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스페셜리포트

동남아시아서 韓日 축구 평가전이 열린다면

  • 방정환
  • 입력 : 2018.06.29 15:0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6] 2018 러시아월드컵이 한창이다. 본선에 진출한 32개 나라의 치열한 조별리그 순위 싸움이 마무리되고 30일(현지시간)부터는 토너먼트의 막이 오른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세계 1위 독일을 물리치는 이변에도 1승 2패 성적으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실패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호주 또한 안타깝게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신 가운데 아시아 대륙에서는 일본만 유일하게 16강행에 성공했다. 중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이번 월드컵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동북아시아를 상징하는 한국과 일본이 동남아시아 국가의 수도에서 국가대표팀 간 공식 평가전을 치르면 어떨까?'

한국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동남아 경기장에서 맞붙는 장면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실제 그동안 두 나라 국가대표팀 간 A매치는 대부분 한국 아니면 일본에서 진행됐다. 물론 동남아에서 개최된 경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은 2007년 7월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4개국에서 공동 개최된 아시안축구연맹(AFC) 아시안 컵 3·4위 결정전에서 격돌한 바 있다. 그리고 오는 8~9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2018 하계 아시안 게임에서 두 나라가 다시 일전을 벌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국제 대회에서의 만남이 아닌 두 나라 간 평가전이 여태껏 타국에서 개최된 전례는 없다. 그럼에도 동남아에서 한일 국가대표팀이 경쟁하는 그림을 그려보는 이유는 동남아의 축구 열기가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시아 축구를 이끌어 온 한국과 일본 국가대표팀과 스타급 선수들에 대한 관심 역시 뜨겁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의 공터에서 축구 삼매경에 빠진 어린 학생들.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의 공터에서 축구 삼매경에 빠진 어린 학생들.

동남아의 축구 사랑을 처음 목격한 것은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 반둥에 체류하던 2013년 12월 무렵이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동남아에서는 2년에 한 번씩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Southeast Asian Games)'가 개최된다. 동남아를 구성하는 11개 나라가 모여 수영, 사격, 농구 등 30여 개 종목에서 열전을 펼치는 종합 스포츠 대회다. 동남아판 하계 아시안 게임에 비유되는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축구는 최고 인기 종목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미얀마에서 열렸던 2013년 제27회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준결승전에서 말레이시아와 맞붙었다. 동남아 해양부에 위치한 전통의 라이벌과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앞두고 인도네시아 전역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진일퇴 공방 끝에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를 한 골 차로 꺾고 결승 진출을 확정한 순간 사무실은 환호성으로 휩싸였다. 축제나 다름 없는 분위기 속에 필자 역시 옆자리 직원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느라 분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기(國技)인 배드민턴과 함께 축구가 인도네시아 국민이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임을 체험한 뒤 새삼 주변을 둘러봤다. 조그만 공간이라도 발견되면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을 차는 아이들, 주말이면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실내 풋살 경기장 등의 광경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반둥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프로축구 경기를 관람하면서 현지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선수의 존재도 접하게 됐다. 이웃 국가들의 축구 열풍 또한 인도네시아 못지않았다. 동남아 국가들 간 축구 경기 결과는 어김없이 신문에 대서특필됐고, 열성 팬들 중에는 유럽 프로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주말 밤을 새우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이와 함께 싱가포르에서는 한국인 감독이, 태국에서는 한국인 선수들이 프로축구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2018 하계 아시안 게임 축구 경기가 열리는 자카르타 중심부의 글로라 붕카르노(Gelora Bung Karno) 주경기장 주변.
▲ 2018 하계 아시안 게임 축구 경기가 열리는 자카르타 중심부의 글로라 붕카르노(Gelora Bung Karno) 주경기장 주변.

세계적 강호들이 부럽지 않은 축구팬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국가들의 성적은 신통치 않은 듯하다. 아직 동남아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한 차례도 배출되지 못한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일까. 월드컵 단골 손님인 같은 아시아 대륙의 강자들을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눈길에는 부러움이 가득하다. 특히 경제적, 문화적 측면 등에서 긍정적 이미지가 형성된 한국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을 언급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한다. "영국에서 뛰었던 박지성 선수나 한국 국가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 선수를 꼭 만나보고 싶다"며 팬심을 자처하는 지인도 여럿 있다. 여기에 올해 초에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사상 최초로 베트남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축구 한류'에 방점을 찍었다. 동남아 대표 도시에 마련된 한국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평가전을 관람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현지인 팬을 떠올려 보는 유쾌한 상상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이유다.

[방정환 아세안비즈니스센터 이사 / '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