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만든 가족 뮤지컬의 신화 - 뮤지컬 '라이언 킹'

  • 원종원
  • 입력 : 2017.05.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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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뮤지컬 읽기-79] 무대에서 구현할 수 없는 동물의 이미지는 얼마나 될까. 답이 궁금하다면 꼭 봐야 하는 작품이 있다. 뮤지컬 '라이언 킹'이다. 만화영화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 작품은 뮤지컬로 변화돼 현대 뮤지컬계의 신화를 낳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해마다 방학이나 주말 아니면 우리나라의 5월 같은 가족을 위한 시즌이 돌아오면 입추의 여지를 찾을 수 없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다. 가히 디즈니 뮤지컬의 신화 격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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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유명한 장면은 1막 맨 처음에 등장하는 '순환하는 삶'이라는 의미의 노래인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가 불리는 신이다. 넋 놓고 있다가는 정말 화들짝 놀라게 될 수도 있다. 무대 위 풍경뿐 아니라 객석 통로에서도 수없이 많은 동물이 입장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형형색색의 조류들과 표범에서 얼룩말, 사슴, 코뿔소, 심지어 거대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공연장은 그야말로 아프리카 사파리를 연상케 하는 진풍경을 이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들이 오가는 대도시 한복판에 서 있다가 공연장을 들어서자 입이 딱 벌어지는 진풍경을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이 연재 칼럼에서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대용 뮤지컬을 흔히 '무비컬'이라 부른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영화(Movie)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용어로, 주크박스 뮤지컬과 함께 최근 글로벌 공연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형식이자 장르다. 왕년의 인기 흥행물을 가져다 무대용 뮤지컬로 만들다보니 이미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스토리지만, 무대적인 문법과 틀거리에 의해 재구성되다 보니 다시 새롭고 신기한 이미지를 완성해낸다는 것이 흥행의 비결이자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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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계 뮤지컬 공연가를 강타하고 있는 무비컬들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다. 우피 골드버그가 수녀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는 코미디 영화를 무대로 각색한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런던 초연에 이어 브로드웨이 극장가를 거쳐 아시아 투어 버전이 연말 우리나라도 찾을 예정일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성장 영화로 시골 탄광촌 꼬마가 정상급 무용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백하게 그린 영국산 원작 영화의 무대 버전인 '빌리 엘리어트 더 뮤지컬' 역시 두 번째 우리말 앙코르 무대가 준비되고 있을 정도로 관심이 높다.

뿐만 아니다. 실제로 반지를 끼면 무대에서 사라져버리는 뮤지컬 '반지의 제왕'도 있고, 실직한 남성들이 경제력을 지닌 여성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한다는 코미디 뮤지컬 '풀 몬티', 온갖 마법을 부리는 유모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메리 포핀스' 등도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져 세계적인 관심이나 흥행을 누린 바 있다. 최근에는 '찰리의 초콜릿 공장'이나 '보디가드', 아동용 영화인 '마틸다'도 뮤지컬로 탈바꿈되기도 했다. 스크린을 통해 대중성이 입증된 콘텐츠를 가져다 뮤지컬로 각색하는 이러한 제작 방식은 아마도 당분간 가장 흔하고 인기 있는 뮤지컬 시장의 흥행 공식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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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중에서도 뮤지컬 '라이언 킹'은 매우 독특한 사례다. 우선 이 뮤지컬의 원작은 그냥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 바로 만화영화이기 때문이다. '라이언 킹'이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94년의 일이다. 디즈니사의 23번째 장편 만화영화였던 이 작품은 당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이끌어낼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4500만달러의 예산으로 제작된 만화영화는 7억8384만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는 잭팟을 터트렸다. 얼추 계산해 봐도 14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성과로 그나마 오늘날까지 전 세계 디즈니숍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기념품과 파생상품의 매출은 계산에 포함시키지도 않은 '겸손한' 수치다.

면도날처럼 정확하게 뮤지컬 영화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디즈니의 만화영화들은 대부분 뮤지컬적인 기법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대부분 상황이나 장면들에서 대사와 연기 대신 노래와 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요한 방식으로 활용돼 왔기 때문이다. 사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이러한 전통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된 가히 고전적인 스타일이었다. 초창기 만화영화였던 1937년작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난쟁이들은 일터에서 돌아오며 발맞춰 부르는 것은 바로 노래 '하이 호(High Ho)'가 그랬고, 1940년작 '피노키오'에서 초록색 귀뚜라미 지미니 크리켓이 처음 등장할 때도 대사나 내레이션 대신 '별에 소원을 빈다면(When you wish upon a star)'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이 노래는 훗날 디즈니의 로고 음악으로 사용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인어공주'의 '언더 더 시(Under the sea)'나 '알라딘'의 '더 홀 뉴 월드(The whole new world)' 그리고 '미녀와 야수'의 동명 타이틀 주제가 등은 바로 이런 전통의 현대적 구현 사례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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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용 뮤지컬로 각색된 무비컬 '라이언 킹'이 시작된 것은 1997년이다. 이후 뉴욕과 런던 등 영미권에서 20여 년 세월을 훌쩍 넘는 장기 흥행을 기록하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파죽지세의 흥행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1999년 일본의 극단 시키(四季)가 막을 올린 일본어 버전이 가장 오래 공연된 사례로 역시 10년이 넘는 세월이 무색하게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인기 뮤지컬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2002년 독일어 버전과 2004년 네덜란드어 버전, 2007년 프랑스어 버전, 2010년에는 스페인어 버전이 제작되면서 글로벌 문화상품으로서의 위용도 넓히게 됐다.

무비컬의 인기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지만 다시 새로운 각색과 무대적 적용이 빚어내는 색다른 해석에 비롯됐다. 즉 뮤지컬 '라이언 킹'의 재미는 대부분 등장인물들의 표현 양식에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232개에 달하는 동식물 인형들을 제작해 만화 속 캐릭터가 무대적 예술 양식으로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는 별난 실험을 감행됐던 결과다.

뮤지컬의 연출자였던 줄리 테이머는 원래 가면극에 관심이 많았던 여성 연출가였는데, 그의 개인적 경험과 취향이 적절히 반영되며 뮤지컬은 만화영화와는 차별되는 그만의 독특한 향취와 매력을 품게 됐다. 초연 무대가 꾸며진 지 이미 한참이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막을 올리면 여지없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감탄과 환호는 변치 않는 이 작품의 재미로 남아 있다.

우리말 버전도 앞서 설명한 일본 극단 시키에 의해 제작돼 2006년부터 1년여 동안 샤롯데 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상적인 흥행 기록은 세우지 못해 글로벌 마켓에서 유일하게 수익을 올리지 못한 별난 '라이언 킹' 프로덕션 사례로 남게 됐다.
뉴욕에서 공연되는 포스터 앞에서 필자
▲ 뉴욕에서 공연되는 포스터 앞에서 필자


실패 요인은 여럿이다. 우선 가족 뮤지컬이 인기를 누리기에 너무 부담스러운 티켓 가격(이러한 부류의 작품은 부모가 아이를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개인당 3~4장씩은 구매해야 한다)도 걸림돌이 됐고, 스타 대신 극단의 소속 배우를 활용하는 제작 방식, 그리고 일본어 버전을 재해석한 한국어 노랫말의 어색함과 연출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문화적 혹은 감성적 차이 등도 실패 요인이 됐다.

결국 '라이언 킹'의 우리말 공연은 무비컬 역시 원 소스의 명성보다 멀티 유스의 현지화 그리고 이에 따른 보다 치밀한 전략적 적용이 흥행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비교연구의 전형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 한국적 무비컬 혹은 가족 뮤지컬의 제작과 흥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좋은 경험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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