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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맥스의 도전, '블루 스크린' 트라우마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최용성
  • 입력 : 2018.07.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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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alk-113] 지난 3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오디토리움. 박대연 티맥스소프트 회장(62) 모습이 보였다. 이날은 토종 컴퓨터 운영체제(OS) '티맥스OS' 상용 버전 발표일. 담담한 표정의 박 회장과 달리 함께 참석한 티맥스 임직원들은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 모두 2년 전 일어났던 '그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2016년 4월 20일, 티맥스소프트는 9년간 공들여 준비한 국산 OS '티맥스OS'를 발표했다. 시험 버전이긴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식하고 있는 국내 OS 시장에 정면으로 던진 도전장이었다. 한국도 독자적인 OS를 가져야 한다는 박 회장 지론이 마침내 빛을 보는 자리. '계란으로 바위 치기' '무모한 도전'이라는 비난에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사이 회사가 어려워져 워크아웃에 들어가기도 했다. 1800여 명에 이르던 직원을 500명으로 줄이는 혹독한 구조조정도 겪었다. 그런 아픔을 견디며 만든 작품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다. 오류를 잡아내기 위해 수십 명의 직원들이 4개월여 동안 밤낮으로 테스트를 거듭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고 공개할 만하다고 판단해 들고나왔다. 하지만 신은 무자비했다. 바로 전날까지 잘만 돌아가던 OS가 하필이면 공개 당일 다운되고 말았다. 당황한 티맥스 임직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고, 지켜보는 이들은 민망해하며 "역시 국산 OS는 안되는구나"라고 한마디씩 했다.

박 회장은 2년 전 '그 일'을 어떻게 저장해 놓고 있을까. 그날 행사장에는 커다란 시연 화면이 설치돼 있었다. 화면에서 둔탁하게 움직이던 창들은 몇 분 만에 작동을 멈추었고 시스템은 곧 다운되고 말았다. 몇 번 재부팅을 시도하며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소용 없었다. 티맥스 임직원들은 차가운 '블루 스크린'을 지켜봐야 했다. 커서 움직임에 따라 창이 뜨거나 접히고 프로그램이 구동되는 모습이 아니라 치명적 오류가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그 푸른색 화면 말이다. '창업자의 쓸데없는 고집으로 직원들만 힘들다'는 불만이 여기 저기서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냥 잘하고 있는 분야나 열심히 하면 될 일이지 뭐하러 MS와 같은 공룡을 상대하려 드냐고 생각한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용 버전 개발을 더욱 독려했다. 대학(KAIST) 교수를 그만두고 소프트웨어(SW) 회사를 만들 때와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라클, IBM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기업용 SW,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시장에 진출할 때도 사람들은 같은 말을 했다. 이미 외국 거대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뭐하러 뛰어드냐며 말렸다. SW는 의지나 자신감만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고들 했다. 박 회장은 자기의 길을 갔고, 주위 우려와 조롱에도 티맥스를 국내 미들웨어, DBMS 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을 달성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최근 공개된
▲ 최근 공개된 '티맥스OS' 바탕화면에 여러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티맥스

국내 기업용 SW 시장에서 티맥스가 거둔 성과는 한 개인의 뚝심, 아집만으로 이뤄낸 게 아니다. 그런 의지와 함께 탄탄한 기술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엉망이 된 시험 버전 공개 2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상용 버전 밑바탕에도 티맥스의 이런 경험과 기술력이 배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개된 상용 버전은 별 탈(?) 없이 제 실력을 보여줬다. 워드, 엑셀 등 사무용 오피스 프로그램과 웹브라우저를 기본 탑재하고 있으며 MS 윈도 기반 프로그램 호환성도 뛰어나다고 티맥스 관계자는 밝혔다. 또 국산 PC용 OS로는 처음으로 GS(굿소프트웨어) 인증 1등급을 획득해 가벼우면서도 강력한 성능, 강화된 보안을 제공한다고 했다. 티맥스 관계자는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MS 윈도를 대체할 국산 PC용 OS로는 최초로 GS인증 1등급을 받은 것이라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티맥스가 앞으로 공략할 타킷은 정부와 공공기관이다. 저렴한 가격에다 국가인증 기술력을 무기로 공공기관 업무용 PC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중장기적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전략이다. 박학래 티맥스오에스 대표는 "국내 유일한 OS 개발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것"이라며 "운영체제 시장 독점을 깨고 국내 시장과 더불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이희상 티맥스데이터 대표, 박학래 티맥스오에스 대표, 존 윤 티맥스소프트 글로벌 CTO(왼쪽부터) 등이
▲ 지난 3일 이희상 티맥스데이터 대표, 박학래 티맥스오에스 대표, 존 윤 티맥스소프트 글로벌 CTO(왼쪽부터) 등이 '티맥스OS'를 발표하고 있다. 박대연 티맥스소프트 회장은 이날 연단에 오르지 않았다. /사진제공=티맥스

박 회장은 국산 OS 개발을 공언한지 11년 만에 첫 성과물을 내보였다. 이번 발표 때 그는 연단에 오르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조용히 시연 행사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를 대신해 존 윤 티맥스소프트 글로벌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티맥스OS의 밝은 미래를 얘기했다. 그는 "혁신적 SW 기술을 토대로 티맥스가 꿈만 같은 1인당 GDP 8만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그 미래가 이런 장밋빛이 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른다. 티맥스의 블루 스크린을 기억하는 누군가는 "IT업계 돈키호테"라고 또다시 평가절하할 것이다. 이미 티맥스는 티맥스윈도라는 흑역사를 갖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 SW 경쟁력을 후퇴시킨 대표 사례로 티맥스윈도를 들 정도로 혹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티맥스소프트가 처음 생겼을 때 이 회사가 나중에 오라클, IBM 등과 겨룰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견한 이도 거의 없었다. 지레 겁부터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 기대어 뭔가를 이룰 시대는 이제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 조달시장에 의존해서 될 일이 아니다. 'MS의 독식'을 지적할 순 있지만 그러니 우리 것을 더 애용해 달라는 호소는 통하지 않는다. 더 이상 '국뽕'은 없다. 2년 전 블루 스크린보다 더 냉정한 '시장의 판단'만이 티맥스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최용성 매경닷컴 DM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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