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의 샴페인 英왕실이 공인한 볼랭제

  • 나보영
  • 입력 : 2017.01.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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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랭저 샴페인 하우스 전경
▲ 볼랭저 샴페인 하우스 전경
[세계의 와인기행-20] 영화 007 시리즈에 나오면서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샴페인이 있다. 일명 '제임스 본드 샴페인'이라고 불리는 '볼랭제(Bollinger)'다. 1973년 '007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부터 2015년 '007 스펙터(SPECTRE)'까지 십수 편의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는 볼랭제 샴페인을 마셨다.

 그런데 샴페인 마니아에게 볼랭제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007에 앞서 '영국 왕실'이나 '가문 경영' 같은 이야기를 먼저 꺼낼 것이다. 1829년 설립된 볼랭제는 1884년 영국 왕실로부터 샴페인 하우스 최초로 왕실인증서(Royal Warrant)를 받아 130년 이상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많은 대형 샴페인 하우스들이 기업에 인수되는 가운데 가족 소유로 운영되는 3대 샴페인 하우스(볼랭제, 폴 로제, 루이 로드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이 지역에 자리한 볼랭저의 포도밭
▲ 아이 지역에 자리한 볼랭저의 포도밭
프랑스 파리에서 동쪽으로 약 140㎞ 떨어진 샹파뉴(Champagne)로 향하면서 볼랭제가 자리한 지역 아이(Ay)는 조금 생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샹파뉴 생산지라고 하면 보통 에페르네(Epernay)나 랭스(Reims)를 먼저 떠올린다. 약 1시간 반 뒤 볼랭제에 도착해 만난 투어 담당자 파스칼(Pascale)은 이런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는 중세시대에 샹파뉴의 심장부였습니다. 16세기에 앙리 4세의 명으로 이 지역에 포도를 압착하는 곳이 형성되면서 와인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죠. 아이가 샹파뉴의 중심이라는 증거는 주변 지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근의 '아브네(Avenay)'와 '에페르네(Epernay)'는 각각 '아이의 앞'과 '아이의 뒤'라는 뜻으로, 아이를 중심으로 명명됐습니다."

 지금도 아이 지역의 포도밭은 샹파뉴의 포도밭 등급 중 최고 등급인 그랑 크뤼(Grands Crus)에 속한다. "저희는 그랑 크뤼와 그다음 등급인 프르미에 크뤼(Premier Cru)의 밭에서 생산량의 70%를 직접 재배합니다. 대부분의 샴페인 하우스가 생산량의 20% 정도만을 직접 재배하는 것을 생각하면 남다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이 자부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지하저장고에서 수작업으로 침전물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볼랭저
▲ 지하저장고에서 수작업으로 침전물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볼랭저
메종(Maison, 샴페인을 만드는 포도원) 뒤에 자리한 오래된 밭에서는 샹파뉴 포도 품종의 원형을 볼 수 있었다. 19세기에 미국에서 건너온 필록세라(Phylloxera, 포도나무뿌리진디)가 많은 포도밭을 파괴했을 때, 포도 재배자들은 저항력을 지닌 미국산 포도 품종을 접목해야만 했다. 이곳의 포도나무들은 그런 손길이 닿지 않고 원형이 보존된 귀한 것들이다. 이 밭에서 볼랭제의 최고급 샴페인 '볼랭제 비에유 비뉴 프랑세즈(Bollinger Vieilles Vignes Francaises)'가 탄생한다.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 또 다른 밭에서 재배되는 포도와 함께 연간 5000병 내외의 소량만 생산된다고 파스칼은 설명했다.

 양조 시설로 이동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알코올 발효가 이뤄지는 오크통들이었다. 볼랭제는 샴페인을 오크통에서 발효시키는 마지막 샴페인 하우스다.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지만, 그 이상의 훌륭한 품질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샴페인 본연의 기질을 잃지 않도록 이전에 샴페인 양조에 사용됐던 100년 이상 된 오크통이나 부르고뉴 지역에서 샤르도네 품종을 양조할 때 사용됐던 오래된 오크통을 사용합니다"고 파스칼은 덧붙였다.

 발효가 끝나면 일정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미리 숙성해 놓은 리저브(Reserve) 와인과 혼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리저브 와인은 보통 숙성 탱크나 오크통에 저장해 두는데, 볼랭제에서는 매그넘(Magnum, 750㎖ 크기의 일반 와인 병보다 두 배 큰 와인 병)에 숙성시키고 있었다. 낮은 기압에서 섬세한 기포가 형성되면서 숙성이 효과적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볼랭저에서는 직접 오크통을 제작한다.
▲ 볼랭저에서는 직접 오크통을 제작한다.
이번 투어의 클라이맥스는 오크통 제작장이었다. 볼랭제는 샹파뉴 지역에서 유일하게 오크통 작업장을 지닌 샴페인 생산자다. 와이너리들은 대체로 오크통을 토넬르리(tonnellerie, 통 제조업자)에게 구입하기 때문에 그 현장을 보는 것은 결코 흔치 않은 기회였다. "한 사람의 장인이 혼자 3000개에 달하는 오크통을 만들고 관리합니다. 한 해 중 6개월 동안 오크통을 만든 뒤, 나머지 6개월 동안은 제작된 오크통을 꼼꼼히 관리·보수하면서 1년을 보내죠." 파스칼의 설명에서 다시 한 번 그들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볼랭제의 샴페인들을 시음했다. '볼랭제 스페셜 퀴베 브뤼(Bollinger Special Cuvee Brut)' '볼랭제 로제 브뤼(Bollinger Rose Brut)' '볼랭제 라 그랑 아네(Bollinger La Grande Annee)' 등을 마셨다. '라 그랑드 아네'(La Grande Annee)는 영어로 'The Great Year'라는 의미다. 작황이 좋은 해에만 만들어지는 샴페인이다. 프랑스에서는 연말연시에 좋은 해가 오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선물하거나 함께 마신다. 지금 같은 새해에 마시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샴페인이다. 여행과 와인 정보
프랑스 파리 동(Est) 역에서 샹파뉴의 에페르네 역까지는 기차로 약 1시간 걸린다. 에페르네 역에서 볼랭제까지는 약 4.5㎞ 떨어져 있으며, 차로 10여 분 걸린다. 볼랭제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www.champagne-bollinger.com)에 자세히 안내돼 있으며, 제품에 관한 내용은 수입업체 신동와인(www.shindongwine.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보영 여행작가
▲ 나보영 여행작가
[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200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주류저널(Liquor Journal)' 수석기자로 여행과 와인을 담당하며 5년 동안 일했다. 퇴사 후 전 세계 와이너리를 여행하며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는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
[나보영 여행작가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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