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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런버그 보잉 사장의 기술지상주의, 美中 무역전쟁서 '진퇴양난'

  • 장박원
  • 입력 : 2018.09.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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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런버그 보잉 사장 /사진=매경DB
▲ 뮬런버그 보잉 사장 /사진=매경DB
[글로벌 CEO열전-75]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래서 수출로 먹고사는 다국적 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많은 항공기를 판매하는 보잉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공에 맞서 강력한 대응책을 내놓으면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을 대표하는 항공기 업체가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할 수도 없으니 보잉 사령탑인 뮬런버그 사장은 요즘 진퇴양난에 빠졌다.

다행히 아직 대형 항공기는 보복관세 명목에 빠져 있다. 중국 항공기 시장 전망도 좋은 편이다. 외신에 따르면 보잉은 중국 항공사들이 20년간 1조2000억달러어치의 항공기를 주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새 비행기 대수로 따지면 7690대에 이른다. 1년 전에 비해 6% 이상 높여 잡은 수치다. 근거는 명확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중국의 경제성장이 빠른 데다 여행을 많이 하는 중산층이 증가하며 항공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밉지만 중국 항공사들이 보잉 비행기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보잉의 기술력과 안전성에 있다. 뮬런버그 사장이 믿는 구석도 그것이다. 그는 항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항공기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첨단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근 그가 결정한 사업 내용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차세대 무인 항공기 기술 개발을 위해 산학연 협력 시스템에 기반한 엔지니어링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산학연 협력 센터인 '항공우주자율화센터'와 입주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개관하는 이 센터의 일부 공간을 임차해 신기술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보잉은 지난해 자율비행 무인 항공기 개발 업체 '오로라 플라이트 사이언스'를 사들였는데 이 회사도 센터에 합류할 예정이다. 뮬런버그 사장은 경영진을 통해 센터 입주 의미를 이렇게 전했다. "전 세계 엔지니어, 연구 파트너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혁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차원이다."

무인 항공기 기술과 더불어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기술에는 마하 5의 극초음속 여객기도 있다. 그는 지난 6월 개발 청사진을 밝히며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2023년 시험비행을 목표로 개발 중인 이 여객기는 대서양을 2시간, 태평양을 3시간에 횡단할 수 있는 속도를 자랑한다. 장거리 노선에서 마하 5 이상의 속도가 필요한지 검토하고 있다." 이 여객기가 상용화하면 서울에서 로스앤젤레스(LA)까지 5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무인 항공기와 초고속 여객기는 보잉의 미래를 위해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술지상주의는 단순히 기술에만 매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파괴력을 갖는다. 그는 1985년 인턴 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연구개발(R&D)뿐만 아니라 영업과 마케팅 부서에서도 일했다. 그러면서 전략과 리더십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13년 상용 항공기 사업부 대표로 발탁됐다. 이 자리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으며 2년 후 보잉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인턴에서 최고 자리에 오르며 '샐러리맨 신화'를 쓴 것이다.

그의 전략적 사고 방식은 사령탑에 오른 이후에도 계속됐다. '하나의 보잉'을 강조하며 경기에 민감한 사업 부서를 정리하고 경쟁 우위에 있는 분야를 강화하면서 쉽지 않은 비즈니스 환경을 헤쳐나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영국 텔레그래프와 인터뷰하며 이런 말을 했는데 그의 경영철학과 저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골프 코스에서 거리를 재는 것과 같이 정확하게 미래를 보는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배경과 생각,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한 팀을 이루는 것을 적극 찬성한다. 더 좋은 의사 결정과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논의돼야 한다."

그는 현재 2001년 9·11 테러 이후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확전되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은 보잉 전체 판매의 2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그것만이 아니다. 항공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해야 한다. 이 부품들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아직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지 않아 피해는 없지만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 양방향으로 이뤄지고 있어 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보잉은 올해 안에 상하이 인근에 항공기 조립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한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다. 그가 불쾌하게 생각하면 회사에도 좋을 게 없다. 뮬런버그 사장은 어떤 전략으로 진퇴양난의 상황을 돌파할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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