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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이해를 위한 코드, 2억5천만명 무슬림과 라마단

  • 방정환
  • 입력 : 2018.06.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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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4]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교에 특별한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라마단(Ramadan)'이라는 말을 들어봤음 직하다. 아랍어로 '무더운 달'을 뜻하는 라마단은 이슬람 달력상 아홉 번째 달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는 음식을 멀리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금식의 달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교가 폭넓게 분포하는 중동,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지역과 개별 국가에 따라 실천 방식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무슬림(Muslim·이슬람 신자)이라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의무다. 라마단은 해가 바뀌면서 조금씩 빨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이슬람 달력이 태양이 아닌 달이 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달의 공전주기인 354일을 1년으로 정한 까닭에 매년 11일가량 금식 기간이 달라진다. 실제 지난해에는 5월 27일 금식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반면 올해는 5월 16일부터 라마단의 닻이 올라갔다. 6월 14일 막을 내리는 2018년 라마단은 어느새 반환점을 돌고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고급 쇼핑몰 내 라마단 프로모션 광고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고급 쇼핑몰 내 라마단 프로모션 광고

여느 이슬람권과 매한가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는 동남아에서도 라마단의 의미는 각별하다. 현재 동남아에는 무슬림이 대략 2억5000만명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는 동남아 전체 인구 6억5000만여 명 중 40%에 육박하는 수치다. 무슬림 인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 중에서 해양부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집중돼 있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 중 약 85%인 2억2000만명이, 말레이시아는 국민 중 60%가량인 1800만명이 무슬림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말레이시아처럼 이슬람교가 국교인 브루나이는 물론 말레이어가 4개 공용어 중 하나인 도시 국가 싱가포르에서도 무슬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슬림 5대 계율 중 하나인 라마단이 선포되면 이슬람 신자들은 한 달간 '푸아사(Puasa·금식)'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원칙적으로 음식과 물을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병자, 임신부, 여행자 등을 제외하면 흡연, 성행위 등도 멀리한 채 매일같이 5번 기도를 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필자 또한 2014년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 반둥에 체류할 때 일몰 전과 일몰 후에만 식사를 하는 3일간 짧은 금식을 체험한 적이 있다. 해가 뜨기 전 보통 때보다 일찍 일어나 든든하게 배를 채운 덕분에 일과 중 허기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하지만 적도의 나라에서 물조차 마실 수 없었던 탓에 갈증을 참느라 혼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몰 후 부카 푸아사(Buka Puasa)를 즐기는 인도네시아 무슬림
▲ 일몰 후 부카 푸아사(Buka Puasa)를 즐기는 인도네시아 무슬림

라마단 기간의 반둥에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우선 금식이 진행되는 낮 시간에는 문을 연 식당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카페 등 비무슬림 현지인들이나 외국인들이 즐겨 방문하는 곳들은 계속 문을 열었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 커튼을 내리거나 조명을 어둡게 하고 조용하게 손님을 맞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일출 후에는 평소보다 질적·양적으로 푸짐한 먹거리들이 '부카 푸아사(Buka Puasa·금식을 깸)'를 손꼽아 기다려온 무슬림들을 유혹했다. 해질 무렵이 되면 오늘도 고생했다는 덕담이 오가는 가운데, 식당은 어느 새 북적이고 음식과 음료도 금세 동이 났다. 한편 아무래도 제때에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다 보니 라마단이 진행될수록 피곤하고 지친 기색 또한 역력해졌다. 업무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직원들이 나타나는 등 피로감이 쌓이면서 푸아사에서 낙오하는 사례들도 하나 둘 생겨났다.

1년 중 무슬림들에게 가장 신성한 기간으로 인식되는 라마단이지만 그 종교적 의미는 갈수록 약해진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이슬람 경전의 규율에 얽매이기보다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과 함께 즐기는 축제의 성격이 짙어진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라마단 대장정에 돌입한 5월 하순 자카르타에서는 예전과 같은 엄숙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부 주류 전문점 등을 제외하면 낮 시간에도 평상시와 마찬가지 모습으로 영업을 하는 상점들이 많았다. 시내 중심부에 사무실을 둔 한 한국 기업 사무소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식 기간이면 점심 시간에도 건물 엘리베이터가 한산했는데 올해는 그런 것 같지 않다"고 귀띔했다. 지방에 비해 아무래도 대도시 환경이 개방적임을 감안해도 4년 전 반둥에서 경험한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었다. 오히려 급증하는 부카 푸아사 만찬 및 쇼핑 지출 등 '라마단 특수'를 겨냥한 다양한 프로모션 행사들이 도심 쇼핑몰 곳곳에서 한창이었다. 요란한 폭죽 소리와 함께 밤새 이슬람 기도문이 흘러 나오면서 금식이 끝나고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 르바란(Lebaran)의 막이 오를 때까지 한 달. 라마단은 동남아 무슬림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방정환 아세안비즈니스센터 이사·'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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