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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안자르의 고민, 중계 무역의 메카에서 난민촌으로

  • 백승진
  • 입력 : 2018.11.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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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에겐 일종의 대중가요 가사만큼이나 가깝다. 하지만 이 친숙한 문구는 세상을 바꿀 만큼의 폭발적인 힘을 갖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 사태는 "이게 나라냐"는 국민적 공분을 샀고 결국 촛불의 힘으로 정의를 이룬 우리 모두의 위대한 외침으로 기억되는 '2017년 촛불혁명'을 탄생시켰다. 이는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항쟁에 이은 세 번째 한국판 시민혁명(市民革命)이자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에 대한 깊은 울림을 던진다. "국가란 무엇인가?"

위 질문에 섣불리 도전하기보단 선배 학자들께서 오랜 기간 축적하신 지식의 향연(饗宴)에서 그 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필자는 공화국의 가치를 주장한 마키아벨리, 불평등의 기원을 설명한 장 자크 루소, 변혁적인 아이디어를 지녔던 벤자민 프랭클린 등 세 명의 정치철학자로부터 혜안을 빌리며 [백승진의 아유레디 대한민국] 칼럼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백승진의 아유레디 대한민국-1] 며칠 전 레바논에서 시리아 난민 사역(使役)을 오랜 기간 해오신 선교사님과 커피 한잔하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분은 지난 20년 가까이 요르단과 레바논을 거치면서 난민을 위해 큰 역할을 해오신 분이시고, 현재는 레바논의 시리아 국경 지역에서 난민 캠프를 운영하고 계신다. 이 자리는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 문제에 대한 선교사님의 고견을 듣고 유엔 차원의 전망 등에 관해 필자의 짧은 지식을 나누는 사적인 자리였다. 대화 중 레바논 동쪽에 위치한 소도시 안자르(Anjar)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무언가가 내 머리에 경종을 울림을 느꼈다.

이 도시는 예로부터 다마스쿠스(시리아 수도)와 베이루트(레바논 수도)를 잇는 중계지로소 번영을 누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우마이야 왕조 시대(660~750년)에는 우아한 아케이드 모양을 형성하는 6000개 이상의 상점이 있었을 정도로 경제적 무역과 건축적 아름다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던 도시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특히 우마이야 왕조의 도시계획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소위 '고대 궁전 도시'로 불리는 유적은 동서와 남북의 길이가 약 350m 정도 사각형 모양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벽 여러 곳에 비잔틴 양식의 조각과 무늬, 그리고 이슬람 건축양식이 함께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1984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근처에는 로마 시대 성이 즐비해 레바논 교민에겐 꼭 가봐야 할 필수 유적지로 꼽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레바논 안자르 고대 궁전 도시 /사진=http://youvictours.com/lebanon/anjar/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레바논 안자르 고대 궁전 도시 /사진=http://youvictours.com/lebanon/anjar/

오늘날 안자르의 인구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이주시킨 아르메니아 이민자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이주 당시 수많은 피란민들은 우마이야 왕조가 남긴 역사적 우아함은커녕 황량한 사막과도 같은 황폐해진 유적지에서 새 터전을 잡아야 했다. 이들 대다수가 텐트 안에서 살아야 했고 질병과 굶주림으로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렇듯 아르메니아 이민 1세대들은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빈곤을 넘어 생존과 싸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피와 땀을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밀려든 시리아 난민들과 나눠야 했다. 즉, 안자르는 '시리아·레바논 간 무역 중계지'로 불렸던 과거의 위상이 '시리아·레바논 간 난민 캠프'로의 추락을 감내해야만 했고, 과거의 영예를 되찾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난민을 바라보는 아르메니아 이민자들의 생각이다. 물론 이민자들 모두가 동일한 시선을 갖고 있다고 생각진 않는다. 어느 사회건 다양성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불평은커녕 서로 도와야 하는 주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조상이 다름에도 피란민의 아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잘 알기에, 시리아 난민을 자신들의 공동체의식하에 품어내고 있다. 일부는 "서로 돕기도 바쁜데, 그들의 처지를 비관해 불평하고 싸울 시간이 아깝다"고 말한다.

필자의 부서엔 여러 시리아 전문가들이 있고, 시리아 전 교통부 장관도 팀원으로 함께 근무하고 있다. 또한 부서 내 시리아 재건(再建)사업팀(National Agenda for the Future of Syria)이 운영되고 있는데, 다양한 소식통에 의하면 시리아 내 정치적 변화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른 재건 활동 역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레바논의 베이루트국제공항에 가보면 시리아 난민들의 귀향길이 이미 시작됐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지난 수년간 숨겨왔던 국민계정 등 여러 거시경제 지표들을 올해부터 공시(公示)하기 시작했다.

물론 각종 정치적·사회적·지형학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리아 내전 상황이기에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예측할 순 없지만, 언젠간 시리아 전쟁은 반드시 종결될 것이고, 중동의 정치적 안정화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그날이 오면 대한민국 여권법 17조에 얽매이지 않고 많은 한국인들이 시리아에 여행 혹은 사업차 방문할 것임엔 불 보듯 뻔하다. 그럴 가능성을 이미 염두에 둔 것일까? 러시아는 그렇다 쳐도, 시리아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중국 기업의 물밑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기 시작했다. 한편 우리의 대표 글로벌 기업들은 정부의 대시리아 외교정책에 눈치만 보는 형편이다.

얼마 전 출간된 버클리대 대커 켈트너 교수의 저서 '선한 권력의 탄생'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외교정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철학사상은 단연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라고 한다. 국가 이익을 위해 수단(手段)의 도덕적 선악(善惡)에 관계없이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고려한다는 것인데, 우리 블루하우스도 대시리아 외교에 대해 한번쯤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필자의 제언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임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북한의 시장화와 개혁개방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하듯, 그리고 몇 년 전 "모든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던 세계 3대 투자가인 짐 로저스 회장의 혜안을 빌려보면 시리아는 백지까진 아니더라도 무언가 선명히 그릴 정도는 되는 캔버스는 되지 않을까? 우리에겐 '한류'라는 매력적인 문화 브랜드가 있고 'KSP'라는 강력한 경제개발협력 브랜드도 있다. 더욱이 우리에겐 난민 사역을 위해 당신의 인생을 바쳐온 한인 선교사의 피와 땀이 있기에 대한민국 지도자의 '사색(思索)의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더 주목하는 것은, 머지않아 보게 될 아르메니아 이민 공동체가 시리아 난민들과 웃으며 작별하는 그 경의로운 장면이다. 이는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과 도전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우리의 민족사, 6·25전쟁 당시 우리 부모가 겪었던 피란의 처절함, 타국의 전쟁임에도 참전했던 전 세계 16개국과 의료 지원을 했던 5개국의 1만1000여 명의 전사자들, 그리고 최근 제주도에 몰린 500여 명의 예멘 난민 사태를 경험한 우리 대한민국에게 또 다른 그 어떠한 함의(含意)를 주고 있지 않을까? <본 칼럼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소속 기관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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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진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정치경제학자]

백승진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소속 정치경제학자이자 현재 서아시아 대륙 본부인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ESCWA)에 경제정책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아프리카 본부인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ECA)와 중남미 본부인 유엔 중남미경제위원회(ECLAC)를 거치면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연계한 정치·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저서로는 '신근대화 정치경제론(The Political Economy of Neo-modernisation)'과 '아유레디'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며 국제사회의 지속가능발전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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