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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무비자'… 한국은 왜 베트남 '체면'을 높였나

  • 하노이 드리머
  • 입력 : 2018.12.0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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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짜오 베트남-15] 한두 달쯤 전에 들은 얘기입니다.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었어요. 베트남에도 베트남을 대표하는 여러 대기업들이 있습니다. 한화그룹이 지분 투자를 감행한 빈그룹도 있고, SK그룹이 지분을 매입한 마산그룹도 있지요. 이외에도 수많은 대기업들이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글로벌로 뻗어가려고 애쓰고 있는 기업들도 많아요.

정확한 기업 이름을 밝히긴 어렵지만, 베트남 대기업 중 한 곳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베트남 대기업의 IR담당 임원이 한국 출장길을 잡았어요. 한국의 한 증권사와 손잡고 기업설명회를 열기 위해서였지요. 일정이 확정되고 공고까지 나간 상황이었습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할 여건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 행사는 끝내 열리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도대체 어떤 돌발 변수가 행사를 취소시킨 것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비자 문제였습니다. 출장 가기로 결정났던 IR담당 임원이 비자에 걸려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됐어요. 정확한 속사정까지는 자세하게 전해듣지 못했지만, 조금 촉박하게 비자 신청을 한 모양이에요. 최소한 2주 전에는 신청을 했어야 하는데 시일을 약간 넘겨 신청서가 접수된 모양이었습니다. IR행사를 열기로 한 한국의 증권사에서도 몸이 달아 대사관 등을 통해 백방으로 뛰어보았지만, 현 시스템상 뾰족한 방법이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허무하게 행사는 일정을 코앞에 두고 급작스레 취소됐습니다.

그걸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트남 사람이 한국 가기가 힘들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베트남 대기업 IR담당 임원이면 한국과 협력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많지요. 한국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쓸모가 많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비자를 늦게 신청한 과실이 있겠지만 예정된 행사를 취소해야 할 만큼 한국의 비자 정책이 엄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베트남에 15일까지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거든요. 다녀온 지 한 달 안에 다시 베트남을 방문해야 하면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사실 이것도 돈만 내면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어요. 여기서 한 가지 경험담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몇 달 전 지인 2명이 하노이에 오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그중 한 명이 최근 한 달 내에 호찌민에 다녀온 거였어요. 한 달 안에 베트남에 다녀온 기록이 있으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공항에 도착해서야 깨달았습니다. 부랴부랴 비자 대행업체를 통해 당일 관광비자를 받아낼 수 있는지 타진했어요. 결론적으로 예상치 못한 큰돈이 들긴 했지만 잡아놓은 비행기를 타는 데는 아슬아슬하게 성공했습니다. 그만큼 베트남이란 나라가 한국인 입장에서는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란 얘기입니다. 반대로 한국이란 나라는 베트남 입장에서 웬만하면 가기 힘든 나라이고요. 따지고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이 미국 갈 때를 생각하면 편하겠습니다. 이제는 ESTA란 제도로 간단한 미국 여행은 쉽게 갈 수 있지만 어디 예전에는 그랬나요. 한국의 국력이 높아지면서 한국 여권은 전 세계 여권 중 무비자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 숫자 기준으로 선두를 다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글로벌에서 가장 먹어주는 여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채 3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베트남은 해외 여행 한번 떠나기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한류(韓流) 열풍 덕분에 한국은 베트남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나라 중 하나로 떠올랐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돈을 모아도 한국은 여전히 가기 힘든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베트남 전역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한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베트남 대도시인 하노이, 호찌민, 다낭에 사는 사람들은 사실상 한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 것이에요. 잠시 이 제도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한국 정부는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라오스,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 베트남, 인도, 방글라데시 등 11개국의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업인, 국내 4년제 대학 학사 이상 학위소지자 또는 해외 국가 석사학위 소지자에게는 유효기간 10년의 단기방문 비자를 발급하기로 했어요. 적어도 불법체류를 할 가능성이 희박한 고소득, 전문직 직업군을 상대로 한국을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에요. 한마디로 신남방국가와 한국의 관계를 좀 더 끈끈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베트남을 놓고서는 플러스 알파 혜택이 추가가 되었습니다. 하노이, 호찌민, 다낭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베트남 국민이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에는 5년 복수비자를 발급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에요. 한번 비자를 받으면 5년간 추가 심사 없이 언제라도 한국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기에는 변호사, 교수 등 직업, 학력 관련 부대 요건이 대폭 완화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노이나 호찌민, 다낭에 거주지를 두고 있으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한국을 쉽게 오갈 수 있는 혜택을 준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비자 심사 역시 그렇게 까다롭게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해요. 범죄자이거나, 범죄가능성이 높거나, 주거가 불안하거나 하는 등의 무거운 결격 사유가 없으면 베트남 대도시 거주민은 간단한 심사를 통해 한 달간 한국에 와서 관광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입니다. 앞서 설명한 전문직, 교수 등을 상대로 10년간 복수비자를 주는 혜택은 여전히 베트남을 놓고도 적용되는 것이고요.

이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말, 베트남 언론과 SNS는 난리가 났습니다. 검색 순위 1위로 한국 비자 완화가 떠오르는 등 국가가 발칵 뒤집어졌어요. 이 프리티켓을 따내기 위해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가 전방위로 뛰었다는 것은 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실 주무부처인 한국 법무부는 당초 이번 조치에 대해 미온적이었던 게 사실이었어요. 불과 몇 달 전 법무부가 공식 루트를 통해 설명한 내용입니다.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무비자에 가깝도록 비자 정책을 완화하는 것은 추진하고 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실행되기 어렵다. 최근 몇 년 새 아세안 출신 불법체류자들이 너무 많이 늘어서 그것과 관련한 제도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갑자기 비자를 완화하는 게 말이 되느냐. 한국이 정책적으로 아세안 국가를 지원하려고 하는 건 맞는다. 그래서 비자 완화와 관련된 얘기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는 늘 나온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법무부는 관계 부처에 현실 가능성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다."

법무부가 이렇게 설명한 것이 지난 10월 초였습니다. 하지만 불과 두 달도 안돼서 정반대의 정책이 나온 것입니다. 특히 베트남을 놓고서는 무비자에 가까운 비자 정책으로 급선회한 셈이지요. 그렇다면 갑자기 정책 기조가 급격히 달라진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그리고 한국은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일단 문재인정부가 밀어붙이는 '신남방 정책'이 법무부의 거센 예봉을 꺾는 데 한몫했을 것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신남방 정책을 통해 시너지를 내려고 하는데 법무부가 무조건 반대하고 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특히 베트남을 놓고서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7000개가 넘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와는 좀 다르게 볼 필요성도 느꼈을 것입니다. 베트남이 한국의 '멀티 기지'로 보일 정도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거든요. 수차례 설명했지만 삼성전자가 만드는 스마트폰의 절반가량을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덕분에 베트남 전체 수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합니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베트남에는 무수히 많은 한국 기업 파트너가 있어요. 앞서 설명한 대로 베트남 기업인이 한국 비자 받기가 어려워서 쩔쩔 맨다면 그건 한국 입장에서도 마이너스겠지요.

그렇다면 이번 조치로 한국이 얻을 이익은 무엇일까요. 이를 논하기 전에 이번 조치를 바라보는 베트남 전반의 정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 대사를 포함한 베트남 거주 한인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베트남의 민심을 전해봅니다.

사실 특정 국가와의 비자 정책은 곧 신뢰를 의미합니다. 베트남은 이번 조치에 대해 적잖게 감동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아세안 국가에서 콕 집어 베트남만 놓고 비자를 대폭 완화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이걸 한국이 베트남에 보여주는 신뢰라고 받아들입니다. 한국이 이만큼 베트남을 대접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베트남과 한국은 모두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체면'을 중요시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국이 베트남의 체면을 살려준 셈입니다.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변수입니다. 대접받은 베트남은 어떤 형태로든 한국을 대접하려 할 것입니다. 한국 기업의 투자를 더 유치할 수도 있겠고, 비자를 더 완화할 수도 있겠고, 허가 심사를 덜 깐깐하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이에 상응하는 무언가는 내밀 것입니다. 비즈니스가 딱딱한 계약서 문구로 끝날 것이란건 하수의 생각입니다. 원칙만 지키면 허가가 나올 것이란 것도 착각입니다. 베트남 같은 신흥국에서는 그 이면에 흐르는 무언가가 사실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의 이번 비자 정책은 베트남 비즈니스 물결 심연의 어떤 물줄기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란 얘기입니다.

특히 한국은 막대한 ODA자금으로 무장한 일본에 비해 선제적으로 비자완화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사실 한국이 베트남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은 정부의 힘보다는 기업의 힘이었습니다. 대다수 투자가 삼성 효성 코오롱 SK 한화를 비롯한 민간기업에서 이뤄졌습니다. 일본의 연간 ODA 규모는 한국의 10배를 넘습니다. 사실 동남아 전역이 거의 일본의 영향권이고 그나마 베트남에서 한국이 기를 펴고 사는 정도인데, 일본의 추격이 베트남에서도 거센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민간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어시스트를 하나 해준 셈이지요.

또 베트남의 한국 투자도 향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한국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베트남 여행객이 급증하면 여기서도 무언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겠지요. 그러면 이걸 노린 베트남 자산가들이 한국 현지에 베팅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오가면 사업 기회는 나오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길을 확 열어젖힌 셈이니, 아마도 미래를 내다보는 베트남 기업인들은 이번 조치의 파장을 예측해 미리 사업을 해보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입니다. 때마침 최근 전해진 소식은 생각해볼 거리를 던지고 있습니다. 최근 부산에서 전해진 소식인데요, 관광비자로 국내에 들어온 베트남 국적 M씨 등 6명이 절도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뉴스입니다. 이들은 지난 11월 15일 부산진구 부전동 일대에 있는 안경점, 의류매장 등에서 3차례에 걸쳐 총 300만원 상당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 당연히 불법체류, 범죄 등 안 좋은 소식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겠지요. 베트남 사람들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닙니다. '대수의 법칙'에 의해 범죄율, 불법체류 비율은 정해져 있는데 '분모'가 늘어나면 '분자' 역시 따라서 올라가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이번 조치를 반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늘어난 베트남 관련 불상사를 들어 '이번 조치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번 조치가 한국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입니다. 사실 한국과 베트남은 경제 논리만 놓고 보면 일자리 공유 측면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많죠. 한국인이 하기는 돈도 적고 일도 힘들어 꺼리지만, 베트남의 물가를 고려하면 꽤 괜찮은 직업이 되는 '사각 지대' 영역이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못지않게 성실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인적교류가 노동시장을 직접 타깃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영향으로 노동시장 공유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각에서 베트남인이 한국인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프레임도 등장할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시작이니 어떤 파급 효과가 나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양국 간 관계가 좀 더 끈끈해진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부작용을 감수하고 강수를 빼어든 것입니다. 아무쪼록 부작용은 최소화되고 시너지는 많이 일어나는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노이 드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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