서 드러낸 것이었다. 정치적으로는 후진타오 시대가 지고, 시진핑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해였다. 2012년 11월 시진핑은 18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되며 차기 지도자로 낙점된다.

이런 묘한 시점에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이 자리에서 곧 물러날 것이란 소문이 중국 금융업계에서 돌기 시작했다. 퇴임이 예상됐던 명목상 이유는 '나이'였다. 2013년은 저우 행장이 퇴직 정년인 65세가 되던 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중국 금융업계가 더욱 신빙성 있게 내놓은 전망은 새 정권(시진핑 체제)이 인민은행장 자리에 '새로운 피'를 수혈할 것이란 예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전개됐다. 이듬해 2013년 저우 행장은 시진핑 주석과 왕치산 중앙기율위원회 서기의 지지를 받으며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한다.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인민은행법'에 따르면 인민은행은 국무원 산하의 일개 부처이고, 인민은행장은 장관급 인사로 '65세 정년' 룰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또 국무원 부처 수장은 두 차례 이상 임기를 지낼 수 없다.

2012년 12월 신화사의 반박성 보도는 중국 지도부가 저우 행장의 연임을 사실상 인정해준 신호였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저우 행장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선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 2013년 3월 저우 행장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부총리급)에도 올랐다. 중국 지도부가 인민은행장의 위상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켜 저우 행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새 술을 새 포대에 담고 싶어했을 시진핑 정권에서 '옛 술'인 저우 행장을 다시 중용한 것을 두고 당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가장 눈길을 끈 주장은 시진핑 지도부가 장쩌민 전 주석의 눈치를 봤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장쩌민이 시진핑, 저우샤오촨과 각각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장쩌민과 시진핑의 관계는 묘하다. 장쩌민은 시진핑이 후진타오에 이은 차기 후계자로 등극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사람이다. 시진핑이 마음에 들어서 도와준 것이 아니다. 상하이방을 이끄는 장쩌민은 후진타오와 리커창이 필두로 있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견제하기 위해 시진핑을 지지했다. 그 결과 2007년 10월 열린 17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계기로 시진핑은 권력구도 상 리커창을 제쳤고, 2008년 3월 국가부주석이 된다.

장쩌민과 저우샤오촨의 관계는 깊다. 장쩌민은 한 때 저우샤오촨의 부친 저우찌엔난(周建南)의 부하직원이었다. 저우찌엔난은 1979년 8월부터 1982년 3월까지 국무원 산하의 국가수출입위원회의 부주임을 맡고 있었는데 장쩌민은 1980년 국가수출입위원회에서 저우찌엔난의 비서로 일했다. 1995년 저우찌엔난이 사망한 이후 장쩌민은 저우샤오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2002년 11월까지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맡았던 장쩌민은 같은 해 12월 저우샤오촨이 인민은행장으로 임명되는데 힘을 실어줬다. 총서기에서는 물러나더라도 2005년 5월까지 중국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지했기 때문에 장쩌민의 영향력은 후진타오 시대에서도 막강하게 작용했다. 둘 사이의 깊은 관계를 방증하는 사례도 있다. 2012년 7월 장쩌민은 저우샤오촨에게 편지 한 통을 쓴다. 편지는 저우샤오촨을 비롯한 몇몇 저명한 중국 경제학자들을 베이징 위췐산에 모여 경제좌담회를 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저우 행장은 좌담회 내용을 토대로 '장쩌민과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역)'라는 저서를 공동 출간한다.

이후 5년 남짓의 시간이 또 흘렀다. 오는 10월 18일 중국 공산당의 제19차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가 열린다. 시진핑 주석의 집권 2기 지도부의 윤곽이 드러나는 이번 당 대회에서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는 이벤트는 '저우샤오촨의 향방'이다. 중국 금융업계에서는 저우샤오촨이 19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인민은행장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마평도 무성하다. 궈스칭 은행감독관리위원회(은감회) 주석, 장차오량 후베이성 서기를 비롯해 류스위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 주석과 이강 인민은행 부행장 등이 차기 인민은행 행장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 중 가장 주목할 인물은 바로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라인으로 분류되는 장차오량 후베이성 서기다. 중국농업은행과 인민은행, 중국개발은행을 거쳐 지난해 10월 후베이성 서기로 전격 발탁됐다. 장차오량 서기는 1999년 인민은행 광저우지점장으로 재직 당시 광둥 국제신탁투자공사의 50억달러 파산 사태를 해결하면서 왕치산 당시 광둥성 부성장의 눈에 띄어 인연을 맺었다. 장 서기가 후베이성 서기로 발탁될 수 있었던 이유는 왕 서기가 시 주석에게 적극적으로 장 서기를 추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베이징에서는 장 서기를 가장 유력한 차기 인민은행장으로 꼽고 있다.

사실 '포스트 저우샤오촨'을 두고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점은 시진핑의 적폐 청산 작업의 가속화다. 시 주석은 2013년 권좌에 앉은 이후부터 자신의 오른팔인 왕치산 서기를 통해 '반부패 운동'을 전개하며 기존 기득권 세력(장쩌민 등)을 약화시켜왔다. 그 과정에서 장쩌민 전 주석 잔재의 그림자도 서서히 옅어지고 있다. 친(親) 시진핑 인사가 차기 인민은행장 자리를 꿰차는 것은 금융 적폐 청산 작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신호일 것이다. 저우샤오촨이 물러나면 거시적인 권력구도에서 장쩌민의 대(對) 금융부문 영향력은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나아가 저우 행장이 지난 15년 동안 인민은행장을 역임하면서 중국 금융을 관리감독하는 일행삼회(一行三會·인민은행 은감회 증감회 보감회)에 퍼져있는 저우샤오촨의 세력 역시 점차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스터 런민비'이자 '중국의 그린스펀'이라고 불리는 저우샤오촨은 지난 15년 간 중국의 금융개혁과 위안화 국제화에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신창타이(新常態·New Normal) 시대를 맞이한 중국은 금융 부문에서도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급변하는 대내외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종전과는 다른 통화정책 기조와 금융정책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인식도 대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진핑 지도부와 정치적 보조를 맞추는 동시에 새로운 금융 개혁 시대를 열 차기 인민은행장에게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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