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슬링 와인 진수 보여주는 1000년 역사 수도원의 힘

  • 나보영
  • 입력 : 2017.02.0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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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와인기행-22] 중세 시대 수도사들의 명맥을 잇는 곳, 클로스터 에버바흐

어떤 와이너리들은 와인의 맛은 물론이고, 그곳에 얽힌 이야기까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독일 와인 명산지 라인가우(Rheingau) 지역의 엘트빌레(Eltville) 마을에 자리한 클로스터 에버바흐(Kloster Eberbach)가 바로 그런 곳 중 하나다.

클로스터 에버바흐의 안뜰
▲ 클로스터 에버바흐의 안뜰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으로 약 50㎞쯤 차로 달리면 라인(Rhein) 강을 따라 포도밭이 이어지는 라인가우 지역이 나타난다.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포도가 재배됐고, 중세시대에는 수도원과 고성에서 와인이 생산됐다. 지금도 세계적인 화이트 와인 리슬링(Riesling) 생산지로 유명하다.

 수도원이자 포도원인 '클로스터 에버바흐'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1136년 로마네스크 양식과 초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시토회 수도원이다('클로스터'가 독일어로 수도원이란 뜻이다). 종교적인 역할은 18세기에 끝났지만 수도원 재단의 관리로 형태가 잘 보존돼 있어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 고(故)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포도밭은 헤센(Hessen) 주정부의 소유이며, 와인은 양조전문가들이 맡고 있다.

수도원 옆 포도밭 풍경
▲ 수도원 옆 포도밭 풍경
수도원 안내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정원 너머로 아름다운 종탑이 보인다. 내부는 차분하고 어두우며 화려한 장식이나 그림이 없다. 예배당, 집회소, 보관소 등을 지나 수도사들의 침소였던 곳에 이르자 안내자가 설명을 시작한다. "시토회 교단은 엄격하고 검소한 생활을 추구했습니다. 1000㎡ 면적에서 100여 명의 수도사가 침대와 세면대를 놓고 생활했죠. 많을 때는 150명에 이르는 수도사가 함께 기거했습니다." 한 명당 고작 2평 남짓한 공간에서 살았다는 말에 그들의 금욕적인 삶이 쉽게 짐작된다.

 수도사들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의 업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종교 의식에 쓰일 와인을 양조하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었다. "이곳의 와인은 뛰어난 품질로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13세기에는 주변 지역으로 와인이 팔려서 수도원이 크게 번성할 수 있었답니다."

 수도원 아래층의 서늘한 공간에는 오래된 와인 저장고와 당나귀가 끌던 포도 압축기가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설비가 확충됐지만 전통 시설을 볼 수 있도록 간직해 두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당시의 방식대로 모든 포도를 손으로 수확합니다. 불순물을 줄이기 위해 천천히 70%만 압축한다는 원칙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클로스터 에버바흐의 와인 저장고
▲ 클로스터 에버바흐의 와인 저장고
 와인 저장고 옆의 넓은 회랑 앞에서 안내자가 잠시 멈춰 선다. "입에 손을 모으고 '아!' 하고 소리를 질러보세요. 일곱 번의 메아리가 돌아올 겁니다." 소리를 질러보니 그의 말대로 예닐곱 번의 메아리가 울린다. 수도원의 주요 장소들은 성가를 듣기에 가장 좋은 구조로 지어져서 지금도 이곳의 바실리카 회당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수도원을 모두 돌아본 후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들을 맛봤다. 모두 깊고 우아한 리슬링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클로스터 에버바흐에 가장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건 5월 무렵부터라고 한다. 초여름부터 '엘트빌레 장미 주간(Rosentage Eltville)'이 시작되고, 한여름에는 '라인가우 음악 축제(Rheingau Musik Festival)'가 열리기 때문이다. 2월부터 티켓이 판매되는데 금방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축제 때 맛보는 리슬링은 더 환상적이리라.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200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주류저널(Liquor Journal)' 수석기자로 여행과 와인을 담당하며 5년 동안 일했다. 퇴사 후 전 세계 와이너리를 여행하며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는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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