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환생한 러 대표 연극…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에서'

  • 원종원
  • 입력 : 2017.04.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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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원종원의 뮤지컬 읽기-77] 막심 고리키의 연극이 뮤지컬로 환생해 대학로 소극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밑바닥에서'의 2017년 앙코르 공연이다. 묵직한 주제와 이야기 그리고 음악들이 꽤나 만족스러운 공연장 체험을 선사한다.

막심 고리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창시한 러시아 작가다. 1868년 목수였던 아버지와 작은 염색공장을 운영하던 집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했던 유년생활을 보냈다. 가난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돈벌이를 위해 구두 수선공, 제도사, 짐꾼, 주방 보조 등을 전전했으며, 방랑자와 떠돌이 생활도 체험했다. 훗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삶의 한 단면들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막심 고리키의 작품은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특히 '밑바닥에서'의 원래 제목인 '밤 주막'만큼이나 끊임없이 무대가 꾸며지며 각광을 받은 작품은 손꼽기 힘들다. 1902년부터 1905년까지 막심 고리키는 러시아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고정 작가로 활동한 바 있는데, 이 시기에 막을 올린 '밑바닥에서(밤 주막)'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와 더불어 러시아 연극사의 한 장을 장식한 대표적인 희곡이 됐다.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뮤지컬은 물론 바로 그 연극에 노래를 붙여 각색한 작품이다. 근대 러시아의 허름한 어느 술집을 배경으로 가스트일로프 백작을 대신해 감방을 다녀온 청년 페페르, 병든 동생(실은 아들)인 막스를 돌보며 술집을 운영하는 여주인 타냐, 술집 여급 출신으로 한때는 페페르의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백작의 부인이 된 바실리사, 한물간 매춘부 나스짜, 페페르의 친구이며 사기 도박꾼인 싸친과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조프, 알코올 중독이 된 전직 배우 그리고 싹싹한 술집의 새 종업원 나타샤를 중심으로 제목처럼 밑바닥 인생의 강렬한 페이소스를 객석에 전한다. 특히, 새로운 희망이 펼쳐질 것 같던 페페르와 나타샤의 사랑 이야기가 극의 종반부에서 막심 고리키 특유의 절망과 좌절의 반전으로 이어지며 굴곡진 전개를 펼쳐 가면 관객은 허탈한 좌절에 알싸한 뒷맛을 느끼게 되는 이 작품 특유의 뒷맛을 여실히 맛보게 된다. 왜 막심 고리키가 러시아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뮤지컬의 연출을 맡은 왕용범과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이성준 콤비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뮤지컬계의 황금 콤비 중 하나다. 라이선스 뮤지컬로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삼총사' '잭 더 리퍼' '조로' '햄릿' 그리고 대형 창작 뮤지컬로서는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했던 '프랑켄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만든 일련의 작품들은 거침없는 흥행 행보를 이어오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왕용범 연출은 소위 '왕용범 사단'이라 불리는 일련의 스태프·배우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작품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적 뮤즈라 불렀던 자신의 부인이자 중견급 배우인 서지영은 이 작품에서도 타냐로 등장해 특유의 카리스마와 집중도가 높은 무대를 선보인다. 바실리사 역의 안시하 역시 왕용범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여배우다. 가창력은 물론 우아하고 여성적인 외모로도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매력을 선보인다. 팔색조의 매력을 선보이는 나타샤 역의 김지유도 인상적이다. '모차르트' '오페라의 유령' '요셉 어메이징' '왕세자 실종사건' '팬텀' 등 굵직한 작품을 통해 좋은 연기와 노래를 선보였던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도 착한 천성에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캐릭터로 분해 좋은 무대를 완성해 낸다. 페페르 역의 최우혁, 알코올 중독 배우 역의 이승현, 싸친 역의 김대종·조순창, 나스짜 역의 임은영, 백작 역의 김은우 등도 안정적인 연기와 개성을 뽐내며 약방의 감초 같은 재미를 여실히 선사한다. 병약한 막스 역의 아역 배우 이윤우·이지훈 역시 눈물을 자아내는 이 작품의 매력덩어리다.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 뮤지컬 "밑바닥에서" 공연사진
대부분 배역이 원 캐스팅으로 이뤄져 있어 작품의 수준이 안정적이고 수준급의 호흡을 보여준다는 점도 이번 앙코르 버전이 보여주는 장점이다. 아이돌 스타나 셀러브리티의 무리한 기용으로 같은 연기를 수십 번씩 반복해 가며 호흡을 맞춰야 하는 요즘 우리나라 대극장의 기형적인(?) 라이선스 뮤지컬들에 비해 배우들의 조화와 무대에서의 자연스러움이 단연 돋보이는 완성도를 선보인다. 사실 우리나라보다 뮤지컬이 발달한 영미권에서 원 캐스트는 특별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제작환경이기도 하다. 다만, 인간이 하는 일이나 어쩔 수 없는 사고나 상황을 대비해 커버, 언더스터디, 스윙 등 대역을 마련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덕분에 대역 배우가 우연히 기회를 잡아 유명 배우로 성장하는 경우도 간혹 목격할 수 있다. 매출의 급성장을 경험하며 반대급부로 성장통을 경험하는 우리나라 뮤지컬계로서는 일부러라도 고민해 봐야 할 시스템이기도 하다. 소극장 뮤지컬이지만 '밑바닥에서'가 지닌 매력은 잊고 지내던 무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 인정할 만하다.

뮤지컬 '밑바닥에서'가 첫선을 보였던 것은 2005년의 일이다. 박용전 작곡과 왕용범 연출의 콤비로 선보였던 초연은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수상식에서 작곡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뮤지컬이라는 형식적 재미를 잘 담아내지 못했다거나 연극에 노래만 몇 곡 나올 뿐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원작을 각색해 창작 뮤지컬로서의 재미와 완성도를 이뤄낸 것이 크게 어필해 여러 차례의 연장 무대가 꾸며지는 흥행을 기록했다.

올해 다시 막을 올린 무대는 초연보다 한층 성숙해진 완성도가 장점이다. 일련의 대중적인 흥행을 기록한 대형 뮤지컬을 통해 이름 값을 올린 왕용범 연출이 아예 작정하고 소극장 '명품' 뮤지컬을 만들려 노력을 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연극보다 한결 가벼워진 웃음과 대사들, 눈물 나는 신파조의 사연이 펼쳐지는 막스의 죽음, 11곡의 수려한 멜로디를 다시 적절하게 편곡한 음악들은 세련된 뮤지컬로 재구성된 막심 고리키의 지독히 우울하고 외로운 이 작품의 묘미를 요즘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전달한다.

무대가 주는 느낌도 남다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창시자인 막심 고리키의 작품답게 오두막 모양의 선술집 세트는 꽤나 정교하고 디테일한 치장을 갖추고 있다. 마침 최근 연극으로도 등장해 인기를 누린 바 있어 정극과 뮤지컬과의 거리 두기를 비교하며 감상하면 더 즐거운 체험을 누릴 수도 있다. 창작 뮤지컬의 다양한 실험이 이제는 원숙한 수준까지 겸비하게 된 것 같아 반가운 무대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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