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스며든 영화의 세계

  • 홍성윤
  • 입력 : 2017.02.0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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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닮아가는 영화, 영화를 욕망하는 게임(하)
구글 안드로이드 OS의 Play 게임(왼쪽) 아이콘과 Play 무비 아이콘. 둘 모두 ▶ 도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 구글 안드로이드 OS의 Play 게임(왼쪽) 아이콘과 Play 무비 아이콘. 둘 모두 ▶ 도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쉽게 읽는 서브컬처-42] 플레이(play)라는 영어 단어에는 여러 뜻이 있다. 플레이는 게임의 정체성('놀이', '하다')과 영화('연극', '연기하다')의 정체성을 모두 아우르는 단어다. 별개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영화와 게임이 한 단어로 묶이듯이 그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뒤섞이기 시작했다.

 영화는 게임을 닮아갔다. 게임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주요 문법으로 자리 잡고, 게임의 문법에 익숙한 세대들이 콘텐츠 생산자로 성장한 덕분이다. 지난 글(바로가기)에서 소개했던 영화들은 모두 '게임의 DNA'를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게임 역시 영화를 욕망하기 시작했다. '퐁'(1972)과 '스페이스 인베이더'(1978), '테트리스'(1984)의 단계를 지나온 비디오 게임은 자체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걸작 '둠'(1993)을 만든 FPS의 아버지 존 카멕은 일찍이 "게임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고 일갈했지만(몇몇 장르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기도 하다), 게임은 상호작용이 가능한 이야기의 도구로 자리매김해왔다. 오히려 영화보다 긴 호흡을 내세워 더 유구하고 장대한 서사시를 담아내기도 했다.

 자세히 들어가면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선형적(linear)이냐 비선형적(interactive)이냐에 따라 서사가 얼마나 영화적인지를 판단하는 요소가 되겠지만 지면이 부족하니 다음을 기약하고, 영화를 닮은 게임들에 대해 알아보자.

 ◆FF7과 이벤트 영상 시대

 이벤트 영상(컷신, 시네마틱 영상)은 게임이 영화와 같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의 영역에 올라서도록 도와준 일등공신이다. 풀모션비디오(FMV)이라고도 하는, 미리 만들어 녹화해둔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은 꽤 오래 전부터 도입됐다. 게임이 구동되는 PC, 콘솔 시스템 성능과 무관하게 양질의 영상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FMV의 시초로 '아스트론 벨트'(1983)와 '드래곤즈 레어'(1983)를 꼽는데, 두 작품 모두 대용량의 레이저 디스크로 구동되는 작품이었다. 이 두 작품은 영화처럼 영상이 흐르는 중에 특정 버튼 등을 눌러 진행하는 게임장르 '인터랙티브 무비'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풀모션비디오(FMV)를 활용한 대표적인 게임 타이틀. 왼쪽부터 "아스트론 벨트", "드래곤즈 레어", "윙커맨더 3  호랑이의 심장".
▲ 풀모션비디오(FMV)를 활용한 대표적인 게임 타이틀. 왼쪽부터 "아스트론 벨트", "드래곤즈 레어", "윙커맨더 3 호랑이의 심장".
이후 CD가 차세대 고용량 저장매체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7번째 손님'(1992) 등 실사 영상을 활용한 작품들이 속속 출시됐다. 오리진이 만든 우주 비행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 '윙커맨더'의 세 번째 작품 '윙커맨더 3 : 호랑이의 심장'(1995)은 실사 배우를 캐스팅해 촬영한 영상을 스토리 모드에 도입했는데 주연 배우가 무려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 마크 해밀이었다(!!). 그만큼 용량이 무지막지해서 CD-ROM이 막 보급되던 그 시절에 CD 4장짜리로 출시됐다. 팬들이 직접 FMV를 편집해 러닝타임 104분짜리 영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말 그대로 영화인 셈. 이밖에도 RTS(리얼타임시뮬레이션) 장르의 거목이었던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도 브리핑에 실사영상을 활용했으며, 호러게임 '바이오해저드'(영문명 레지던트 이블, 1996)도 오프닝과 엔딩을 (비록 무명배우의 발연기이긴 하나) 실사로 제작했다.

 3D 그래픽 기술이 발전하면서 FMV의 트렌드는 실사에서 CG로 넘어갔다. 특히 3D 폴리곤 RPG를 정립한 스퀘어에닉스(당시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 7'(이하 FF7, 1997) 이후 이벤트 영상은 콘솔용 비디오 게임에서 스토리텔링의 주요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 FF7의 디렉터였던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FMV와 인게임 플레이의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목표를 잡고 게임을 개발했다. 덕분에 FF7은 화려한 CG 영상에서 곧바로 게임 플레이로 전환되는 전례 없는 연출에 선보일 수 있었고, 게이머는 물론 업계에도 굉장한 충격을 안겨준 대작으로 자리잡았다.

"파이널 판타지 7"의 오프닝 장면. (그때 당시) 화려한 CG 영상에서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게임 플레이는 전율이었다.
▲ "파이널 판타지 7"의 오프닝 장면. (그때 당시) 화려한 CG 영상에서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게임 플레이는 전율이었다.
◆감독이라 불린 게임 제작자, 코지마 히데오

 '메탈기어'(1987) 시리즈, '스내쳐'(1988) '폴리스너츠'(1994) 등으로 잘 알려진 걸출한 게임 제작자인 코지마 히데오는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광으로 프로듀서가 아닌 감독을 자처한다. 영화 평론집도 하나 냈는데 그 책 제목이 '내 몸의 70%는 영화로 이루어져 있다-코지마 히데오를 만들어 낸 영화들'이다.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 그이다 보니 때론 욕심이 지나쳐 '메탈기어 솔리드 4'(2008)에 이르면 게임 플레이 시간보다 영상 감상 시간이 더 길어질 정도였고, 엔딩 영상만 무려 한 시간에 달했다. 감독이 만들어놓은 세계와 스토리텔링을 게임 플레이가 아닌 영상으로 주입한다는 비판과 '그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코지마의 대리만족이 아니냐'는 쓴 소리를 듣기도 했다.

 영화계 인사와의 인맥도 넓은 그가 현재 개발 중인 차기작 '데스 스트랜딩'에는 할리우드 영화배우 노만 리더스와 매즈 미켈슨, 영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이 자신의 얼굴과 신체, 목소리 그대로 3D 스캔을 거쳐 게임 속에 출연한다.

코지마 히데오가 개발 중인 신작 "데스 스트랜딩"에 출연하는 할리우드 배우들. 매즈 미켈슨(왼쪽)과 노만 리더스의 게임 내 모습.
▲ 코지마 히데오가 개발 중인 신작 "데스 스트랜딩"에 출연하는 할리우드 배우들. 매즈 미켈슨(왼쪽)과 노만 리더스의 게임 내 모습.
◆시네마틱 어드벤처 장인들 퀀틱드림과 텔테일 게임즈

 프랑스의 게임 개발사인 퀀틱드림(quanticdream)은 시네마틱 어드벤처(인터랙티브 드라마) 장르의 게임을 10년 넘게 꾸준히 내놓고 있는 개발사다. 좋게 말하면 외길인생 장인정신, 나쁘게 말하면 하나밖에 모르는 바보.

 2005년 '파렌하이트(국내 출시명 인디고 프로페시)'를 통해 잠재력을 보여준 이들은 2010년 '헤비레인'과 2013년 '비욘드 : 투 소울즈'를 내놓으며 호평을 받았다. 세 작품 모두 3D로 구현된 공간 속을 돌아다니면서 인물, 사물 등과 상호작용하고, 스토리의 전개와 엔딩에 영향을 미치는 선택을 하며 이야기를 즐기는 장르의 게임이다. 특히 헤비레인과 비욘드 : 투 소울즈는 비디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의 성능을 잘 활용한 출중한 그래픽으로도 화제가 됐는데, 헐리우드 스타인 엘렌 페이지가 비욘드 : 투 소울즈의 주인공 역할을 맡아 목소리와 외형까지 꼭 닮은 캐릭터로 '연기'한다.

 제작사는 다르지만 퀀틱드림이 다져놓은 시네마틱 어드벤처 장르의 바통을 이어받은 작품 중에 '언틸 던'(2015)이 있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한 오두막집에 고립된 청년들의 사투를 그린 호러 게임으로, 이 작품 역시 리얼한 그래픽과 영화적인 연출, 선택지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로 호평 받았다.

 텔테일 게임즈 역시 어드벤처 장르의 장인들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좀비 아포칼립스 어드벤처 '워킹 데드'(2012) 시리즈가 대박을 쳐 스타덤에 올랐다. 게이머가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액션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시간 제한이 있는 대사 선택지와 버튼 액션, 갈고 닦은 연출 실력에 플레이어를 몰입하게 만든다. 특이하게도 에피소드별로 순차적으로 발매했고, 5개 에피소드가 하나의 완결된 시즌을 이루는 구성이다. 영화보다는 호흡이 긴 미드 한 시즌을 본 것 같다는 평. 시즌 1의 경우 850만장을 팔아치우며 그 해의 GOTY(올해의 게임)을 차지했다.

퀀틱드림의 "비욘드  투 소울즈"(왼쪽)와 텔테일 게임즈의 "워킹 데드".
▲ 퀀틱드림의 "비욘드 투 소울즈"(왼쪽)와 텔테일 게임즈의 "워킹 데드".
◆닮은꼴에서 연기파까지…게임 속 배우들

 배우가 게임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게임 캐릭터의 성우를 맡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경우였다. 애니메이션 성우처럼 영상에 맞춰 목소리 더빙을 한 셈이다. '하프라이프2'(2004)에서는 음성에 맞춰 3D 캐릭터의 입 모양과 얼굴 표정이 자동으로 변하는 립싱크 기술을 최초로 선보였는데, 덕분에 영어 음성과 우리말 음성일 때 각각 다른 입모양으로 말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더 나아가 얼굴까지 닮은꼴로 모델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의 게임 제작사 캡콤이 만든 액션 게임 '귀무자' 시리즈는 1편(2001)과 3편(2004)에서는 대만계 일본인 배우 금성무의 얼굴을 3D 캐릭터로 모델링해 주인공으로 활용했고, 2편(2002)에서는 故마츠다 유사쿠(1949~1989)를 얼굴 모델로 사용했다. 고인의 성대모사에 능한 사람을 기용해 목소리 더빙을 했다고. 3편에서는 레옹 역으로 잘 알려진 장 르노가 금성무와 함께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4)에서 안나 역할로 인기를 얻은 크리스틴 벨은 영화로도 개봉한(그리고 망한) 게임 '어쌔신 크리드'(2007)에서 주인공의 조력자 루시 스틸만 역할로 등장한다. 물론 캐릭터의 얼굴도 그녀의 얼굴에 기반해 모델링했지만 기술력의 한계로 그렇게 닮은 편은 아니다.

 배우들의 활약은 모션 캡처 기술의 발달과 함께 빛을 발했다. 마커(marker)라고 하는 센서를 감지하는 카메라 앞에서 신체 각 부분에 센서를 붙인 사람이 움직이면, 센서의 위치와 움직임을 3D 모델에 대입하는 모션 캡처 기술은 단순히 목소리만 빌려주던 배우들이 직접 연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본격적인 모션 캡처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은 '반지의 제왕'(2001)의 골룸이었다. 이후 보다 미세한 얼굴 표정까지도 포착할 수 있는 퍼포먼스 캡처, 영화 '아바타'(2009)에서 선보인 안구와 혀의 움직임까지도 잡아내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이모션 캡처에 이르기까지 모션 캡처 기술은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영화보다는 늦었지만 게임에서도 최첨단 모션 캡처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데이터 입력으로 만들어낸 움직임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얻을 수 있기 때문. 일찍이 대전격투게임 '철권3'(1997)에 등장한 한국인 캐릭터 화랑은 제일교포3세 태권도 선수인 황수일 씨의 모션을 활용했고, 축구게임 FIFA 시리즈는 실제 축구 선수들의 화려하고 사실적인 움직임을 모션 캡처를 활용해 게임 속에 재현했다.

 'L.A. 느와르'(2011)는 페이셜 이모션 캡처라는 방식을 활용하며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는데, 센서를 붙이는 대신 다수의 카메라로 배우의 얼굴 표정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형사 역인 주인공은 심문을 하면서 증인의 표정을 관찰해 진실과 거짓을 추리해야 하는데, 감정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모션 캡처 덕분에 가능해진 플레이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욘드 : 투 소울즈는 엘렌 페이지의 얼굴뿐만 아니라 몸, 표정과 연기까지도 퍼포먼스 캡처로 구현했다. 한때 버그를 이용해 주인공의 샤워 장면에서 카메라 시점을 바꿔서 엘렌 페이지(를 바탕으로 모델링한 캐릭터)의 누드를 볼 수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 게이머들의 애잔한 집착이여.

 명배우 케빈 스페이시도 FPS 게임 '콜 오브 듀티 : 어드밴스드 워페어'(2014)에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 그대로 출연했는데,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은 게임 속 케빈 스페이스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배우에게 냉장고에 3일간 냉동시킨 잉어 눈알을 줬다"며 대차게 비판했다(…).

 대부분의 퍼포먼스 캡처는 음성, 얼굴(페이셜 캡처), 몸(모션 캡처)을 따로따로 진행해 합치지만, 이 모든 걸 '한방에 해결하자'는 마인드로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외길인생 퀀틱드림의 차기작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은 영화 '아바타'처럼 얼굴 표정, 목소리, 연기까지 한 테이크에 데이터로 담아내는 풀 퍼포먼스 모션캡처 기술을 게임 제작에 도입한다고 밝혔다. 게임이 마치 영화처럼 제작되고, 게임 캐릭터에 배우의 연기력을 담아내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위)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제작 영상에서 소개된 모션 캡처 과정. 골룸 열연으로 잘 알려진 배우 앤디 서키스의 연기가 3D 유인원 캐릭터에 그대로 입혀진다. (아래) 영화배우 엘렌 페이지가 게임 "비욘드  투 소울즈"를 위해 연기하고 있다. 몸과 얼굴에 붙어있는 작은 점은 모두 움직임을 인식하기 위한 마커다.
▲ (위)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제작 영상에서 소개된 모션 캡처 과정. 골룸 열연으로 잘 알려진 배우 앤디 서키스의 연기가 3D 유인원 캐릭터에 그대로 입혀진다. (아래) 영화배우 엘렌 페이지가 게임 "비욘드 투 소울즈"를 위해 연기하고 있다. 몸과 얼굴에 붙어있는 작은 점은 모두 움직임을 인식하기 위한 마커다.
◆게임은 영화의 미래를 꿈꾸는가?

 게임은 영화를 꿈꾸지 않는다. 지나온 역사가 다르고, 지향점 역시 다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과 장르적 특성에 이어 제작기법까지, 영화와 게임이 공유하고 있는 영역은 분명히 있다. 게임의 문법으로, 게임의 상상력으로, 게임의 비주얼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유명 배우들의 얼굴과 목소리와 연기, 영화 이상의 연출과 보는 즐거움으로 무장한 게임도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아바타를 촬영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모션 캡처 스튜디오 '볼륨(The Volume)'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최신게임의 모션 캡처 촬영 일정이 빽빽하게 잡혀 있다. 서로를 닮아가고 서로를 꿈꾸는 게임과 영화의 이인삼각은 한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홍성윤 프리미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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