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에 잔잔한 감동, 뮤지컬 '복순이 할배'

  • 원종원
  • 입력 : 2017.05.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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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뮤지컬 읽기-80] 뮤지컬 '복순이 할배'는 우리나라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무대와 객석 거리가 가까워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공간적 특성이 왠지 친밀하고 정겨운 느낌을 충실히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뮤지컬의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상 속 인물들이다. 주인공인 복순이 할배는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으로 작은 일에도 큰소리로 성을 내는 조금은 괴팍스러워 보이는 어르신이다. 이야기는 어느 날 사회복지학과 대학생인 태수가 실습 겸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복순이 할배의 집을 찾게 되면서 시작된다. 동사무소 담당 직원조차 벌벌 떨 정도로 특이한 성격의 복순이 할배로부터 말대꾸했다고 매도 맞고 답답하다고 야단도 맞지만, 차츰 헤어졌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여자친구 지혜와의 관계에 대해 조언을 듣게 되고, 결국 마음을 열게 되고 복순이 할배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된다는 내용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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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창작 소극장 뮤지컬의 실험은 이 작품이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랜 기간 막을 올리며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빨래'도 엇비슷한 매력의 무대다. 서울살이를 하는 소소한 소시민의 일상과 고민, 그리고 몽골 청년과의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세대 간 공감을 다룬 엇비슷한 주제의 창작 뮤지컬 작품으로는 '형제는 용감했다'도 있다. 안동 김씨 가문 어른의 죽음을 둘러싸고 부모 세대의 삶과 사랑 이야기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줘 많은 박수를 받았고, 곧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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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복순이 할배'는 바로 이런 한국형 소극장 뮤지컬의 내용과 형식을 담아내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덕분에 객석에서는 왠지 내 주변에서도 목격할 수 있을 법한 이 이야기에 더욱 솔깃하게 귀를 기울이는 자연스러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 자체는 특별할 것 없는, 그래서 다소 밋밋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지만 공연을 보고 극장을 나서며 선명히 남아 있는 극중 배역들의 인상적인 성격과 할배의 미소가 흐뭇한 마음을 들게 만드는 이유도 이런 소재의 일상성이 주는 매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뮤지컬 '복순이 할배'는 대학로에서 대중 연극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제작사 두레의 특성을 잘 담고 있다. '보잉 보잉' 시리즈를 통해 코미디 뮤지컬 혹은 코미디 연극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이어온 극단 두레의 장점과 재미가 이 작품에도 잘 반영돼 있다. 쉬지 않고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배꼽 잡는 대사들, 뮤지컬이라기보다는 대중연극적인 특성과 매력이 강한 장면 전개와 상황들, 순발력 강하고 애드리브의 차진 재미가 잘 반영된 극 전개는 단막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의 스피디한 전개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적절히 이끌어가는 템포를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짧고 굵게' 소극장 뮤지컬의 재미를 집중시키는 매력을 만날 수 있다.

극단 두레의 다른 작품들도 그랬듯이 이 작품 역시 러닝타임 100분에 단막으로 전개되는 구성을 띠고 있다. '짧고 굵은' 외형적 특성은 덕분에 주말에는 세 번의 공연도 가능한 특성을 지니게 한다. 공산품처럼 규격화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역으로 그래서 상대적으로 낮은 티켓 가격에 공연을 제공함으로써 대학로를 찾은 많은 대중이 쉽고 즐겁게 공연을 접하게 하는 특성 또한 지니게 된다. 굳이 말하자면 동전의 양면 같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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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뮤지컬 '복순이 할배'가 다른 대학로 소극장 연극 혹은 소극장 뮤지컬들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아마도 그리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와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가장 도드라질 것이다. 청춘남녀의 연애담과 사랑이야기 혹은 거짓이 거짓을 낳게 만들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애치정극 같은 내용이 주를 이뤘던 기존의 대학로 극장가에서 '복순이 할배'는 비교적 담담하고 차분하게 자극적이라기보다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주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덕분에 '그 밥에 그 나물' 같던 대학로 코믹극의 흐름이 조금은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소재를 만나는 즐거움으로 그 외연을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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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뮤지컬은 아이돌 스타나 셀러브리티로 점철된, 그래서 대극장에서 단기간에 표를 팔려는 마케팅 전략들과는 거리가 있는 특성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이름 값을 하는 배우들을 보기 위해 찾는 무대라기 보다는 작지만 진정성이 있고, 작아서 오히려 더 친근한 특성과 매력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래서 젊은 배우들의 연기와 순발력,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더욱 열광하게 되기도 한다.

단출한 무대에 출연자 수도 적지만 여러 역할로의 변신이나 멀티맨의 활용, 극적인 긴장감의 적절한 배치 등을 통해 배우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고 관객들과 교감시킨다는 재미는 꽤나 쏠쏠한 대학로 뮤지컬로서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에너제틱한 배우들의 연기가 절로 박수를 터져나오게 하는데, 각각의 캐릭터에는 세 명의 배우가 참여해 모두 9명의 배우가 세 팀으로 구성된 무대를 선보인다. 특히 뮤지컬의 홍보 전단에 배우들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 을 정도로 배우들의 역할과 비중이 절대적인 작품이라 인정할 만하다. 에너지 넘치는 연기와 스피디한 전개는 이 작품 최고의 미덕이자 볼거리요 즐길 거리다.

부산에서 트라이 아웃을 시작해 서울까지 이어진 제작 과정도 신선하다. 지역이 단순한 문화 소비시장이 아닌 창작의 전초기지 역할로 변모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리얼리티 넘치는 사투리는 이런 배경을 통해 다듬어진 별미다. 마치 외국어를 공부하듯 사투리를 외우며 연습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덕분에 객석에서는 유쾌한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오래 두고 계속 보고싶은 마음 훈훈해지는 무대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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