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설국 읽다 빠지는 미궁 이유는 비단선적 진행 때문

  • 허연
  • 입력 : 2017.03.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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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관에 전시되어 있는 코마코의 모습을 그린 작품.
▲ 설국관에 전시되어 있는 코마코의 모습을 그린 작품.
[허연의 일본문학 기행-14] 독자들은 '설국'을 읽으면서 자주 미궁에 빠진다. 스토리가 단선적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소설이 시간 순서대로 정주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의 구성은 시마무라가 유자와 마을을 방문했을 때 사건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그 부분에서 혼돈이 생기기 쉽다. 방문 순서대로 소설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방문 회차에서 다른 방문 회차로 이야기가 넘어갈 때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듯이 전개되므로 그 분기점을 놓치기가 쉽다. 방문 횟수를 미리 염두에 두고 읽으면 이런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소설에서 시마무라는 설국을 세 번 방문한다.

 세 번의 방문이 스토리 전개상 매우 절실한 역할을 하지만, 각각의 방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또 있다. 세 번 모두 다른 계절에 방문을 했기 때문에 유자와의 계절적 풍광과 코마코의 감정상태를 묘사하는 부분이 각기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 묘사 부분이 소설 '설국'의 또 다른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시마무라의 첫 번째 방문은 5월에 있었다. 막 신록이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이때 시마무라는 아직 게이샤로 입문하지 않은 코마코를 처음 만난다. 둘이 함께 커다란 삼나무가 있는 스와신사에 갔던 장면이 첫 번째 방문 때 있었던 일이다. 다른 게이샤에게 실망한 시마무라는 신사에서 아직 게이샤가 아닌 코마코에게 말을 건다. 코마코의 차가운 답변을 들으며 시마무라는 이런 느낌을 받는다.

 "머리를 숙이고 쌀쌀 맞게 대답하는 그녀의 목덜미에 삼나무숲의 어두운 푸른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방문은 같은 해 12월이었다.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오는 기차 속 장면이 시마무라의 두 번째 유자와 방문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유자와를 두 번째 찾은 시마무라가 첫 번째 방문 때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 두 번째 방문에서 시마무라는 게이사가 된 코마코와 재회한다. 반 년 만에 다시 만난 코마코에게서 시마무라는 첫 번째에서 보지 못했던 관능미를 느끼게 된다.

 "시마무라가 다가온 것을 알고 여자는 난간에 가슴을 대고 푹 엎드렸다. 그것은 연약하다기보다 이런 밤을 배경으로 이보다 더 완고한 것은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시마무라는 또 시작인가 싶었다. 산들은 검은데도 불구하고 어찌된 셈인지 온통 영롱한 흰 눈으로 덮여 있는 듯 보였다. 그러자 산들이 투명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방문이 끝나고 시마무라가 도쿄로 돌아가는 날 유키오가 죽는다. 코마코는 유키오가 임종을 맞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유키오에게 가지 않고 시마무라를 배웅한다. 그녀의 순정은 이미 시마무라에게 돌아서 있었던 것이다.

 아다시피 유키오는 코마코의 옛 약혼자이며, 요코의 새 애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세 번째 방문은 그로부터 1년 후 가을이 짙게 물드는 계절이다. 세 번째 방문 때 그려지는 풍경 묘사는 압권이다. 시미즈터널을 지나면서 만나는 눈 풍경을 묘사한 두 번째 방문이 소설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사실 가장 독특하고 시적인 묘사는 세 번째 방문 때 많이 나온다. 내 생각에는 소설 제목이 '설국'만 아니었다면 아마 세 번째 방문에 나오는 묘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소설 전체에 물들어 있는 '허무'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 세 번째 방문이다.

 "살아 있나 싶어 몸을 일으켜 철망 안쪽을 손가락으로 퉁겨봐도 나방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먹으로 세게 치자 나방은 나뭇잎처럼 툭 떨어지면서 가볍게 날아올랐다. 자세히 보니 반대쪽 삼나무 숲 앞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잠자리떼가 흐르고 있었다. 민들레 솜털이 떠다니는 듯했다."

 세 번째 방문에서 시마무라는 유키오의 무덤을 찾은 요코를 목격한다. 코마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난 요코가 시마무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그리고 며칠 후 영화 상영을 하던 창고에서 불이 났고, 시마무라는 창고 2층에서 은하수 속을 낙하하듯 추락하는 요코를 본다. 소설의 결말이다.

 한 계절이 지나면 숙명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나방처럼 생은 그렇게 부질없이 헛수고처럼 끝이 난다. 너무나 허무해서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지는 야스나리 문학의 절정을 바로 이 화재 장면에서 만날 수 있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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