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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제조번호 986-ZXFC001'이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날

  • 최용성
  • 입력 : 2018.06.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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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alk-112] 인공지능(AI) 로봇기자가 언론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를 놓고 얼마 전 동료 언론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모두 AI가 뭐고, 로봇기자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적어도 사람처럼 생긴 안드로이드가 로봇 팔을 움직여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는 거다. 다만 AI든 로봇기자든, 뉴스를 통해서 접한 정보의 편린들뿐이었다. AI에 어떤 기술이 적용되고,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로봇기자는 어떤 알고리듬으로 기사를 작성하는지 알지는 못했다(알고리듬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사전적 용어만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방화 사건이 일어났을 때, 혹은 기업 비위 사건을 접했을 때 어떻게 취재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고, 공정한 보도의 원칙을 스스로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데는 익숙했다. 하지만 그들은 엔지니어가 아니었으므로 기술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취재가 불가능하고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대부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며 웃다가 때론 분노하고 가끔씩 두려워했다.

매일경제 인공지능(AI) 로봇기자
▲ 매일경제 인공지능(AI) 로봇기자 '아이넷' 캐릭터

로봇기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동적으로 기사를 생성하는 알고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진, 증권, 날씨예보, 스포츠 경기 결과 등 비교적 정확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생성하는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로봇기자는 특히 개인화 뉴스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래 뉴스 이용 행태를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사람 기자들은 어떤 기사를 쓸 수 있을까. 가장 일반적인 답변은 진보의 관점에서 혹은 보수의 관점에서 작성된 기사일 것이다. 혹은 관점을 바꿔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수도 있다. 그 밖에 몇 가지 패턴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로봇기자는 대중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대하는, 바라는, 읽고 싶어하는 기사를 모두 생성해 낼 수 있다. 단 몇 초 만에 수백 개의 기사도 가능하다. 이게 바람직한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어떤 사안을 공론화하고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역할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동안 다양한 여론을 일방적으로 균질화해 보도한 기존 언론의 관행은 또 바람직했나 마찬가지로 생각해 봐야 한다.

누군가 말했다. 로봇기자가 쓴 기사가 오보라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로봇기자를 채용(?)한 언론사가 책임을 져야 할까. 아니면 그 알고리듬을 개발한 개발자가 책임을 져야 할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보도자료를 처리하는 단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사람 기자는 앞으로 쓰일 일이 없을 것이라는 데 다들 공감하며 한숨과 헛웃음이 뒤섞인 애매한 소리를 쏟아냈다. 뭐 어차피 그런 일 따위는 진작에 하고 싶지 않았다는 자조와 함께 앞으로는 통찰력 있는 칼럼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비장함이 나왔다.

누군가 칼럼 같은 것은 기계가 할 수 없겠지, 라며 동의를 구했고 다들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 인간만의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척척 생산되는 기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특정한 현상 혹은 사건에 대해 날카롭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일은 기계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루한 위원회의 공식 보고서에서나 나오는 상투적 문장들이 아니라, 미려하고 기분 좋은 문장으로 작성된 칼럼은 아무래도 사람이 더 잘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막연한 희망, 우쭐함 같은 게 생겨났다.

IBM 토론 로봇
▲ IBM 토론 로봇 '프로젝트 디베이터'(왼쪽)가 인간 토론자와 토론 대결을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IBM

며칠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IBM 사옥에서 사람과 AI가 토론 대결을 벌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람 대표로 이스라엘의 남녀 토론 챔피언 두 사람이 참가했고, AI 쪽에서는 IBM이 6년간 개발한 '프로젝트 디베이터'라는 알고리듬이 등장했다. 토론은 4분간 제안 설명-4분간 반박-2분간 요약 결론을 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주제는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야 하는가, 원격의료를 확대해야 하는가 등 2개로 사전에 제공되지 않았다. AI가 찬성 토론을, 사람은 반대 토론을 했다고 한다. 'IBM의 쇼'라는 비난도 있지만 청중은 사람과 기계의 논쟁을 흥미롭게 지켜봤고, 일단 사람 손을 들어줬다. 의견 전달 방식이나 표현력 등에서 기계가 사람을 따라오려면 멀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토론이라는 인간 고유의 지적인 활동은 아직 기계가 넘볼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인데, 어쩐지 불편했다. 기계는 서툰 표현에다 엉뚱한 말을 하기도 했지만 더 풍성한 근거와 사례를 제시했고, 기발한 농담으로 청중들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는 사람의 창의적 능력과 감성마저도 기계가 흉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사람 기자만이 써낼 수 있을 거라는 그 '특별한 칼럼'이 생각났다. 과연 그렇게 될까. 미처 생각지 못한 팩트(fact)를 기반으로 논리적으로 접근하면서 간간이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주고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문장으로 무장 해제시키는 알고리듬 칼럼이 나올 날이 그리 머지않은 것 같다. 제조번호 986-ZXFC001의 퓰리처상 수상 소식을 제조번호 t68257043-02가 1보로 전하는 그날 말이다.

[최용성 매경닷컴 DM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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