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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펩시코 이끈 인드라 누이 전 회장의 위대한 유산

  • 장박원
  • 입력 : 2018.10.0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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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 누이 펩시코 CEO
▲ 인드라 누이 펩시코 CEO
[글로벌 CEO열전-77] 지난 2일 미국 CNBC는 한 여성 기업인을 집중 조명했다. 단순히 뛰어난 실적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경영자의 귀감이 될 만한 지혜와 통찰력에 주목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12년간 펩시코를 경영하며 연평균 매출을 5% 이상 성장시킨 인드라 누이 전 회장이다. CNBC는 그의 성공 비결로 5가지 생활습관을 꼽았다. 대통령처럼 행동하기, 남과 다른 틈새 기술 개발, 소비자 입장에서 보기, 감사하는 마음, 굳건함이 그것이다. 이는 최고경영자(CEO)로서 높은 책임감을 보이며 혁신성장과 위기 극복을 주도하는 밑거름이 됐고, 펩시코의 실적으로 이어졌다.

누이 전 회장이 펩시코 CEO 자리에 오른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인도 출신 여성이 코카콜라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탄산음료 기업의 수장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첸나이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물리·화학·수학을 공부했다. 여기서 멈췄으면 엔지니어의 삶으로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첫 사회생활도 존슨앤드존스 생산담당 매니저로 시작했으니 십중팔구 그랬을 것이다. 기술자로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미국 유학이라는 큰 결정을 내렸다. 명문 예일대 경영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던 것이다. 인도에서도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더 큰 곳으로 나가려면 미국 대학의 경영학 석사 학위가 필요했다. 예일대 졸업 후 그는 보스턴컨설팅에 입사했고 다시 모토로라와 ABB로 자리를 옮겨 기업 전략을 맡았다.

그러다가 1994년 펩시코에 합류하며 식음료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생산과 기획, 마케팅에서 경험을 쌓았던 누이 전 회장은 펩시코의 미래를 좌우하는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특히 사업 다각화와 인수·합병(M&A)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펩시코 입사 4년째인 1998년에는 과일주스 메이커인 트로피카나를 매수하는 데 능력을 보이며 확실한 입지를 굳혔다. 그를 펩시코의 핵심 인재로 각인시킨 계기가 된 것은 2001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으면서 성공한 퀘이커오츠 인수였다. 퀘이커오츠는 게토레이를 생산하는 회사다. 펩시코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들의 인수에 힘입어 한때 코카콜라 실적을 뛰어넘는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누이 전 회장의 성공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를 탁월한 경영자로 만든 비결은 소비자 눈높이와 요구에 맞춰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한 혜안에 있다. 그는 펩시 제품을 3개 유형으로 분류했다. 우선 포테이토 칩과 탄산수 같이 맛에 중점을 둔 상품이다. 이 유형을 일컬어 즐거움을 제공하는 제품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오트밀을 비롯한 건강식품이다. 펩시의 주요 시장에 속한 국가들의 고령화에 맞춰 건강식품을 강화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건강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분야라 건강식품을 카테고리로 설정한 것은 적절했다. 나머지 한 그룹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더 좋은 제품'이라고 명명했다. 다이어트는 건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건강식품 시장이 커지는 것과 같이 간다.

누이 전 회장은 시장 변화에 따라 건강과 다이어트 제품 비중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새로 형성되는 분야에 진출하다 보니 초기에는 고전했다. 행동주의 투자펀드인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의 견제를 받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펀드의 넬슨 펠츠 회장은 펩시 지분을 대량으로 매입한 뒤 사업부 분활을 요구하는 등 경영에 간섭했다. 그러나 누이 전 회장은 기존 전략을 밀고 나갔다. 소비 동향에 따라 사업과 제품을 다각화하는 동시에 각 분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고수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옳았고, 펠츠 회장도 누이 전 회장 덕에 큰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탄산음료 수요가 줄면서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던 펩시코를 굳건한 기업으로 키우면서 누이 전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경영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 내용이 있다. 지난해 12월 포천 기자와 만나서 한 말이다. "시장이 요동칠 때는 기존 제품과 서비스가 파괴되는 분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뜨거운 음료 시장을 예로 들어 보자. 커피와 차 시장은 변화가 없다. 하지만 여러 지역과 문화를 살펴보면 커피와 차 말고도 다양한 음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포인트다. 커피와 차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존재한다는 건 파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누이 전 회장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경영자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충고를 많이 남겼다. "규칙을 깰수록 우리는 더 나아진다. 리더의 과제는 구석까지 돌아보며 늦기 전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혁신도 만들 수 없다."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던 8월 외신은 포천 500대 기업 중에 매우 드문 유색인종 출신 여성 CEO 한 명이 사라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펩시코 입장에서는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누이 전 회장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계승·발전시키는 일이 더 시급하다. 후임자 고민이 작지 않을 것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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